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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 엔드게임

영화 관람기 (결코 내용에 스포가 없는 그런 후기)

by 말글손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목적지는 ‘나는 자연인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시대라 불리는 시대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모든 존재는 시간을 거스르는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꾼다는 사실이다.

어린이날 연휴가 마지막 날, 어벤저스 엔드게임 관람을 엄마와 함께 보기 위해 손꼽아 둘째를 위해 조조 영화를 보기로 했다. 늦잠을 잔 덕분에 둘을 먼저 보내고 후다닥 챙겨 영화관으로 잰걸음을 보챘다.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 포장마차 앞, 풀빵이 익기를 기다리는 아가씨의 모습에서 낯설고 오래된 시대의 초상을 보았다. 몇 걸음 뒤, 오래전 군복을 입고 거리에 앉아 빨간 바구니를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인 노숙자의 모습이 영화의 어느 한 장면과 겹칠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영화광이다. 상업영화에 길들여져 작품성이 있다는 영화를 보면 소위 ‘쪽 팔리게’ 눈물이 주책없이 흐르긴 하지만 말이다. 3시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가 이렇게 많은 관객을 끄는 이유는 엄청난 마케팅의 효과, 사전 예매율을 높이는 뭔가의 전술, 스포일러가 되지 말라는 은연중의 압박과 같은 전략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잡념으로 영화를 기다렸다.


모든 존재 최후에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길 희망한다. 온갖 상상력과 첨단기술이 뒤범벅된 영화에서 웬 자연이냐?라고 물을지 모르지만, ‘타노스’가 마지막을 보내길 바라는 곳은 바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조그만 오두막이었다. 지구를, 아니 전 우주를 뒤흔들어 놓고 고작 원하는 것이 한적한 자연에서의 유유자적이라니! 이게 말이나 될 법인가? 하지만 그가 쓸고 간 세상에서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패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영웅들은 Time Heist(시간 강탈)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몇 번 되풀이되는 대사가 여전히 귀에 선명하다.

“Move on."

"Move on and grow."

"We gotta move on."

“그래도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바꾸고자 하는 영웅들의 시간 여행은 시작된다. 그러나 모든 존재는 시간의 연속선상에서 살아간다. 지나간 시간에 개입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게 마련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가면, 과거는 미래가 되고, 현재는 다시 과거가 된다.”

타노스가 바라는 우주의 영생은 우주 존재의 절반이 사라지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늦춰질 뿐 변하는 것은 없다. 문득 뇌리를 스친 생각. 절반의 사라진 존재. 나는 사라진 존재인가? 사라질 존재인가?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시간 여행을 떠난 영웅들은 서로 다른 시각,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훔치려 한다. 그 사이 그들이 떠난 지금 이 공간의 현재는 어떻게 될까? 그들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 시각, 그 공간에 둘이 존재하는 것인가? 어느 주인공의 의식이 공존하는 장면에서, 미래의 그와 현재의 그는 과연 동일인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기술이 한없이 발달한 그 어느 날, 양자물리학이 우주 법칙을 이겨내면, 나는 과거의 어느 시점, 어느 공간으로 가고 싶은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과거는 과거인가? 미래인가? 이런 잡념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은 마치 원시 또는 과거 시대의 전투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역시 시간은 공간을 타고, 공간은 시간을 따라 회귀하긴 하는 듯하다. 아무리 시대가 시대를 앞질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바로 인간은 욕망은 희망을 노래한다는 사실이다. 불멸의 힘을 지닌 스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은 몇 개로 나누어져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느 차원의 시공을 살아가는지 모른다. 영화가 결말에 이를 때쯤, 사라진 시간은 그 시간을 인식하는 자들만의 몫인지, 그 시간을 살아낸 모든 이의 몫인지, 사라졌던 자와 다시 돌아온 자들의 공유하지는 지 의문만 무성했다. 시간의 흐름에 변곡이 생기면 우리는 우리의 시공에서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살면 된다.


바야흐로 ‘나는 자연인이다’, ‘우리는 자연인이다’의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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