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는 아주 작은 산골 마을에 살았어. 진서네 집 뒤에는 나즈막한 산이 있었지. 하지만 그 산에는 전설이 있어. 그 산의 전설은…….
옛날 옛적에, 혼자서 뚜벅뚜벅 걸어 다니던 산이 있었데요. 그 산은 자신이 머물기에 좋은 곳을 찾아서 다녔지요. 그러다 넓은 들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지요. 들판은 넓었지만 산이 없어 자신들을 지키기도 힘들었데. 또한 강이 없어 물이 많이 부족했지. 하지만 사람들은 이웃들과 서로 친하고, 서로를 아껴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데요. 그래서 산은 그 마을이 마음에 쏙 들었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던 때였어요. 서쪽하늘의 붉은 노을이 아주 멋졌죠. 가을 들녘은 노을을 머금어 붉은 파도를 만들어 냈답니다. 그렇게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되는 곳에 아주 좋은 자리가 있었어요. 그 때였어요. 정기(부엌)에서 밥을 짓던 아낙이 밖으로 나오다 걸어오는 산을 본 거에요. 놀란 아낙은 큰 소리로 외쳤어요. “멈춰라, 게 섯거라.” 하고 말이죠. 아낙보다 더 깜짝 놀란 산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답니다. 그 후로 그 산은 그 곳에 자리를 잡았죠. 사람들은 그 산이 걸어 다니는 명산이라고 ‘거류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데요.
진서가 사는 동네는 감동이야. 왜 마을 이름이 ‘감동’ 이냐구? 그건 거류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너무 달콤해서 그렇다고 해. 그러니 마을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물론, 따뜻한 꿀물처럼 달콤했지. 감동마을에는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대부분이었어. 거류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로 벼농사를 지었지. 봄이 되면 논에 못자리를 작게 만들어야 했어. 못자리에 뿌린 볍씨를 고르는 동안에는 긴 겨울잠을 잔 참새들이 옹기종기 마당으로 날아왔어. 그러면 형들은 참새를 잡아서 국을 끓여 먹었어. 어떻게 참새를 잡았냐구? 대나무로 만든 소쿠리를 작은 나뭇가지에 받쳐 두는 거야. 그리고 그 나무는 줄을 묶어서 길게 늘여 방안으로 끌고 왔지. 그리고 그 소쿠리 아래에는 볍씨를 몇 알 놓아두면 참새가 볍씨를 먹으러 와. 그때 줄을 잡아당기면 끝. 서너 마리의 참새를 잡는 건 일도 아니었어. 그렇게 잡은 참새는 엄마가 국을 끓여 주었지. 고기 먹기가 힘든 시골에는 참새고기, 비둘기 등 날짐승, 토끼 같은 산짐승이 영양을 대신 채워 주었지. 그렇게 밭에는 고구마, 감자, 보리, 깨, 콩을 키우며 알콩달콩 살았어. 작은 마을치곤 사람도 꽤 많았어. 앞을 못 보는 봉사도 살았지. 갑수 아버진 어릴 때, 다쳐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데. 갑수네는 초가집에서 살았지만, 언제나 마음만은 넉넉했지. 갑수네 집에는 영우네 엄마는 욕쟁이야. 만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니까, 동네 아이들이 욕쟁이 엄마라고 불렀데. 사실 알고 보면 목소리만 컸지, 벌레 한 마리도 소중히 아끼는 아줌마였지. 들에 갔다 올 때면 항상 지게 속에 먹을 걸 숨겨오는 인규 아버지, 막대기를 집고 다니다 인사하지 않는 꼬마를 혼내는 민호 할아버지, 언제나 자기가 제일 예쁘다는 중학생 성희, 항상 군복을 입고 다니는 세영이 오빠등, 이렇게 온 마을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사는 감동은 말 그대로 감동이였지. 이 작은 마을에는 위험한 곳이 없어. 아이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밥도 얻어먹을 수 있었지. 모두가 한 가족처럼 말이야. 진서는 마을에서 유명한 귀염둥이야. 엄마가 진서를 업고 마을로 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진서를 안아보겠다고 난리였지. 진서가 조금씩 자라면서, 장난도 엄청 좋아하는 개구쟁이가 되었어. 어느 날 진서에겐 뜻밖의 큰 선물이 생겼지. 바로 원호였어. 원호는 세 살 때 진서가 사는 산골 마을로 이사를 왔어. 산골마을로 이사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진서는 무척이나 기뻤단다. 원호 아버지는 인근 시에서 가게를 하시던 젊은 분이셨어. 하지만 고향에 계시는 원호 할아버지를 도우러 이사를 왔지요. 원호 할아버지는 나이 때문에, 농사일이 벅차셨죠. 그래서 원호네 가족은 고향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이어받았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아이들은 많았어. 하지만 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이라 웃땀, 중땀, 아랫땀으로 나누어져 있었지요. 웃땀에 사는 또래 친구는 진서와 원호뿐이었어. 진서와 원호는 금방 단짝 친구가 되었지. 산으로 들로 놀러 갈 때도, 항상 같이 다녔어. 흙장난도 언제나 둘이 할 정도로 매일매일 붙어 다녔어. 하루는 진서 집에서 밥을 먹고, 하루는 원호 집에서 밥을 먹곤 했단다. 단짝인 둘은 언제나 꼭 붙어 다닌 걸 금방 알겠지? 형들은 없냐구요? 에이! 사실 형들하고 놀면 재미는 있지만, 언제나 심부름만 해야 하잖아. 한번은 형들과 큰골 고랑(작은 냇가)에 물고기를 잡으러 갔었어. 하지만 형들은 낚시할 미끼를 가져오지 않았어. 미끼는 바로 밥풀이었지. 형들은 진서와 원호에게 심부름을 시켰어. 언제나 처럼.
형들이 가면 금방 갔다 올 거리지만, 아이들에게는 꽤 시간이 걸렸죠. 그러면 늦게 왔다고 꿀밤을 주기 일쑤였어요. 그러면서 낚시는 형들이 다했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산에서 놀다가 배가 고파진 형들이 배서리를 시켰죠. 형들은 망을 보고 원호와 진서에게 배를 따오라고 시켰죠. 둘은 배 몇 개를 들고 산을 빙빙 둘러 도망쳐 오기도 했지요. 심부름만 시키는 형들과 노는 것이 재미있을 리가 없었지요. 그러니 원호와 진서는 둘이 노는 게 훨씬 더 재미있었답니다.
그렇게 사이좋게 지낸 진서와 원호는 무럭무럭 자라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이른 봄, 산과 들은 겨우내 덮어 쓴 누런 모자를 벗기 시작했죠. 듬성듬성 올라오는 푸른 싹들이 산과 들에게 새 모자를 만들어 주고 있었죠. 형들과 누나들은 모두 학교를 갔습니다. 어른들은 한 해 농사를 준비하러 들러 나가셨죠. 원호와 진서는 산과 들로 뛰어 다녔어요. 봄이 되면 쑥을 캐서 엄마를 드렸지요. 그러면 어머님은 맛있는 쑥국도 끓여 주시고, 쑥떡도 해주셨어요. 산에는 오늘도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고 있습니다. 오전 내내 마을을 돌아다니다 심심해진 원호가 말을 꺼냈습니다.
“진서야. 우리 형님들 매끼로 낚시 한번 가까?”
“아, 그랄까? 그런데 니 배 안 고푸나? 우리 밥 묵고 가 보자.” 진서가 제안을 합니다.
“그래, 그라모 밥 묵고 가자. 너거 집에 가까? 우리 집에 가까?”
“우리 집 가자. 가서 밥 묵자. 배 고푸다.” 진서는 냅다 집으로 달려갑니다.
“와-----. 밥 묵고 고기 잡으러 가자.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요?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두 아이는 신나게 달려갑니다.
시골 마을에서 어른들은 집에 점심을 차려두고, 일하러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들은 자기들끼리 뛰놀다, 지쳐 배가 고프면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먹습니다. 간식이라곤 없으니, 아이들은 먹을 게 있나 온 집을 뒤지곤 하죠. 집에 먹을 게 없으면, 아이들은 산이나 들에서 먹을 것을 찾아서 먹었지요.
“ 오늘 너거 집에 맛있는 거 있나?” 원호가 넌지지 물어봅니다.
“모리것다. 엄마가 밥 해놨다 카던데. 찾아보께." 진서는 부엌으로 갔습니다.
“와! 원호야. 계란 있다. 엄마가 후라이 해 났다.” 진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진짜로? 진짜 맛있것다. 퍼뜩 묵자.” 원호도 덩달아 신이 납니다.
진서는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면서 준비해 둔 달걀프라이도 가져왔어요. 두 아이는 점심을 맛있게 먹었지요. 점심을 먹은 두 아이는 슬슬 장난기가 발동했어요.
"좀 춥제?" 진서가 씩 웃으며 말합니다.
"그렇네. 와? " 원호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저어 게, 정기(부엌)에 소 죽 끓일 때 불 부치는 거 있다 아이가. 성냥이 있는데……" 진서가 말끝을 흐리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래서, 불 피알라꼬?" 원호는 겁먹은 듯 말합니다.
"행님들 소 죽 끓일 때 봤제? 우리도 해보자." 진서는 호기심에 찬 듯 눈을 치켜뜹니다.
"그래도...되것나? 그래, 해볼까?" 잠시 망설이든 원호는 갑자기 신난 듯 말합니다.
"그라모 불은 오데서 피아끼고?" 원호가 궁금한 듯 물어봅니다.
"니는 오데가 좋다고 생각하노?" 진서도 실실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라모 저쪽에 뻔덕(언덕)에 가보자. 무덤있는 뻔덕있다 아이가. 영국이 저거 산." 원호가 뿌듯한 듯 말합니다.
"그래, 가서 쪼깨만 피우다가 끄모 되지. 그자?" 진서도 신나서 말합니다.
"가자."
"가자." 누가 먼저라고 할 새도 없이 말하곤 집 앞 언덕으로 달려 갑니다.
진서의 손에는 옛날식 성냥 곽이 들려있습니다. 성냥도 그 안에 충분히 들어 있었습니다.
신이 난 두 꼬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언덕으로 향합니다. 무덤이 몇 개 있고, 푸른 소나무가 우거진 언덕으로.
언덕 앞에 앉은 두 아이는 서로를 말없이 바라봅니다.
"춥제?" 진서가 웃으며 말합니다.
"불이 나모 끄야 된다. 알것제?" 원호가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원호와 진서는 마른 침을 삼킵니다.
"한다." 진서는 성냥개비에 불을 붙입니다.
탁, 탁, 탁.
“와 잘 안되노? 행님들은 잘 하더마는.” 진서가 고개를 갸우뚱 거립니다.
“비키바라. 내가 해 보꺼마.” 원호가 성냥을 낚아채 갑니다.
탁, 탁.
“어? 잘 안되네.”
“내 한번 더 해보께.” 진서가 다시 성냥을 켭니다.
탁, 탁, 탁. 화르르. 불은 들판의 마른 모자에 말없이 옮겨 붙습니다.
활활!
"따시제?" 진서가 웃으며 원호을 바라봅니다.
"그렇네. 히히" 원호도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고매 꾸우(구워) 무거까? 진서가 입맛을 다시며 말합니다.
“안된다. 요게서는. 고매는 불이 세야 되꺼아이가.” 원호가 아쉽다는 듯 대답합니다.
불이 옆으로 조금 번질 때마다, 두 아이는 발로 풀에 붙은 불을 비빕니다.
“원호야, 저짜게 불 붙었다. 끄라. 퍼뜩.” 진서가 다급하게 외칩니다.
“알았다. 니도 저짜 불났다. 퍼뜩 끄라.” 원호도 지지 않고 소리칩니다.
“언냐. 알았다.”
신나는 불장난에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그때, 어디선가 낯선 바람이 휙 불어옵니다. 두 아이는 그 바람이 불기 전까지는 너무도 행복했지요. 마른 풀에 붙은 불 따위는 발로 비비면 꺼질 것이라 믿었으니까요.
휙 불어온 낯선 바람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어요. 갑자기 불똥은 옆으로 번졌죠. 그리고 두 아이가 감당하기엔, 여섯 살 두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불이 되어버렸어요.
불은 삽시간에 옆에 있는 짚더미에 옮겨 붙었어요. 활활활!
겁먹은 두 아이는 한 겨울 눈사람처럼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습니다.
(애들아! 위험해. 일단은 그 자리를 피해!)
"튀끼자." 두 아이는 동시에 소리치며 냅다 달립니다.
"어데로 가야 되노?" 두 아이는 겁에 질려 외칩니다.
"우리 집에 가자. 거름간에 숨으모 모릴끼다. 어른들한테 들키면 맞아 죽는다." 진서가 달려가며 말합니다.
진서와 원호는 함께 거름 창고에 숨었습니다. 진서네 거름 창고에는 소똥과 소 오줌을 받아 내리는 오줌통이 한쪽 구석에 있습니다.
"얼릉 숨자." 진서가 외칩니다.
"어, 응." 원호와 진서는 함께 냄새가 풀풀 나는 거름 창고에 쥐죽은 듯 숨어있습니다.
그때였어요. 원호가 그만 소의 똥오줌을 받아내는 똥간에 빠진 거에요.
하지만 천만다행이에요. 그 곳은 얕기 때문에 온 몸이 빠지진 않았지요. 그래도 허리까진 거의 똥물에 잠기고 말았지요.
하지만 겁이 난 두 아이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지요. 동네 어른들은 산불을 끄느라 허급지급 물동이를 날랐죠. 몇 분은 소나무를 꺾어 불을 끄고 계셨지요.
“아이고, 산 다 타것네. 퍼뜩 물 좀 날라 오소.” 아줌마의 큰 소리가 들립니다.
“아, 참내, 환장하것네. 불이 오데서 난기고?” 물을 나르는 아저씨들도 정신없이 뛰어 다닙니다.
바로 그 순간, 원호의 아버지가 오셨어요. 그리곤 원호를 말없이 안아 주셨어요.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겁났제? 오데 불에 딘데는(데인 곳은) 없나?” 원호 아버지의 말에 두 아이는 그만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응응응…….” 두 아이는 끊임없이 울었어요.
“괜찮다. 아부지 있다아이가.” 원호 아버지가 원호를 꼭 끌어 앉아 진서는 더욱 큰 소리로 울었어요.
“우아앙…….” 진서의 울음소리를 들은 동네 어른들은 진서를 대신 안아줍니다.
“괜찮다. 진서야, 울지 마라. 이제 불 다 껐다. 걱정하지마라.” 욕쟁이 영우 엄마가 진서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어요.
"진서야, 너거 엄마 밭에 가셨더라. 가 봐라. 아마 연기보고 오고 있을끼거마는." 영우 엄마는 평소와는 다른 아주 따뜻한 말투였어요,
진서는 울면서 엄마가 계시다는 밭으로 향합니다. 진서네 큰 밭은 걸어서 꽤 많은 시간을 가야합니다. 6살 꼬마에게는 한없이 먼 거리이지요.
밭으로 가던 진서는 그만 길가에서 울고 맙니다.그때였어요. 진서의 눈물 맺힌 눈에 멀리서 엄마의 모습이 보였어요.
“엄마!” 진서는 큰 소리로 울며 엄마에게 달려갔지요.
“어어응. 엄마, 나 산에 불 냈어.”
“그래? 놀랐겠네. 안 다쳤나?”
“응, 원우는 원우 아부지가 데꼬 갔어.”
“그래, 아부지도 지금 오고 계신다. 퍼뜩 가보자. 우찌 됐는고.”
“엄마, 내 어른들한테 욕 듣는 거 아이가?”
“괜찮다. 일단 가보자.” 진서 엄마는 진서를 등에 업고 집으로 향합니다.
“에구, 내 새끼, 오늘도 심심해서 원우하고 장난치고 놀았나? 그래도 인자는 위험한 거는 하지마라. 그래도 안 다친 게 천만다행이다 아이가. 너거 아부지가 니 다쳤으모는 억수로 썽 냈을낀데. 그래도 다행이다.” 엄마의 잔잔한 이야기에 진서는 까만 얼굴로 잠들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동네 어른들, 미안합니데이. 이 놈의 자슥이 아직 천지도 모리고.” 엄마는 불을 끈 동네 어른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하하, 가만히 놔 두이소. 아아들이(아이들이)원래 그렇지예. 뭐. 별 스럽습니꺼. 우리도 다 그리 컸는데 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