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고, 누군가에게 해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절대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우리의 욕심으로 인해,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세상 그 무엇인가에 게 피해를 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몰랐어요. 나는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나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겐 아픔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내왔을까요? 아직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집니다.
이제라도 많이 물어보고,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그리고 많이 느끼며 살아보렵니다.
1. 계란과 운동화 운동화 한 켤레 인생의 갈림길
2. 삶은 계란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면
3. 갑을병정 론을박1 그래도 우리는
4. 무기경신 갑새로운 인연
5. 임계치를 넘어 이제라도 알았으니
6. 흠 많은 완벽한 구슬
하나의 완벽한 존재가 있다면, 이미 그 존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을 것이다.
1. 새 길을 처음 가는
길이 없으면 세상은 와 닿지 않았다.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시장에서 돌아온 어른들의 취기어린 말에서 간간히 세상 돌아가는 말이 스칠 뿐이었다. 이런저런 일로 시끌벅적하니 조심해야 한다고는 했지만, 나와는 별개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텔레비전도 전화기도 없는 우리 마을은 조용했다. 1980년. 어리기도 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나와는 단절된 세계였다. 힘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싸움 따위는 나의 세계에 끼어들지 못했다.
여느 봄처럼 쑥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 온 마을은 기지개를 켰다. 산도, 들도, 사람도 푸른 새 길을 갈 때가 되었다. 3월이 되면 막내인 나도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세상은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간간히 새어나오는 한숨만 들어도 나도 모르게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에휴,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 쑥이라도 캐서 내나 팔아야 하나?”
엄마는 옆구리에 바구니를 끼고, 손칼 하나를 들고 밭으로 향했다. 나도 형이 쓰던 빵모자를 눌러쓰고 엄마를 따라 나섰다.
“오늘 쑥국 묵는기가? 난 엄마가 끓이주는 쑥국이 젤로 맛나더라.”
“그래, 오늘 쑥 많이 캐서 쑥국 끓이 묵자. 오늘은 쑥을 마이 캐야것네.”
엄마를 따라 들로 나가는 길이 즐거운 건 나만이 아니었다.
동네 아줌마들과 계집애들도 논두렁, 밭두렁마다 자리를 잡고 쑥을 캐고 있었다.
“석이 엄마, 어디 가요? 여기 쑥 억수로 많은데.”
“응, 오늘은 큰골 밭가에 가요. 많이 캐소.”
큰골 밭에는 아버지가 묻혀있다. 큰골 밭은 산과 붙어 있어 쑥도 많지만, 오늘따라 엄마는 아버지가 보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버진 지난 해, 해바라기가 노란 꽃잎을 피울 때 돌아가셨다.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고 그렇게 논 한 마지기, 밭 한 뙤기 마련하다, 암인지도 모르셨다. 배에 복수가 차고, 얼굴이 노랗게 변해갈 때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모아놓은 밭 한쪽에 아버지는 영원히 자리를 잡았다. 바구니 가득 여린 쑥이 한 가득 담겼을 때 쯤, 엄마는 아버지 무덤 옆에 털썩 앉았다.
‘이럴 때 당신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소. 야속한 사람…….’
엄마는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린 아버지께 하소연을 하셨다. 메마른 잔디를 부여잡은 엄마를 보자니 눈물이 났다.
“엄마, 내는 저게 가서 좀 더 캐고 오께요.”
힘들게 조금씩 모아온 논밭 덕에 밥은 먹고 살지만, 혼자서 6남매를 키우는 시골 아낙의 형편이야 뻔했다. 아마 엄마는 나의 입학이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여윳돈 얼마를 남겨두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거류산 너머로 구름이 몰려왔다. 노을도 금세 구름에 가리고 말았다. 총총걸음으로 집으로 오는데 엄마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석아. 쑥 가꼬 집에 먼저 가 있거라. 행님하고 소죽 좀 끓이라. 누나한테는 밥 좀 해나라 캐라.”
“응. 엄마는 오데 가는데?”
“잠시 요 들릴 데가 있다.”
이른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 형과 소죽도 끊였고, 누난 밥도 했는데도 여전히 엄마가 오지 않았다.
“엄마 오데 가신노? 배 고푸거마는.”
세 살 터울인 막내 형은 우수한 학생이었다. 먹성도, 성격도 나와는 상반되지만, 엄마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가서 엄마 모시고 온나.”
중학교에 다니는 누나는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힘들었지만, 공부도 잘하고 착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릴 적 큰형과 둘째형의 기억이 없다. 셋째 형이 군에 있었다는 정도만 알 뿐이었다.
우산을 들고 동네 골목을 돌았다. 엄마는 동네에서 몇 안 되는 기왓집 대문 앞에 서있었다. 박씨 아저씨 집이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처마 아래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엄마. 비가 와서 그라나? 내 우산 가져 왔다.”
“그, 그, 그래. 비가 와서 비 피하고 있었다. 어여 가자.”
엄마가 끓여 준 쑥국은 생선 기름 하나 뜨지 않았지만 고소하고 맛났다. 엄마가 넣어주는 군불로 뜨뜻하게 데워진 구들목에 누워 부른 배를 두드렸다.
며칠 뒤, 엄마는 읍내 시장에 다녀왔다. 엄마는 오랜만에 함지박만한 웃음꽃을 피웁니다.
“석아, 새 운동화 신고 학교 재미있게 다녀.”
“우와! 엄마. 이거 새 운동화네. 완전 좋아. 아싸.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석이는 엄마가 처음 사 주신 운동화에 신이 났습니다. 검정 고무신은 이제 벗어 둘 때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건강하게 자라준 석이가 활짝 웃으니 너무도 행복합니다. 올해 열심히 농사를 짓고, 닭을 치면 석이 운동화 값은 금방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