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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것을 볼 권리

by 말글손

무작정 빠져드는 동심이 걱정

미디어의 자숙이 필요하다


텔레비전이 처음 마을에 들어온 날. 온 동네 사람들은 한 집에 모였다. 전설의 고향을 보며 눈을 질끈 감았고, 전원일기를 보며 웃었다. 고도성장의 시기를 거치며, 기술은 종 잡을 수 없을만큼 발전했다. 신문에서 라디오로,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소식통이 변하더니 이제는 온 세상이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실정이다. 곧 내 눈 앞에 세상이 펼쳐질 예정이다. 정말 좋아진 세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세상은 갈수록 양방향 소통을 중요시 여긴다. 과거 일방적 정보전달과 유흥의 텔레비전 리모컨의 주인은 누구일까? 과거 버스에서 옆 사람이 보던 신문을 훔쳐보던 기억. 아버지? 어머니? 아니면 아이들?야구시즌이 시작되고 나면 텔레비전 리모컨 주도권을 가지려는 눈치가 치열하다. 야구를 좋아하지만, 나의 소중한 시간이 야구에 빼앗기기 싫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유가 생기면

현대에는 텔레비전때문에 가족의 불화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저마다 손 안에 제각각의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이나 신문을 들고 있기 마련이

그때는 내가 보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맞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었겠지만, 공영방송에서 나오는 뉴스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묘한 기능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정보를 내가 원하는 것이란 착각은 벗어나야겠다. 지금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기업의 경제논리에 의해 우리는 기업이 원하는 빅데이터라는 이름의 개인 정보를 자동으로 읽어들이며, 나도 모르게 나를 변화시킨다. 정보는 그렇게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변화시키게 마련이다. 먹방, 연예인들의 아이키우기, 타인의 연애사 훔쳐보기, 유명인의 수다, 정보가 하나의 완결된 정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파편화되고 미종결된 순간의 집중을 끊어먹는 수다 속에서 우리는 점점 세뇌되어 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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