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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할아버지 통일이 되면

by 말글손

제목 : 쌍둥이 할아버지

"통일이 된데요. 통일이. 엄마, 할아버지, 뉴스 봐요. 통일이래." 나는 들뜬 목소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왜 이렇게 흥분을 하고 있는 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고함소리는 온 집에 퍼졌다.

무료한 일요일 오후, 멍청히 누워 빈둥빈둥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연신 나오는 하품에 졸음이 살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텔레비전 화면이 바뀌었다.

"오늘 남북한 정상이 판문점에서 통일을 결정했습니다. 여러분, 국민 여러분! 이제 대한민국은 진정한 하나의 국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뉴스 아나운서의 들뜬 목소리, 울음 섞인 목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진짜야? 와! 이거 정말 좋은 일이다. 드디어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는구나!” 엄마는 우는 듯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방으로 갔어요. 할아버지는 한국전쟁이 난 후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북쪽에 가족이 있다고 들었는데,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통일이 된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퍼뜩 떠올랐어요.

할아버지 방으로 간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 결국은 이렇게 되었구나. 이제는 나도 한을 풀 수가 있겠어.” 올해 아흔이 다 되어 가시는 할아버지께서 흐느끼십니다. 여태껏 한 번도 할아버지께서 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습니다.

저녁을 준비하시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밖으로 나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우리 밖에 나가볼까? 사람들이 어쩌는지 궁금하구나.” 아마도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이 부끄러울까 봐 나가자고 하신 듯합니다.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다. 6학년인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저렇게 웃는 엄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와! 쿵쿵 쾅쾅. 만세, 만세!” 옆집, 앞집에서 큰 소리로 외치는 이웃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뉴스에서만 난리가 난 게 아니었습니다. 온 세상이 난리가 났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서로 한마음으로 하나의 국가를 이루기로 한다는 소식에 세상에 난리가 났습니다.


얼마 전부터 텔레비전에서 우리 대통령과 북한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자주 만나 무슨 회담을 한다는 뉴스가 자주 나왔습니다. 어른들은 언제부턴가 통일에 대한 이야기만 했습니다. 통일이 되면 좋다, 안 좋다며 서로 옥신각신 다투기도 많이 했죠. 그런데 통일이 되어버렸어요. 아니 통일이 된다고 합니다.


마을에는 커다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건 완전히 세상을 뒤집는 것 같은 소동입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온 마을이 들썩들썩하고, 저쪽 시장은 시끌벅적 정신이 없습니다. 엄마와 골목을 나서는 나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틀림없이 통일이 좋다고 했지. 하지만 통일이 되면 좋지 않다고 하는 분들도 많았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좋다고 해야 하나? 안 좋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고민에 싸였습니다.


'항상 어른들이 말하던 통일이 되면 정말 좋은 건가? 얼마 전에 영미 할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얼른 통일이 되어 이산가족도 다시 만나고, 우리도 북한 땅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어야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이나 친척이 보고 싶은 늙은이들은 어떻겠니?" 하면서 한 숨을 푹푹 내 쉬셨습니다. 하지만 옆 집 정훈이 아버지께선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 경제가 더 힘들어 질 거다. 아무래도 북한한테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 줘야 하니까." 하시며 걱정스러운 듯 말씀하셨죠.

'아니다. 저번에 훈서 어머니는 통일이 되면 우리가 더욱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했지. 평화통일이 되면 정말 좋겠다고 했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에고, 모르겠다. 엄마가 좋다하면 그냥 좋은 거지.’


사람들이 하나둘씩 골목으로 나옵니다. 골목 입구에 있는 막걸리 집에는 동네 어른들이 하나둘 모이십니다.

"이 사람아. 뉴스 들었지? 큰일이구먼. 이제 세금도 더 많이 내야 할 거고." 희주 할아버지는 국민들이 낼 세금이 많아질 것이라고 자리에 앉으며 한숨부터 내쉽니다.

"무슨 소리 하나? 이 영감이. 통일이 되면 이산가족도 만나고 북한의 국민들도 삶이 더 나아질 것인데." 희주 할아버지의 말씀에 친구 분이 대뜸 화부터 내십니다.

"그럼 자네가 내 세금까지 다 내고 북한 애들 돈 많이 주면 되겠네. 자네는 부자니까." 희주 할아버지도 큰 소리로 고함을 지릅니다.

막걸리를 마시던 희주 할아버지와 친구 분은 서로 탁자를 치면서 삿대질을 해댑니다. 슬그머니 문 앞을 지나 시장으로 가봅니다.


시장에도 난리가 났습니다. 두부를 만들어 파는 철수네 집에 온 동네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래, 철수 엄마는 어때? 통일이 되면 좀 좋아질 것 같나?" 한 아주머니가 두부를 사면서 흥분해 말하십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통일이 되면 남북한이 편하게 왕래하고, 북한 주민들도 좀 편해지지 않을까요? " 철수 엄마는 담담히 대답했습니다. “그래, 아무래도 우리도 좀 더 힘센 나라가 될 거야, 그치?” 두부를 사는 아줌마는 연신 싱글벙글하십니다. 가게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보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시장을 돌아 나오는 데 한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아직 준비가 부족합니다. 완전한 통일을 이루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힘들게 얻은 이런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으고 뜻을 모으면 우리 한반도는 세상 어느 나라보다 건강하고 힘이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북한과 남한으로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 서로를 보듬고 안아, 진정한 하나의 국가로 거듭나야 합니다."

마이크를 들고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맞다.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지. 그래도 점차 나아지겠지."

"맞습니다. 우리가 죽기 전에 북한으로 여행 갈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요, 이제 더 힘 있는 나라가 될 겁니다."

"와, 와, 와"

사람들은 저마다 웅성웅성하면서 연설자의 말에 박수도 치고, 환호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어디냐? 할아버지는 잘 계시니? 할아버지께서 놀라지 않으셨니?” 아버지는 다급하게 말을 던졌습니다.

“네, 할아버지께서 우셨어요. 우시는 것 같았는데 어머니가 나오자고 해서 따라 나왔는데요.” 나는 우물쭈물 말했다.

“그래, 아버지 일찍 가마. 저녁 같이 먹자.” 아버지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운동을 가신 아버지가 일찍 들어오신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아버지는 일요일에 운동을 가시면 늦게 오셨으니까요.

동네, 아니 온 나라가 통일이야기로 난리가 났습니다. 텔레비전에서도 매일 통일뉴스만 나옵니다. 신문도 통일이야기로 가득 찼습니다.

저녁이 되어, 온 가족이 방안에 앉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냥 평범한 일요일 저녁처럼 밥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오신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아버님, 이제 큰아버님을 만나실 수 있겠네요.” 아버지가 밥술을 내리고 말을 하십니다.

“그래, 이제는 만날 수 있을 거야. 형님도 건강하시길 바랄 뿐이지.” 할아버지는 자꾸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식사도 잘 안하시고.” 나는 걱정이 되어 조용히 여쭤보았습니다.

“그래, 할아비가 이제 너희들에게도 말을 해 줘야겠구나.” 할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입을 여셨습니다.

할아버지께는 쌍둥이 형이 있었어요. 어릴 때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 삼지연군에서 태어나 사셨습니다. 증조부모님은 할아버지가 열다섯이 되던 해에 돌아갔습니다.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평양으로 돈을 벌기 위해 내려오셨다고 합니다. 광복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모두가 먹고 사는 일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겨우 죽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는 날도 많았다고 하니까요.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정말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서로 생각이 다른 점이 있었데요. 할아버지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큰할아버지는 모든 백성이 고루 잘 살아야 한다고 하셨답니다. 할아버지와 큰할아버지의 생각이 달랐던 거지요. 그리고 전쟁이 났고, 할아버지는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오자고 했다고 해요. 하지만 큰 할아버지는 북한군으로 자진입대를 했다고 합니다. 두 분은 엄청나게 싸우셨고, 결국 홧김에 할아버지는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렇게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쌍둥이였지만, 서로 다른 생각으로 남한과 북한으로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꼭 70년 만의 일이라고. 그 동안 이산가족 상봉 신청도 수없이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만나지도 못하고 계셨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버렸고, 할아버지는 이제 아흔이 다 되셨죠. 하지만 형님이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이 할아버지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준 힘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지난 이야기를 하시면서 자꾸만 눈물을 흘리십니다.

“내가 그때 형님 곁에 남아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한이 되었지.” 큰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는 형님을 뵈면 나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거야.” 할아버지의 눈이 빨갛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한국은 이제 하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2020년 6월 25일은 또 하나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이 전쟁을 겪은 지 꼭 70년 만에 그 아픈 역사가 기쁨으로 바뀌는 날입니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여름방학이 다 되었습니다. 신나는 물놀이와 함께 여행을 갈 생각에 신이 났습니다. 해마다 떠나는 여행이지만 이번 특히 기대가 됩니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여행. “아버지, 우리 이번 여름방학에는 어디에 가요? 바다? 계곡? 설마 외국에 나가는 것은……. 하하하.” 벌써 신이 난 나는 혼자서 신나게 떠들어 댑니다. 온 식구가 둘러 모인 저녁시간입니다. 국을 한 숟가락 뜨신 아버지께서 진지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이번에 우리는 예전의 북녘 땅으로 간다. 할아버지께서 그토록 가고 싶어 하셨던 곳으로.”

“아버지, 그럼 그 곳에 친척들도 계신가요? 큰할아버지도 뵙는 거예요?” 순간 멋쩍어진 나는 작은 목소리로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래, 그 곳에 내 사촌 형님이 한 분 계신다는구나. 그리고 너의 형제, 그러니 육촌 형과 누나도 있다고 들었다. 이번에 함께 가보자.” 어느새 아버지의 목소리는 희망에 차 있었습니다.

드디어 방학입니다. 이번 방학은 통일에 관한 글쓰기와 그림그리기, 체험문 쓰기 숙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 없었어요. 가서 형과 누나를 만나서 신나는 시간을 보낼 것이 벌써 기대되었습니다.

7월 31일 아침 일찍 서두릅니다. 우리가 사는 경남에서 평양까지 가려면 한참을 가야합니다. 할아버지께서 몸이 편찮으시니 가다가 쉬어 가려면 먼 길이 될 거에요. 쉬엄쉬엄 가는 길, 한 낮의 태양은 따갑습니다. 하지만 푸른 산과 들판처럼 할아버지의 기분도 좋아 보입니다.

판문점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판문점에 왔습니다. 대부분 북쪽 땅으로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판문점을 넘어가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신분증을 조사하고, 그리고 방문목적을 이야기하고, 있을 곳과 머무를 기간도 작성해야 했습니다. 마치 학교 영어 시간에 배운 다른 나라 방문하는 것처럼 말이죠.

“할아버지, 어디로 가세요?” 북한 안내원 누나가 친절하게 물어봅니다. 안내원 누나는 TV에서 듣던 그런 말투를 씁니다.

“어, 내는 평양에 내 쌍둥이 형을 만나러…… .” 할아버지는 벅찬 마음에 말을 잇지 못하십니다.

“얼마나 계실 건가요? 이번에 형님 만나면 처음 뵙는 건가요?” 안내원 누나도 궁금한 게 많은가 봅니다.

“그래, 헤어지고 꼭 70년 만에 만나지.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형님과 그 곳에 함께 살지도…….”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인지 우는 얼굴인지 알 수 없는 표정에 눈물을 흘리십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씩씩하게 인사하고 판문점을 지나왔습니다. 서서히 우리 차는 판문점을 지나갑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할아버지의 형님을 만나러 가는 길. 할아버지의 눈에는 푸른 하늘이 담겨져 있습니다. 푸른 하늘에는 높은 산이 솟아있고 긴 강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눈물 한 방울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제야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통일이 되면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라는 그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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