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익기를 기다리며

토요일 저녁이 그리 반갑지 않은 이유

by 말글손

집밥은 좋다. 집밥이 그립다는 이들이 많다. 집에서 먹는 밥처럼 행복한 한 끼도 없을 듯하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언제나 그렇지 않다. 제각각의 삶이 있으니 말이다.


금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달렸다. 아이 치과부터 학교 손님 대접과 가족사진 촬영으로 이어져 청소년 밥차, 그리고 랩소디 퀸의 공연까지 긴 일과로 하루가 제법 신났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한다는 건 참 행복한 삶이다. 그래도 피곤한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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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치과 치료를 간 김에 나도 진료를 보고 스케일링이란 걸 받았다. 그렇게 긴 고통을 주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여전히 잇몸과 이가 아프다.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부지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걱정하는 아들들을 보니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하루 종일 입맛이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먹을 수도 없었다. 건강, 그중에도 먹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다시 새겼다. 이 관리를 잘해야겠다. 먹고사는 입. 그러고 보니 혀도 참 중요하다. 그래서 세 치 혀를 조심하라 하나보다.


학교 운영위원장으로 손님이 오신다길래 학교로 갔다. 방송실 시설 공사에 힘을 주신 도의원 두 분께 학교 소개와 인사로 발 크기를 0.00001 정도 키웠다.

-지역 학교에 많은 관심 가져주셔 고맙습니다.

점심을 먹자고 했으나 시간도 그랬지만 입이 정말 부담스러웠다. 점심 특선이 날아가는 소리에 위장만 슬피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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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6년 만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물론 이벤트 당첨, 공짜라기에 갔지만 세상이 그런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 견물생심이란 걸 알면서도 감정이 이성에 우선하는 그런 결정을 하고 말았다. 예상치 않은 지출이지만 인간은 관계이자 감정의 동물임을 확인만 하는 후회의 시간을 가졌다.

-어머님. 블라블라블라

상당 실장의 상담 모습을 보니 상담과 심리, 마케팅과 경제교육, 그리고 오랫동안 강의 현장 경험으로 웃음이 났으나 그 관계를 굳이 나쁘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열심히 즐겁게 촬영해주신 분도 계시니 말이다.

그래도 난 좋다. 그 시간만큼은 우리 네 식구가 행복했다.

약간 비싼 감이 있지만 적절히 협상했다.

오늘 아내가 액자는 취소하고 원본만 받기로 했다기에

-잘했다. 원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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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밥 먹자" 합성동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을 장식하는 <청소년 밥차>는 청소년 단기쉼터 마련을 위해 일 년 하고도 육 개월이 넘도록 도민이 함께 하는 사회활동이다. 창원시도 적극 손을 내밀어 올해는 드디어 그 결실을 맺는다. 선한 연대의 힘은 세상의 힘이다. 기관도 자발적 참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송승환 창원 교육장이 밥 나눔 하러 왔다. 창원의 인기 돈가스 가월 돈가스 이두찬 대표와 직원들이 직접 맛난 돈가스 도시락을 만들었다. 참 고맙다.

이 이야기는 다시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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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홀로 만찬을 즐겼다. 진정한 만찬이다.

가족들은 창원으로 공연 나들이를 보냈다. 힘들게 표를 6장 구해 보내고 나니 내 표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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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만찬에 즐거움과 만족과 피곤이 동시에 몰릴 즈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두찬씨 만났는데 표가 하나 있데요. 올래?

-음. 귀찮다. 피곤하고. 일단 먹고. 보자.



? 참고로 지금 이 순간 어머님(장모님)의 꼬장 아닌 꼬장이 시작된다. 난 이해가 되지 않지만 굳이 이해하려 않는다. 각자 다르니 그냥 그리 그리. 이건 완전 나의 하소연임을


그렇게 예의 아니게 늦게 살며시 공연장으로 난입.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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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토요일. 즉 오늘.


늦게 일어나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일을 좀 하고 공부하는 고3과 어묵 순대 떡볶이를 먹고 집으로 오는 길. 시장은 언제나 발걸음을 잡는다. 홍어와 묵은지, 냉이와 오만디 된장국, 밤과 버섯으로 영양밥 해 놓고 기다리는 지금.

집밥이 그리운 게 아니라 친구들과 약속이 없어, 아니 약속을 잡을 수 없는 묘한 상황이라 집밥을 먹는다.

물론 나는 집밥을 좋아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어정쩡한 상황은 행복을 반감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