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은 평범하게 살면 뒤쳐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인간은 인간이기 이전에 동물로 태어났다. 인간의 본성은 동물의 본성과 거의 같다는 말이다. 동물의 본능은 생존과 번식이다. 생존을 위해 환경에 맞추어 진화한다. 진화의 결과는 경쟁으로 나타나고, 경쟁은 승자와 패자로 나누어진다. 환경에 맞추어 진화하지 못한 동물은 번식을 선택한다. 새롭게 탄생하는 세포는 나면서부터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한 후손은 기존의 동물들과의 경쟁에서 쉬이 이기게 마련이다. 결국 동물의 세계는 영원한 경쟁으로 승자와 패자의 갈림길에서 생명을 이어간다. 이것이 야생 생태계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동물이 가지지 못한 천부적인 능력이 있다. 바로 이성이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고, 이성은 두뇌 발달의 산물이다. 인간의 이성은 타고난 천성과 결부하여 새로운 자아를 형성한다. 인간의 천성이 감성이라면 이성은 후천적 노력의 결과이다. 결국 인간은 감성과 이성의 조화 속에서 하나의 인격을 완성하며 세상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요즘은 이런 감성과 이성의 조화는 커녕 감성도 제대로 없고, 이성도 제대로 훈련하지 못한 그 따위의 해괴망칙한 인간들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 동물적 본능, 즉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을 넘어 군림하기만을 원하는 이들이 넘쳐난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동물적 본능조차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동물이라 할 수 없다. 감성이 없다면 이성이라도 있어야 반쪽 인간이라도 될 것인데, 이성조차도 잃어버린 이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 지 난감할 따름이다. 이름을 지어주는 것 조차 낯부끄러운 세상, 이름을 입에 담는 것 조차 혀를 망치는 세상에서도 반쪽 인간도 아닌, 짐승보다 못한 이들이 세상을 혼탁하게 만드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아니 보고 있는 내가 한심할 따름이다. 도대체가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엄연히 벌어지고 있으며, 도대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에서 떡하니 펼쳐지고 있으니 어찌 통탄하지 않을 것인가?
평범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타고난 감성과 태어나 갈고 닦은 이성으로 그나마 사람구실을 조금이나마 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평범한 것이다. 결국 우리를 거부하는 이들이 평범을 거부하는 것이다. 범부를 넘어 더 나은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면, 풍성한 감성과 고차원적인 이성을 가진 이가 되어야 한다. 역사를 통틀어 과연 그런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마나 위안을 삼을 이들이 몇 존재한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역사란 당시를 살지 않은 후대인들의 이야기. 지금 현실을 역사로 남긴다면 과연 역사는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감히 나는 주장한다. 역사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위대하다고 거짓을 남긴 그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펼쳐지는 이런 화려한 거짓 세상에서 뻔뻔히 고개를 쳐들고 다니는 모든 인간들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는 이 시대를 가장 어둡고 춥운 암흑의 시대로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 지금 내가 살고 있고, 나의 자식들이 살아갈 것이다. 이제 암막을 걷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