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껌 씹어 봤어예?

by 말글손

제 목

밀알 껍 씹어 봤어예?


의도


“추억의 한 편린이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들 수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가루 음식을 가장 많이 즐기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과 그 추억에서 연결된 어린 시절의 추억 여행을 통해 음식의 소중함과 그 음식으로 인한 추억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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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와, 자취를 하면서 시장에서 친구들과 사 먹던 칼국수. 풍성한 칼국수 만큼 넉넉했던 분식집 아주머님과의 대화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 밀알 껌을 씹던 추억을 생각하는 제 모습입니다. 밀이 아주 귀했기에 함부로 밀 이삭 하나 따 먹을 수 없었지만, 입안에서 오래오래 씹을 수 있었던 밀알 껌이 어찌나 행복한 추억이었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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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밀알껌 씹어 봤어예?


시골 깡촌에서 자라다 보면 언제나 먹을 것이 부족한 것이사실이다. 쉬이 말해 보릿고개도 살짝 겪으며 살아야 했던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창원으로유학을 떠나왔다. 내가 자취를 시작한 곳은 창원의 반송아파트, 비록열 평짜리 작은 아파트였지만, 방도 두 칸이나 있고, 좁지만아담한 부엌도 있고, 수세식 화장실도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 정확히 말해좌변기를 처음 본 것도 그때였다. 모든 것이 신기한 창원이란 동네에도 사람이 사는 맛은 시골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대 단지 아파트로 바뀌어 사람 사는 맛은 다소 떨어졌을 지도 모르나 아직도 그 곳에는 내가 사랑하는반송시장 칼국수 집이 있다. 자취생의 허기를 쉬이 달래줄 수 있는 칼국수. 그랬다. 분식집이었다. 나는아파트도 처음 보았고, 좌변기도 처음 보았으며, 잘 정리된주택단지도 처음 보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분식집이란 것도 처음 보고 들었다. 분식집에 가면 김밥, 떡볶이, 순대등 먹을 것은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물론시장 도로에 펼쳐진 포장마차에도 먹을 거리는 지천이었으나, 분식집의 칼국수는 어떤 누구도 따라올 수없을 만큼 맛있고, 그 양도 풍성했다. 피 끓는 고등학생, 특히 굶주린 야수같은 자취생의 배를 충분히 채우고 남을 만큼 그 인심은 더했다. ‘반송 칼국수’, 형님의 상업 실패로, 집도 절도 없이 쫓겨나듯 떠나온 반송 아파트였지만, 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시장의 지하 한 켠을 지키고 있는 칼국수 집은 언제나 제 2의 고향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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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집이 어떤 집인지도 모르고 들락날락 했었다. 중국집은 중국요리를 하고, . 횟집에는 회를 파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나는 분식집은 그냥이것저것을 파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참단순하긴 단순했나 보다. 분식집을몇 차례 드나들고서야 그 곳은 밀가루 음식을 파는 곳이란 것을 알았다. 가루 분을 나는 왜 몰랐을까? 아니,당연했다. 분식집에는 밀가루 음식보다 김밥과 떡볶이, 어묵이더 유명하니 그럴 수 밖에 없는 입장이 아닌가? 반송 칼국수 집에서 열심히 배를 두드리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칼국수를 먹을 때였다. 친구 녀석이 이런 말을친절한 주인 아주머니께 던졌다.

아줌마, 이 밀가리 수입이지예? 안그라모 이리마이 줄 수 있습니꺼?”

그라모, 다 수입이제. 국산가꼬 답이 나오것나? . 인자는 국산을 찾아 볼라케도 별로 없을끼거마는.”

밀가루, 밀가루가 국산이 없다니. 아니 밀가루를 수입해 쓴다는 사실을 그때또 처음 알았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당연히 밀가루를 국내산 밀로 만들 것이라 생각했다. 참 순진하고 멍청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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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얼굴에 먹 팅깃다.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나보다 세 살 많은 형은 학교에서 집으로돌아오는 길에 밀대의 “먹”-밀 중에 병이 걸려 썩으면 검은먹가루처럼 밀이 변함, 깜부기병-을 얼굴에 튕겼다.

이씨—행님, 니 두고 보자.” 나역시 밀대의 먹을 찾아 양손에 들고 형을 쫓아갔다. 한참을 뛰어가다 보면 밀대의 검은 먹은 오뉴월의바람에 실려 모두 날아가고 손에는 까만 흔적만 남아있었다.

오뉴월이 되면, 밀을 베어내고 벼를 심어야 했기에, 농촌의일손은 바쁘게 돌아갔다. 학교에 다녀오면 대부분을 들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 , 손에 남은 밀알을 한 입에 털어 넣으면 너무도 행복했다. 그렇게밀알을 삼키지 말고 꼭꼭 씹으면 존득존득한 껌이 되었다. 밀도 수매를 하고, 집에서직접 빻아 밀가루로 만들어 귀한 손님이 오시면 대접하는 음식이었기에 함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런귀한 밀을 한 입에 씹어 삼켜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밀을 꼭꼭 씹어 껌으로 만들고, 그 껌을 계속 씹다 보면 어느새 눈 녹듯 스스륵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리는 밀알 껌. 어찌 세월이 흐르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들 그 밀알 껌의 맛을 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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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매, 아지매도 밀알 껌 씹어 봤지예? 억수로 꼬시다 아입니까? 입에서도 살살 녹지예.” 나는 반송 칼국수 아줌마에게 넌지시 도움의눈길을 보냈다.

그라모, 안무거 본 사람은 모리제. 요새 도시아들은 알랑가 모리것다.” 아주머님의 한 마디에 친구들은 모두 동그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그 순간만은시골에서 행복한 추억을 간직한 내가 가장 행복했다. 가난했지만, 들에서익어가는 밀이삭 하나 제대로 따 먹을 수 없이 귀한 밀이었지만, 그런 소중한 추억을 준 밀, 그리고 그 밀로 만드는 맛있는 음식들. 우리에게 행복이란 지금의 부유함보다 살아오면서 나에게 켜켜이 쌓인 추억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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