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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자와 여기자

by 말글손

남기자와 여기자

무의식에 숨겨진 선입견을 되새기며

성에 따른 차이를 넘어 사람의 차이를 알아가길


같은 언론사에 다니면서 같은 현장을 나가는 일도 흔하진 않지만, 같은 대상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흔하다. 남기자와 여기자가 한 현장으로 동시에 목격했다. 밤 11시가 넘으니 세상은 고요했다.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시간이지만, 코로나19 방역 수칙 때문에 가게들은 일찍 문을 닫았다.


그때였다. 골목 어딘가에 제법 많은 이들이 모여 휘청거렸다.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도 한참이 지났을 시간이었다. 어느 가게가 방역 수칙을 어겼는지, 아니면 저들이 방역 수칙을 어겼는지 정확하진 않았지만, 누군가는 방역수칙을 어겼음에 틀림없어 보였다. 대부분은 마스크도 쓰지 않았다.


여기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동년배인 남기자는 여기자의 그런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기자는 세상에 불만이 있어 속상했거나, 아니면 뭔가 기쁜 일이 있어 축하의 자리가 길어졌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여기자님. 너무 그리 삐딱한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나요? 매일 저러는 것도 아닐 건데. 어쩌다 한번 저러는 거겠죠.” 우린 우리 갈 길이나 갑시다.” 남기자의 말에 여기자는 불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시국에 그리고 이 시간에 저렇게 흥청거리고, 마스크조차 쓰지 않는다면 명백히 수칙을 어긴 게 아니겠어요? 방역수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잖아요. 서로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인데 말이죠.” 여기자는 사진을 몇 장 찍고는 메모를 시작했다. “아이코, 저런 게 뭔 문제라 그러는지 당최 이해가 안 되네요. 마스크를 쓰지 않은 건 좀 그렇지만. 흠흠.” 남기자는 여기자의 행동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 순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말다툼을 벌였다. 잠시 후 주변 사람들도 남녀로 나눠져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했다. 단순히 남녀의 싸움이라 보기엔 조금 위험해 보일 정도로 고성이 오갔다. “남기자님. 저러다 남자가 여잘 때리겠어요. 가서 좀 말려야 하지 않나요?” 여기자는 남기자의 등을 밀었다. 남기자는 어리둥절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 순간 여자가 남자의 뺨을 때렸다. “여기자가 가서 좀 말려 봐요.” 그 순간 남자는 여자를 밀쳤다. “우선은 기자의 본분에 충실해야겠어요.” 남기자는 현장의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 새라 카메라를 꺼냈다. 남기자는 무조건 현장 기록을 우선으로 남기자고 했다. 여기자는 우선은 현장을 여기자(여기다 : 주의깊게 생각하다, 네이버사전)고 했다. 잘 살핀 뒤 남겨도 무방하다고 했다.


서로 옥신각신 자신의 주장을 펼치다 결국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남기자는 사진기의 셔터를 눌러댔다. 메모지를 꺼내 눈에 들어오는 현장의 모습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작정 적어 내려갔다. 여기자는 요리조리 현장을 살피며,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남기자와 여기자는 각자 다른 제목의 기사를 정하고 각자의 색깔로 기사를 썼다. 이례적으로 언론사는 남기자와 여기자의 기사를 둘 다 공개했다. 남기자와 여기자는 서로 자신의 기사가 현장의 소식을 더 생생하게 전했다고 생각했다.


한 솥밥을 먹으면서 서로를 비방할 생각은 없었지만, 남기자는 현장감이 중요하고, 여기자는 기사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독자들은 두 기자의 기사를 읽으면서, 하나의 현장을 남기자와 여기자의 입장에서 접할 수 있어 좋다는 둥, 남기자처럼 현장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게 좋다는 둥, 여기자의 기사처럼 현장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게 좋다는 둥 왈가왈부 논의를 이어갔다. 남기자는 남씨를 쓰는 여자기자이고, 여기자는 여씨를 쓰는 남자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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