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꿈

보이는 결과는 마음이 편하지만, 보이지 않는 결과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by 말글손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뭔가 삶의 정리가 필요하거나, 머릿속 정리가 필요할 때는 최상이다.


엄마는 세상이 변해도 남자가 할 일이 있다고 손자에게 말하셨다. 소풀(부추)을 베어 보고 싶은 아들에게 엄마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세상의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할머니는 아직도 옛날 세상을 살고 있는 거 같아요, "라고 내게 다가와 말했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변해간다.


금요일 제주 4.3 행사에 다녀왔다가 늦은 저녁에 후배와 맥주 한 잔을 마셨다. 후배는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팀을 꾸려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들 교육에 나만큼이나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관심과 관리는 다르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안다. 후배는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친구와 대화하면 의외로 깊이 있는 속내를 이야기해서 좋다. 아마, 서로 생각의 닮음이 이런 마음을 이끄나 보다.


열 두시가 넘어 잠이 들었지만, 금방 골아떨어졌다. 토요일 아침, 허둥지둥 눈을 떴다. 마산문협 3.15 전국백일장 준비를 위해 달려가야 했다. 늦지 않아 다행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영령들께 묵념을 올리고, 바로 행사 준비를 했다. 행사는 성황리에 끝나고 다행히 모든 일은 거의 마무리되었다. 수상자 명단 타이핑도 제자 덕분에 금방 끝났다. 집에 와서 2층 세 놓을 방 청소를 했다. 몇 곳의 수리가 끝나고 청소도 일단락되었다. 시골로 떠났다. 어머님 밭일을 준비해야 했다.


시골에 가니, 엄마는 피곤하신지 벌써 잠에 들었다. 사 온 캔 맥주 몇 개를 마시려 쥐포를 구웠다. 내가 구운 것보다 아내가 구운 것이 훨씬 나았다. 나도 제법 잘 하지만, 아내가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 그것도 많이. 참 고맙다. 피곤했는지 열 한시가 되니 잠이 쏟아졌다. 하긴, 몇 주를 강행군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갈 곳도 많고 할 일도 많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가 그 불확실성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의 즐거움을 뺏어가지만, 그래도 그런 불확실성으로 더 열심히 사는 듯하다. -글을 쓰는 데 갑자기 많이 편찮으신 친구 어머님이 걱정이다. 늘 어머니밖에 모르고 사는 친구도 걱정이다. -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형님이 8시에 도착. 일어나자마자, 비료와 거름을 밭에 뿌렸다. 형님은 밭을 경운기로 갈고 난 감자를 심고, 고구마를 심었다. 여든다섯 어머님은 아직도 직접 모든 일을 하셔야 한다. 비닐로 고구마를 덮고, 고추를 심기 위해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덮고, 고춧대를 꽂았다. 복지관 어머님이 주신 도라지 씨앗도 심고, 잡초가 많아 약을 쳤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어머님은 매실액과 파와 부추와 머위를 캐주셨다. 시금치는 물론이고 집에 있는 이것저것을 챙겨주셨다. 나는 이럴 때 마음이 안 좋다. 어머님의 삶의 이유가 우리 아들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 바람은 언제나 스치는 바람보다 못하다. 그래도 아직 직접 움직이시니 고맙다. 그러나 점차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듣거나, 나보고 '아가'라고 하거나, 손주 이름을 바꿔 부르거나, 방금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하면 마음이 아프다. 거친 손과 발, 이젠 270도가 되어가는 허리와 걷지도 못하는 다리를 보면 마음이 찢어지지만, 그래도 아직도 고맙다.


집에 와서 이런저런 밀린 일을 마치고, 도서관 가서 일하고, 다시 집에 와서 일 마무리하고 나니, 내일을 위해 눈을 감아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텔레비전을 보던 작은 아들이 갑자기 "아빠, 담배 피우지 마. 나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 이러는 데 참. 고맙다. 그런데 아들 죽을 때까지 살면 안 되는데 말이다. 아내는 야간 근무를 갔다. 오랜만에 시골에 같이 가서 고마웠다. 사위 왔다고 저녁 차려주신 장모님께도 고맙습니다. 백일장도 잘 다녀오고, 몸이 아픈데도 잘 견뎌주는 큰 아들도 고맙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 동안 뇌리를 스친 생각.

불확실한 미래의 꿈이 얼마나 불안한 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을 때 모든 이들은 작은 행복을 느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는 늘 먼 꿈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삶의 가치를 위해서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한 단계씩 이뤄나가야 한다. 공무원, 선생, 직장인 등 일단 그 자리에 들어가면 모든 것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생은 그 그림에 따라 정해진대로 흘러간다. 눈에 보이기에 편하고 안정적이다. 영업, 창업, 농업 모두는 예상치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보이는 결과와 보이지 않는 결과.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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