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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un 19. 2017

행복 계량법

 내 삶의 행복을 측정할 수 있는 법이 있다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행복이며, 일어나길 바라는 일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을 측정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횟수를 세어보면, 나는 그 만큼 행복을 하다. 


토요일 아침, 교육행정직 9급 시험을 치루기 위해 창원의 K 고등학교로 향했다. 금요일 업무팀과 족발에 소주 한 잔 걸친 것이 영향이 크다. 기분좋은 술도 인생의 한 축이요, 사람과의 만남이 기분좋다면 이 또한 행복한 일이리라. 토요일 아침, 피곤한 몸을 깨워 시험장으로 향하며 커피캔 하나와 물 한 병을 살 수 있다는 지금의 내 모습도 행복이라. 모든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일어난 일이 모두 내게 작은 기쁨을 준다면 이 역시 행복이라. 굳이 점수나 양으로 셈할 순 없어도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시험장에 앉아 시험을 치루는 사람들의 면면을 관찰하고, 이들의 꿈을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보는 일도 작은 즐거움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행복을 셀 수 있는 방법은 정말 단순하다. 내가 시험치는 교실에는 25명의 지원자가 있었는데 시험시간이 다되어서 세어보니 16명의 응시자가 자리에 앉았다. 음, 응시율이 꽤 많이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게 인기 있다는 대한민국 공시생들이 9급 시험을 치루지 않는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냥 치기 싫어서, 교육행정직과 일반행정직 시험날이 같아서 두 곳에 응시한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했기에 이 곳에는 자리가 비어있을 수 있고, 아니면 그냥 시험을 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제 나처럼 한 잔 마신 사람은 피곤해서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냥 순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공무원이 내 꿈이 아니기에'. 공무원이 되는 일이 나의 꿈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꿈이거나 바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을 뿐이다.


토요일 오후가 시작되자마자, 도서관에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아이들과 함안에 있는 작은 연수원에 가서 물놀이도 하고 함께 놀기로 하였다. 밤샘 근무를 마친 아내도 깨웠다. 장모도 함께 출발.

가는 길에 간단히 먹을 거리도 장만하고 국수집에 들러 국수를 먹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윌 연수원에 도착하니 오후 2시. 물놀이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다. 짐을 부리자마자, 아이들은 물놀이장을 뛰어갔다. 그렇게 첨벙첨벙 신나게 놀았다. 나도 잠시 후 합류하여 이런저런 물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수상 보드도 타면서 즐겁게 놀았다. 그냥 즐겁게 놀았다. 저녁에는 참숯 오리바베큐와 시원한 맥주로 허기를 달래고, 토요일을 마무리 했다. 

친구가 아이를 데리고 늦게 합류해서 저녁 먹고, 맥주 한 잔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일요일에 다시 놀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아내 출근을 시키고 다시 연수원으로 왔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잘 줄 알았는데 7시도 안되어 일어났다. 신기한 녀석들이다. 일어나서 고스톱을 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었다. 그러나 어제 저녁에 알려준 화투 놀이가 재미있었나 보다.

아침을 먹이고, 금새 뜨거워지는 강열한 태양에 물이 다시 그리워졌다. 친구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물놀이장으로 갔다. 아이들도 어제의 물타기 놀이가 즐거웠는지 다시 태워달라고 아우성이다. 어른들도 수상보드를 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나 역시 어제 한 번 해 봤기에 자신감이 더욱 붙었다.


아이들은 맨몸으로 물살을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 어른들의 시간이다. 친구와 다른 한 분이 수상보드에 도전했다. 나는 사진을 찍느라 늦게 합류했다. 어제 한번 해 봤다고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신나게 보드를 탔다. 그러나 과욕은 위험부르는 법. 먼저 물에 빠져 한쪽에 대기 중이던 친구와 아이에게로 보드를 타고 날아가고 있는 나를 느꼈다. 스스로 위험을 감지했다. 순간을 모면해야만 했다. 그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정말 순간이었지만, 그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 천만다행으로 가까스로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나는 물에 그대로 처박혔다. 


그리고 아이들과 친구에게 달려갔다. 괜찮냐고 물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만약 보드가 그쪽을 덮쳤다면 나는 아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뉘였다. 잠시 후 있을 수업 때문에 잠시 눈만 붙이고 싶었다. 누었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때론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 그리고 그 일이 실제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면, 그 일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원하는 일이 현실이 되면 행복하겠지만, 원하는 일이 현실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불행이고,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행복이다. 행복을 계량하는 방법은 원하는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을 세는 것이 보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세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세는 방법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횟수를 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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