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병정에서 나는 무엇일까?
친절한 서기
며칠 전 급한 전화가 왔다. 짧은 영상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 고 말이다. 당연히 그 정도야 할 수 있다고 했다. 잘 해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해볼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두말하지 않고 담당자를 만났다. 예산이 어이없었다. 아니 예산을 아예 잡지 않은 모양이었다. 담당자가 사람이 참 좋아보였다. 하기로 했으니 한다고 했다. 짧은 미팅이 끝나고 곧바로 영상촬영에 들어갔다. 시간이 없었다. 1주일 정도의 시간. 촬영하고 편집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만나는 사람들을 부여잡고 촬영을 했다. 사정을 말하고 다짜고자 덤볐다. 모두가 흔쾌히 받아주었다. 일차 편집을 끝내고 영상을 보냈다. 갑자기 내빈 축사, 격려사등도 영상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까짓거 하기로 했느니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은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요구사항이 점점 많아졌다. 하루 일당도 되지 않는 금액으로 이런저런 요구를 다 들어주려니 짜증이 났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담당자가 친절했고, 소통이 되어 기분좋게 임했다. 편집은 편집 능력이 좋은 친구에게 부탁했다. 돈을 떠나서 좋은 일을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담당자를 넘어 역시 그 윗선은 존재했다. 병과 정의 사이에 을이 끼어 들었다. 갑은 당연히 행사에 참여하는 분들이라 생각하겠지만 오산이다. 갑은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에 존재하며 눈치를 보내는 그 사람이다. 그러나 갑은 갑질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을이 갑에게 맞추어 갈 뿐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무 일 없다. 그저 을이 원하는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의견을 제시한들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쉽게 깨닫는다. 바른 소리를 하면 을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을은 결과에 대한 공은 자신이, 탓은 병과 정에게 던질 것이다. 알고 있다. 세상이 이런데 왜 바른 소리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잊고 살아서는 안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