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신뢰감은 흔들리는 나무의 뿌리다

by 말글손

나에 대한 믿음은 나무의 뿌리다.

‘나는 너를 믿는다.’라는 말을 우리는 쉽게 한다. 특히 부모들이 딸이나 아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일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앞날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렇다 보니 부모들은 이런 기대 심리와 불안 심리를 자녀들에게 ‘믿는다.’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어릴수록 부모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절대적 믿음은 아이들의 순수함에서 비롯된다. 순수함에서 비롯된 절대적 믿음이 최초의 세상인 부모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이런 순수한 마음은 세상의 오물에 때가 묻는다. 그리고 절대적 믿음은 일부 쇠퇴하거나, 상대적 믿음으로 바뀌어 간다. 물론 믿음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인생의 덕목인 믿음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믿음은 말로 시작하고 불신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만들어지고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반드시 어떤 조직에 들어가야 한다. 가정이라는 사회, 학교라는 사회, 사회라는 사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이수과목이 되어 버린 조직 생활을 거부할 수 없는 동물 -물론 이런 조직을 거부하고 자연에 동화되어 사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 바로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조직에는 믿음이 거대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두말할 따위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삶의 가치관인 믿음은 아주 다양하다.

가장 많이 거론하는 믿음은 신과 신을 따르는 신자들의 믿음에 대한 것이다.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믿음의 의미는 어쩌면 불확실성에 대한 안도감의 표현일 것이다. 우리가 어떤 신을 또는 어떤 진리를 믿는다면 그 믿음은 나에게 용기와 신념과 실행의지를 더해 줄 것은 자명할 것이다. 하지만 신과 교리에 대한 믿음이 개인의 욕심과 이기심에 치우쳐 변질되는 경우가 있다. 절실한 믿음에 대한 응답을 찾지 못할 경우에도 믿음은 쉬이 변색된다.

신에 대한 믿음뿐만 아니라 연인이나 부부관계에도 믿음은 서로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로 여겨진다. 연인과 부부들은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세상의 어느 관계보다 쉽다. 그렇다 보니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 깨지기 쉬운 불안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는 틀림없이 무엇인가를 확신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믿음이라는 울타리에 그 불안정의 기운을 넣어두고자 함이다. 친구 간에도 믿음이란 존재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존재라는 말이 어쩌면 이런 친구 간의 믿음에 대하여 기대를 하게 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깨지면 우리는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오히려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조직의 상사와 부하 간에는 어떤 믿음이 존재할까? 우리가 해 나가야 하는 일에 대한 성공 여부도 팀원 간의 믿음에 따라 판가름 날 정도이니 믿음이란 조직의 원활한 유지와 업무 성공에 따르는 기본이 되는 것이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은 선장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맡은 임무를 철저히 그리고 완벽하게 해 나갈 때 험난한 폭풍우도 이겨낼 수 있다. 이는 한 배를 탄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믿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그만큼 믿음이란 조직에서 중요한 원칙이 된다.

학교라는 조직에도 마찬가지로 믿음이 존재한다. 요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하여 너무 많은 말들이 있어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학교라는 개념은 이 세상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아직도 선생님과 제자에는 바깥세상에서는 느끼기 힘든 믿음이 있기에 학교라는 조직이 건실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학생은 선생을 믿고 따르며, 선생은 학생이 자라서 이루어 낼 미래를 믿기에 학교는 존재하고 앞으로도 유지되어 나갈 수 있다. 결국 믿음이란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또한 확실히 말할 순 없겠지만 틀림없이 우리 곁에 존재를 하고 있다.

기업과 고객 간에도 믿음이란 존재한다. 우리가 어떤 회사나 어떤 가게의 물건을 구매할 때는 가장 먼저 기업에 대한 신뢰도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 막상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이들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브랜드라는 가치에 맹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처럼 물가가 주야장천 치솟는 이런 시기에는 브랜드라는 가치에 너무 많은 일방적 믿음을 던지는 것은 아닐까? 가끔은 소비자의 올바른 신뢰가 올바른 기업을 만들어 내는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와 국민 사이의 믿음은 어떠할까?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한다면, 나라의 존립 여부는 논의할 가치가 없다. 결국 국가도 국민의 믿음이 모여 존재할 따름이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수많은 믿음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이렇게 많은 관계에 존재하는 믿음의 가장 깊은 우물은 무엇일까? 수많은 믿음에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하며, 가장 큰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은 바로 나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은 ‘자신이 자신을 믿는다.’가 근본이 되어야 한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가지와 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모진 폭풍우에 부러지고 떨어지더라도 뿌리가 있기에 다시 생명을 피울 수 있다. 뿌리가 빠지면 그 나무는 결국 말라죽고 만다. 우리가 사람을 믿고 조직을 믿는 것이 가지요, 잎이라면, 뿌리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믿지 않으면 모든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해를 보내는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그 누구보다 자신에 대하여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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