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을 걸으며 아버지를 보다
말글손 장진석
내가 걷는 길은 내가 살아온, 가는, 갈 길이다. 노을 녘, 논두렁을 걷던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산티아고 순례길, 비아 프란치제나, 라다크 같은 세계적이거나, 제주 올레길, 해파랑 길, 산막이 옛길 같은 한국적이거나, 통도사 솔밭길, 화왕산 억새길, 무학산 둘레길 같은 경남적이거나, 유명하고 잘 닦인 길도 처음 그 길을 걸었던 자가 있으리라.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이들의 첫걸음은 얼마나 힘들면서도 설렜을까? 한 사람의 걸음이 길을 닦았다.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두렁을 만들어 곡식을 키우던 우리 부모님들의 첫걸음은 어땠을까?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열심히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키워내시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된 ‘나’를 돌아본다. 괭이를 어깨에 둘러메거나, 지게를 지거나, 소를 몰거나, 뒷짐을 지거나 아버지의 길은 언제나 논두렁이었다. 논두렁을 따라 들로, 산으로 나가고, 논두렁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셨다. 집으로 오는 아버지는 힘들어 보였지만 언제나 환한 모습이었다. 일찍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모습도 가물거릴 때는 고향에 와서 아버지와 함께 걷던 논두렁을 걸어본다. 이젠 경지 정리가 되어 반듯한 논두렁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발걸음에 다져진 꼬불꼬불한 논두렁의 추억마저 정리하진 못했다.
경남 고성군 거류면 감서리 감동마을 이제는 사라진 논밭두렁
2020 경자년 새해는 10년 단위가 바뀌었다며 2000년이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란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세월 참 빠르다.’라는 말이 인사치레가 아닌 사실로 다가왔다. 설 연휴가 되기 전부터 고향에 내려왔다. 기억을 자꾸 잃어가는 어머님과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었다.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의 들녘을 다니며 유년기의 행복을 전해주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살아온 길이 나에겐 어떠했으며, 내가 살아가는 길이 아이들에게 어떠할지 생각을 나누고 싶었다. 모내기를 하면서 물뱀을 잡고 놀았던, 참새를 쫓으려 깡통을 들고 두드리고 다녔던, 소를 먹이다 소가 벼를 먹어 혼났던, 두렁을 따라 잘 익어가는 감을 지키고 따던, 그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행복하며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그런 소소한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는지 전해주고 싶었다.
유년의 추억을 찾아 두렁길을 두 아들과 걸었다. 그렇게 전해주고 싶었던 그런 말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두렁길도 농로로 닦여 있으니 걷는 맛이야 예전만 하겠냐마는. 아버지가 누워계시는 큰 밭을 시작으로 큰형이 누워계시는 논 자락을 지나오면서 내 아버지처럼 그렇게 나도 별 말이 없었다.
"아버지, 이렇게 논두렁은 왜 있어요?"
작은 아들의 뜬금없는 질문에 '定答이 있을까? 正答이 있을까?' 고민을 하다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여기가 우리 땅이라는 경계선을 짓거나, 논에 물을 잡아야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두렁을 칠 수밖에.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다닐 길을 개척하려고 그랬거나."
“예전에 아버지가 다니던 길이랑 지금 길이 왜 다를까요?” 중학교 3학년 큰아들의 질문에 혼자 먼 산을 보았다. 어릴 적 뛰어놀던 거류산이 구름 아래 우뚝 자리 잡고 있었다.
‘길’이란 ‘방법’이다. 목적지를 찾아가는 다양한 경로. 삶을 이어가는 것.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아버지 시대의 살아가는 길이 있었다면, 나의 시대를 살아가는 길이 같지 않음은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길도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기에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