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이의 사생활 엿보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상의 소중함
-정훈아. 7시 20분이다.
아침마다 단잠을 깨우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늘 달콤하지 않다. 형도 몸을 뒤틀며 기지개를 켜며 짜증을 낸다. 짜증이라도 내는 날은 괜찮은 날이다. 정말 피곤한 날은 몽롱하게 화장실로 간다. 고양이 세수로 낯을 씻고 나면 아버진 밥상을 차려온다. 아버지가 차리는 밥상은 늘 간결하다. 딱 아침밥이다. 형과 학교 가는 길은 신난다. 야구나 축구 얘길 하다 보면 학교다. 사거리에서는 친구들을 만나 수다 삼매경이다.
운동장은 애들로 시끌벅적했다. 찬바람 따위가 우리의 뜨거운 축구 열정을 꺾을 순 없었다. 놀다 보면 울리는 예비 종소리. 아버지의 7시 20분이다와 꼭 같다. 수업은 늘 같다. 새로운 걸 배우는 건 별로 없다. 알고 보면 내가 살아갈 시대에는 별 쓸모없는 지나간 이야기뿐이다. 세상 사는데 필요한 기술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아버진 기초가 중하다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아버진 늘 잔소리다.
-공부는 시험을 잘 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공부란 네 앞에 놓인,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수많은 선택과 문제를 어떻게 더 잘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결코 끝이 없다. 우리는 늘 새로운 선택을 하고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되니까. 그래서 글을 쓰는 거야. 내가 만난 문제들을 어떻게 하니까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를 잊지 않으려고.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무슨 말인지 초등 5학년한텐 난감한 메아리지만 난 그냥 듣고 흘려버리니 문제 될 건 없다. 이런 것도 공부지.
하교 후에 친구들과 축구를 했다. 공 차는 실력이 나날이 늘지만 맘에 들지 않는다. 오늘은 뒤에서 정빈이가 이는 바람에 넘어졌다. 남자애들 노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다. 날아오는 공에 손가락이 부딪혔다. 손가락이 살짝 젖혀진 것 같았다. 아팠다. 대부분 학원을 가야 해서 조금밖에 공을 차지 못하는 게 아쉽다. 혼자 집에 오는 길은 살짝 심심하다. 집에 가면 할머니만 계시고 난 텔레비전을 보거나 폰을 만지작거릴 거다. 심심하다.
저녁이 되니 손가락이 부어 아팠다. 엄마한테만 말했다 아버지껜 말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또 겨울의 하루가 지나갔다. 방학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