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여자의 막내, 네 남자의 막내
삶의 방식이 서로 같진 않더라도 닮은 구석은 있게 마련이다. 특별하거나, 유별나진 않아도 제 나름의 방식을 조금씩 맞추면 조각이 맞아 들어간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아내는 딸만 넷인 집의 막내이고, 나는 아들이 넷인 집안의 막내이다. 아내는 도시에서 성장했고, 나는 시골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부터 자취를 하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지니게 된 나와 통금까지 있었다는 아내. 사귈 때는 보이지 않던 각자의 개성은 확연했다. 서로의 다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다름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부모가 되었고,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도 달랐다. 서로 다른 점이 많다는 것에 불편했지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니 서로의 책임에 대해서는 말없이 동의한 듯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다름에 다소 무뎌졌다. 둘 다 막내다 보니 양가에 두 어머님의 연세도 만만찮다. 자연히, 두 어머님을 모시는 일도, 명절도, 제사도, 김장도, 또한 두 집안의 대소사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결론은 단순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못하는 일은 못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부탁을 했다. 물론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은 어쩔 수 없다. 일상의 일에도 특별한 구분도 없다. 시간이 되는 사람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챙긴다.
우리 네 형제와 아내의 네 자매는 그렇게 서로 살아온 환경이 확연하게 다르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모습은 나름 괜찮다. 시간에 따라, 역량과 능력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고, 서로가 서로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서로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진다. 또한 서로의 인생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도움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을 다독거릴 뿐, 서로의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가 다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툼을 풀어나가며, 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살아간다. 잘 살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니다. 힘들고 어렵다. 삶이 말처럼 쉽진 않다. 하지만 사는 모습이 다를지언정, 사는 목적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너는 남자, 나는 여자. 나는 여자, 너는 남자. 이런 구분만 없어도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집성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높은 촌수로 동네에서 제법 어른 대접을 받던 꼬마와 도시에서 소중한 딸로 애지중지 성장한 꼬마의 삶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에는 닮아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