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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un 27. 2017

글에는 생각이 담겨야 한다

타인의 생각에 생각 더하기보다는 오롯한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글

수없이 많은 글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나 역시 수없이 많은 글을 쓰는 사람 중 한 명이며, 얼토당토 말을 지껄이기 일쑤다. 너무 많은 글이 있어 때론 헷갈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글은 돌고 돈다. 찾고 찾아 가보면 그 말이 그말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그래도 글에는 자신의 생각이 담겨있어야 한다. 


좋은 정보와 좋은 지식이 우리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좋은 정보란 삶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힘이며, 좋은 지식이란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기준과 같을 수 있다. 또한 그런 지식과 정보가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잊고 사는 듯 하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스스로가 그 풀이 과정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타인의 생각은 내 생각의 작은 나침반이 될 것인데 우리는 무작정 그 길만 따라 가려고 하는 듯 하다. 아니, 그렇다고 확신한다. 어느 유명한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말을 정당화해야만 말과 글이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다. 내 생각이 그렇다면, 왜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그 믿음이 나에게서 나오면 안되는 것일까? 독단과 독선에 빠진다는 오류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내가 그 사람만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인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스스로를 믿고 인정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가치를 내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일까? 늘 고민해보는 부분이지만 쉽게 세상과 동조할 수 없다. 아직도 나는 나의 고집대로 살아도 지장없다. 지장은 없지만, 그리 편하지도 않다. 세상과 타협하거나 동조해야 삶이 나아진다는 것도 우습지만, 그렇지 않으면 삶이 그저 그렇다는 사실도 우습다. 


오늘 하루는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잠시 했다. 많은 시는 대상을 노래한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대상보다는 상태를 노래한 시는 없을까? 물론 내가 시를 많이 느끼지 못해 그런 시를 찾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시는 대상을 노래했다. 하긴, 대상이 없다면 상태도 없겠지만, 이 세상이 '존재의 대상'만 보고 산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슬프다'를 노래한 시를 만나고 싶어 '슬프다'를 노래한 시를 한번 적어보고 싶다.


슬프다

       말글손

우습지도 즐겁지도 않은

우울하거나 괴롭지 않은

기뻐지도 외롭지도 않은

그러나 슬픈


아, 역시 어렵다. 모든 언어가 대상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정말 대상이 없다면 정말 슬픈 현실이다. 말할 대상이 없거나, 글을 쓸 대상이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현실이다. 그래서 모든 대상의 중심은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되고, 너는 우리가 된다. 세상 만물의 이치를 따져도 내가 있어야 네가 있고, 너와 내가 만나야 우리가 되니, 아마 이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사는 나는 얼마나 멍청한가?


나를 아끼는 마음을 남들은 '자존감'이라 말하지만, 그 말이 무엇이든 중요한 사실은 '나는 나다.'라는 사실이며, '너는 너다.'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각자가 다른 너와 내가 만나서 우리가 되니 정말 다르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변하지 않는 진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왜 나는 네가 되려고 하고 너는 내가 되려고 하며 우리는 우리로 하나의 우리가 되길 바라는걸까? 각자가 있는 그래도 그렇게 '나'로 살아간다면 그대로도 넉넉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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