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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un 16. 2017

J 이야기

가장 잘 안다고 하지만, 가장 잘 모르는 J 이야기

  내가 J 를 만난지도 벌써 44년이 흘렀다. 그의 어머니는 J 를 낳자마자 논으로 밭으로 일을 나가야했다. J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울며 벽에 똥칠을 하며 방을 지켰다. 아마 J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J는 그렇게 엄마 젖 한번 먹고 나면 혼자 방을 돌아다니다 자신이 싼 똥을 손으로 만지고 그 손으로 벽에 그림을 그리며 어린 시절을 혼자 보냈다. 



언제나 처럼 지금도 혼자다. 혼자서 덩그런 빈 공간을 지키고 있는 것은 낮잠을 자기에 꼭 좋다는 말이다. 잠시 눈을 감고 일어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듯 하지만 잠에 들기 전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첫 키스의 기억이 아련하다. 언제 누구와 어디서 어떤 기분으로 첫 키스를 했는지 기억못하는 이유는 아마 특별히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그냥 그렇게 흘러가버려도 무방한 일이라 생각해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은 그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머리가 이상하게 됐나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첫 키스의 기억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으로 경험한 그 모든 일들이 다 사라지고 없다. 담배연기처러 사라졌으나, 그 알싸한 향만 남아있는 것 처럼. 담배를 처음 입에 물었던 기억은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기억이 난다. 옛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던 정지였다. 형과 처음으로 아버지 담배를 한 개피 꺼내 입에 물어보고 콜록였다. 그러나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처음으로 화투장을 잡은 기억도 유치원에 다니거나 그 전이었던 것 같다. 민화투를 치면서 형과 점수 내기를 했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땡꽁 맞기로 해서 꽤나 맞았던 기억 외엔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투패를 깔고 뒤집는 그 묘미는 알 수없는 미지의 내일을 살아가는 우리 삶처럼 재미있었다. 마치 지금 그리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불안함과 기대감처럼 말이다. 


시골 생활이야 뻔했다. 일어나면 들에 나가 일하고, 어른들이 시키는 일이나 하고 노동력을 농사에 쏟아 붓는 일이 전부였다. 온 가족은 논과 밭을 보면서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도 되는 것인냥 죽도록 일만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에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나 역시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냥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 그저 좋았을 뿐이었겠지. 꼬마가 무슨 생각이 있었을까?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열 두살 때는 아버지도 삶이 싫었는지, 자식들 키우는 일이 힘들었는지 그냥 그렇게 돌아가셨다. 죽었다고 적고 싶은데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싸가지 없는 놈이라 욕할까봐 죽었다고 적었가다 지웠다. 세상 참 좋아진 것 아닌가? 금방 썼다가 지워버릴 수 있으니. 내 생각이나 마음도 이렇게 금방 만들고 지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아버지는 죽은 것이 맞았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 아니, 뭐가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많이 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인생도 우리 형제들의 인생도 그렇게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제대를 하고 IMF라는 엿같은 세상이 펼쳐졌다. 아니 어쩌면 내 삶을 차근히 준비 못하고 형이 하는 장사를 물려 받을 요량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살던 나에게 제대란 엿같은 세상보다 더 난감한 시련이었을지도 모른다. 오갈 곳이 없었다. 고향 어머니와 함께 살아도 좋았을 것을 그래도 도시물 먹은 놈이 촌에 처박혀 있으려니 형님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강원도에서 뺑이 치고, 한 이틀을 서울에서 대충 그럭저럭 별 재미도 없이 놀고 집으로 오니 형이 나를 불렀다. 이제 취업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던지면서. 일단은 셋째 형 집에 있으면서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리곤 공무원 학원 학원비를 내게 쥐어 주었다. 사실 고등학교때 공부를 꽤나 하긴 했었다. 그러다 공부란 것이 하기 싫어서라기 보다는 노는 것이 더 재미있었지게 노는 데 빠져든 게 잘못이었다. 자연히 공부가 손에 잡힐 일이 없건만. 그렇게 다시 원하지 않는 인생길을 시작해야 했다. 학원비와 한 달간의 버스비를 챙겨 왔다.  M시의 K공무원 학원에 등록을 했다. 제기랄. 한 달 학원비도 비싸다. 이 돈이면 장사를 시작하겠건만. 형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한 강의실 제일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오전에만 강의를 듣고, 오후 내내 자습을 했다. 강의를 들을 때도 재미가 없었지만, 자습은 더더욱 재미가 없었다. 모르는 게 없는데 주구장창 외워 머리에 담아 놔야 했으니 정말 짜증나는 일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이면 바보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놀림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요즘도 공시생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이런 말 한다고 욕을 엉간히 들어먹을 각오를 해야겠다. 시대가 변한 건 사실이다. 하긴 나도 요즘은 5천원의 자기 능력 테스트 삼아 공무원 시험을 치러 다니고 있으니 우습긴 하다. 오전 강의 후 다들 아는 사람들인지 친한 친구 사이인지 삼삼오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나는 점심값이 아까워, 또는 혼자라는 사실이 쪽팔려 오락실로 향했다. 오락을 한 두판 하고 나면, 캔커피를 하나 사 들고 자습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후 내내 캔커피 두 개로 시간을 죽이며 그렇게 해가 지길 기다리기만 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날이 제법 흘렀다. 어느 날이었다.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앞 모습을 본 적도 없는 여자인데 자리에 한 번 앉으면 일어나는 법이 없는 여자였다. 저렇게 앉아 있으면 궁뎅이가 엄청시키 커질건데. 혼자서 별 걱정을 하면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 그렇게 앉아서 책 속으로 빠져드는 모습, 그 자체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늘 자리에 앉아 있으니, 얼굴을 제대로 볼 턱이 없었다. 점심 시간이나 저녁시간에도 늘 내가 먼저 나가고 제일 늦게 들어오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갑자기 학원을 다닐 마음이 생겼다. 점심 시간에도 저녁시간에도 자리에서 늦게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며칠을 고생한 후에야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다.  예쁘다기 보다는 그냥 그랬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녀의 모습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책상에 앉아있는 그 모습 자체로도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런다고 내가 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잘 할 수 있으며, 늘 자신에 넘쳐 있었다. 단지 형에게 말을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도전할 만큼의 용기가 없었다. 자신이 있는 것과 용기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스스로의 삶을 준비하지 못하면 타인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음을 몰랐다. 안타까운 일이다. 점심 저녁을 굶고 나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자습은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야 끝이 났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저녁 시간이었다. 저녁 시간이 끝나고, 다시 자습 시간이 다가올 때였다. 그 날따라 모든 게 귀찮았던 나는 멍하니 저녁 시간을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 있었다. 멍청하게 저녁 먹으러 간 그녀의 자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내 책상에 무언가가 놓였다. 캔커피였다. 하얀 손이 책상을 스쳐 지나갔고, 그림자만 흐릿하게 남았다. 시선은 캔커피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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