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시간을 글로 드러내되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면 우리의 상상력은 ?
시각적 효과가 세상을 점령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생각조차 이미지로 드러내야만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가장 민감한 가치는 시간이다. 보이지 않지만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하루
여덟시 집을 나선다. 목적지가 없다. 열 시 반에 약속이라 두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공간 즉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가도 되겠냐 물으니 좋다고 오라고 한다. 이럴 땐 사업하는 친구가 있어 고맙다. 뭐 어제도 그러했네. 고맙다. 정권. 영림. 커피 한 잔으로 잠시 수다를 떨다 정해진 시간의 정해진 공간으로 간다.
열 시 반. 문화기획자 모임에서 토요일 행사 회의를 마쳤다. 한 시간 반 정도 역시 어제의 그 공간에서 보냈다. 다시 30여 분을 달려 오후 강의를 갔다. 김해에서 잠시 여유를 가졌다. 냉면집에서 가지는 이십여 분은 시간이 생각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그 사이 잠시 글을 읽으며 나를 내려놓았다.
두 시간의 만남. 어머님 백오십여 분과 아버님 스무 분쯤. 신난다고 할지 난감하다 할지.
강의 갔다가 노래도 부르고 신나게 놀았다. 이런 공간과 시간에서는 나는 다시 꼬마가 된다. 그러다 잠시 생각을 나누는 시간에는 모두 끄덕끄덕. 그래서 고맙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전화는 열심히 울고 SNS도 바쁘게 운다. 전화로 일처리. 문자로 일처리. 세상이 이렇게 좋아진 건지 시간 감옥에 갇혔는지 애매모호하다.
네시.
도서관으로 와 급한 서류를 두어 곳에 보내고 전화로 긴급한 일을 마쳤다. 막내아들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미처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나는 나의 일에 집중했다. 그 사이 작은 놈은 뭔가가 불편한 듯 우물거리며 내게 말을 건넸다. 친구들과 지역 사회 조사를 가기로 했다고. 다녀오라고 말을 해 놓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근우가 가자는 3.15 공원 묘원, 그리고 손에 들린 보드, 없는 메모 도구. 딱 걸린 거다. 위험천만한 보드를 타고 그 높은 경사로에서 놀 생각을 했다는 사실과, 친구들은 학원에서 공부하고 오는데 자신은 친구들이 마치길 기다렸다 늦게 간다는 사실. 그리고 지역사회조사를 한다면서 보드를 들고 가는 사실. 저녁이 다 돼서야 간다길래, 딱 잘라 말했다. 안 돼!
녀석은 울었다.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친구들과의 관계, 자신의 자존심, 자존감. 그리고 부모와 관계. 이후 대화라기보다는 훈계에 가까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마음이 아팠다.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는 듯했다. 그리고 녀석은 나의 젊은 시절을 경험하지 않게 해주고 싶었다. 뭐, 좋은 경험이라고. 복잡한 심정이 겹치고 겹쳐, 일도 겹치고 겹쳐, 친구가 집 정리를 좀 해야 한다는 데 도와주지도 못했다. 뭐, 그런 사정이 있었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나도 옷을 좀 갈아입고 수업 가려는데 작은 놈이 울며 나를 껴안는다. 죄송하단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고맙다. 너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함께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도서관에 앉아 나는 나의 일을, 학생들은 학생들의 일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너무 고맙다. 순간순간은 고마움과 서러움과 외로움과 괴로움이 겹치거나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복잡한 순간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끝은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아니, 정말 고맙다. 하루가 잘 지나간다는 그 사실에.
글을 쓰고 나니, 구체와 추상의 개념이 흐려진다. 이미지로 드러낼 수 있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의 구분이 없어진다. 그러니 이 세상은 점점 그림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미지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