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듯 일도 좋든 아니든 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
뭔가 꼬일 것이라 예상한다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듯 일도 좋든 아니든 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한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까?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금껏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그 말은 진실이자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아내가 병원에 간단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갔다. 하긴 간단한 수술이 어디 있겠냐 마는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초췌한 모습으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병원에 가셨다고 했다. 모셔다 드리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걷기도 힘든 분이 아픔을 이기려면 병원을 가야만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간호사와 대신 통화를 하면서 어머님의 몇몇 증상을 말했다. 그렇게 어머님의 병원행은 잘 마무리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수술이 끝나고 아내는 회복실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밤새 야간 근무를 마친 아내는 곤히 잠들었다. 근무와 수술 여파로 제법 피곤했다. 늘 일이란 이렇게 연속으로 일어나게 마련인가 보다. 아내를 보는 내내 마음이 시원찮았다. 그냥 그랬다. 딱히 뭐라고 표현하긴 그렇지만.
월요일이라 그런지 내게도 처리해야 할 자잘한 일? 이 많이 산적했다. 아내가 잠든 사이에 한 학교와 한 상담복지센터에 다녀왔다. 은행 업무를 조금 보려다, 지갑을 들고 오지 않았고, 필요한 서류가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집에 갔다가 은행으로 갔다. 은행에서 대기 중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검사를 몇 가지 더 해봐야겠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수납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에고. 은행 업무를 미뤄야 했다.
아내와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거란 말에 도서관으로 와야 했다. 그 사이 장모는 기다리지 못하고 병원으로 오셨다. 말을 하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몸도 편찮은데 오신다니 내가 짜증이 났다. 그냥 금방 간다고 집에서 기다리시라니 고집이 예사가 아니다. 결국엔 병원에 오신 장모님께 짜증 섞인 말을 던지고야 말았다. 장모님도 화가 나셨다. 나는 도서관으로 그냥 와버렸다. 어머님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셨다. 이렇게 같은 범띠의 한판은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마흔다섯과 여든 하나의 싸움은 싱겁지만, 앙금만 남겼다.
도서관에서 아이들 수업 후 아내 퇴원을 준비하려다, 또 일이 꼬이고 말았다. 아내가 입원을 해야 했다. 큰 병은 아니지만, 이렇게 예상과 빗나가는 그런 날에는 모든 일정이 꼬이게 마련이다. 도서관을 아이들에게 맡기고 아내에게 갔다. 결국은 과외는 패스해야만 했다. 입원 수속을 하고, 얼마간의 짐을 챙기고, 아내의 저녁을 장모님께 챙겨달라고 했다. 대충 씻고, 나오니 장모님도 함께 가시려고 한다. 그냥 집에 계시라고 하니 또 고집이다.
-그래, 그러시겠지.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럽시다. 같이 갑시다.
그래도 남은 앙금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시장에서 딸기를 조금 사가자고 하신다. 가게를 지나 정차를 하려니, 딸기를 안 샀다고 또 살짝 역정이다.
-차를 세워야 될 거 아이요.
또 성을 내고 말았다. 에고. 이런 게 사는 거라고 애써 위로하는 것도 참 안타깝다. 버르장머리 하곤. 하긴 시골 어머님께도 마찬가지니 아마 내가 타고난 천성이 이렇게 못돼 먹었나 보다.
딸기를 사고, 병원에 가, 아내에게 밥을 건넸다. 밥을 챙겨주고, 딸이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장모님도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옛말이 다 맞긴 하다. 모든 부모에겐 자식 입에 밥 넘어가는 소리가 제일 행복한 소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장모님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하루 종일 굶은 배를 채우려 돼지국밥을 먹었다. 늦은 저녁 먹는 한 그릇이 정말 꿀맛이었다. 아내의 입원을 걱정하는 아이들. 늘 그렇듯 자식은 부모가 언제까지나 자기 곁에 있을 것이라 믿는가 보다.
하루 업무를 제대로 보지 못해 뭔가 뒤가 구린 사람처럼 지금 이렇게 하루를 돌아보지만, 늘 남는 것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라면 나는 다시 붙잡지 못할까 두려워 지금도 이렇게 애써 아둥대지만, 그 역시 부질없는 시간 속에서 누리는 호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