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무게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부부는 서로가 주장이 강한 편이다. 아내와 다툰 다음 날, 아이들은 눈치를 보느라 여느 아침과 달리 말없이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나 역시 그 날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도 않는다. 주변의 작은 스트레스에 인상은 굳어간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사과를 한다.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가화만사성’ 라는 말이 있다. 사회적 인간에게는 자신과 가족의 관계가 모든 관계의 시작점이다. 이렇게 소중한 우리의 가족 체계가 급변하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아니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 젊은 부모는 어린 자식을 해하고, 젊은 자식은 늙은 부모를 해한다.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가족이다. 가족은 만사의 근원이니 가족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
명절이 되면, 고향을 찾는 자식들의 자동차는 선물꾸러미로 가득 찬다. 내용물이야 어떠하든 화려한 박스와 포장지로 쌓인 선물더미가 트렁크에 한 가득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고향을 찾는 자동차의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고향으로 향하는 도로를 점령한 자동차는 언제나 평행을 유지한다. 이렇듯 자식의 부모에 대한 애정과 감사는 잘 포장된 선물꾸러미이다. 하지만, 노부모님의 흔드는 손을 뒤로하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는 자동차의 무게중심은 확연히 뒤로 쏠린다. 부모님의 사랑이 트렁크에 실리는 순간 자동차는 뒤쪽으로 쑥 꺼져 내려앉는다. 뒷바퀴가 터질 듯하다. 엔진의 무게와 차를 가득 채운 인원의 무게를 부모님의 사랑은 쉬이 능가한다. 이른 봄부터 씨를 뿌리고 정성으로 가꾼 부모님의 사랑은 화려한 포장에 싸이지는 않았다. 검은 봉지 몇 개와 하얀 쌀가마니 두어 자루가 고작이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그렇게 무겁다. 바쁘다는 핑계로 노부모를 도우러 고향으로 오는 횟수는 일 년이 지나도 고작 몇 번이다. 그러나 내리사랑은 자식이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이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한 때는 무게중심이 확연히 뒤로 쏠린 채 도로를 달리는 귀성차량을 쉬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자동차는 언제나 무게 중심이 반듯이 잡혀있다. “집에 가면 음식 다 남아서 버려요.”, “그냥 집에 두고 드세요.”, “요즘 누가 음식 싸 갑니까?”, “밥도 잘 안 해 먹어서 쌀도 조금 사 먹으면 되요.”라며 부모의 아껴둔 사랑을 마다하는 자식들이 점차 늘어난다. 물론 우리 집도 그렇다. 자연히 자동차의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릴 일이 없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우나 부모 노릇은 힘들다고 했다.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가장 근본은 사랑이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 자식이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서 어찌 자식에게 존경을 바랄 수 있는가? 부모를 생각하면서 자식을 키우고, 그 자식은 또 부모를 생각하며 세상을 배워나가면 반드시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마련이다. 자식이 어려서는 앞에서 이끌고 자식이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으면, 뒤에서 보이진 않지만 묵묵히 지치지 않는 믿음을 보내주는 부모님. 자동차의 뒷바퀴가 내려앉아 터질듯 한 자동차를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라도 뒤에 있어 보이지 않았던 인생의 무게중심을 느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