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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an 25. 2023

어영부영

어영부영 살래?      

  ‘어영부영 살래?’ 혼잣말로 웅얼거렸다. 새해를 맞아 조금 더 계획적으로 선택과 집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해가 바뀌고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가는데도 어영부영 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영부영 산다고 큰 문제가 되겠냐만, 어영부영 살아서는 안 되는 시기도 있다. 누구에게나 중요한 변화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2023년은 우리 가족에게도 나름대로 생에 중요한 시기가 왔다. 구순을 맞는 어머니와 지천명을 맞는 나, 고3과 중3으로 선택의 기로에 선 아들. 자신의 일에서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는 아내와 형제들. 어영부영 살아서는 안 되는 한해를 맞았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뜻을 이루길 바랐다. 

  한참을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학생 캠프 진행을 위해 사천으로 운전 중이었다. 늘 듣던 채널이 지역 경계를 넘자 지지직거렸다. 채널을 돌리자 청취자가 참여하는 퀴즈가 한창이었다. 신이 난 진행자들의 힘찬 목소리에 기운이 솟았다. 이런 저런 퀴즈에 ‘정답’을 외치며 덩달아 신이 났다. “조선 말기의 어영청은 군대도 아니다라는 뜻으로 어영비영(御營非營) 또는 어영불영(御營不營)에서 나온 말인데요. ‘뚜렷하거나 적극적인 의지 없이 되는대로 행동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은 무엇일까요?” 하면서 각양각색의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하필이면 이 말이 퀴즈에 나오다니. 신기하면서도 한해를 더 알차게 보내라는 계시라고 생각했다. 

  3박4일의 캠프를 마치고 ‘어영부영’의 어원을 검색했다.(참 편리한 세상이다) 조선시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는 자신을 호위하기 위해 어영군을 설치했다.(1623) 왕을 호위하는 군대답게 기강이 엄격했고, 당시로서는 최신 무기인 총과 포를 주로 사용했다. 물론 근접전을 위한 활과 언월도 등 다양한 무기도 활용했다. 이후 세력을 키워 어영청으로 승격되었고 군사의 수도 260여명에서 5000여명으로 증원됐다. 특수부대의 성격으로 북벌의 선봉대로 활약을 했지만, 북벌이 무산되고 주로 양반들이 지휘부로 들어오면서 주색잡기로 소일하는 부대로 변하고 말았다고 한다. 우여곡절을 겪던 어영청은 1881년 근대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면서 극심한 차별도 받았다. 결국 군기는 문란해지고 병기마저 낡아서 도저히 군대라고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어영청 군대는 군대로 아니다’라는 말에서 어영부영이 나왔다고 하니 참 우습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세(情勢) 또한 어영청과 닮은꼴이지 않나 싶어 내심 걱정이 된다. 극심해지는 기후위기, 일 해야 하는 노령인구 증가, 여의치 않은 자녀 양육과 의식 변화로 인한 결혼 회피와 출생률 감소, 모든 것은 오르는데 내 수입만 오르지 않는 고물가, 일하고 싶은 일자리가 부족한 청년실업, 치열한 경쟁만 남은 복잡한 수도권, 힘을 잃어가는 농산어촌, 이익만을 추구하며 상생의 근본을 놓치는 기업, 정당함을 외치면서도 때론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 정권 따라 바뀌어버리는 지속성 없는 경제, 문화예술, 그리고 교육정책, 평등을 외치면서도 평등하지 않은 세대와 성의 갈등. 이런 현실을 화합과 통합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인데, 진보와 보수, 붉음과 푸름의 절대를 추구하는 정치를 바라보면 정신이 혼미하다.       

 국민은 국가의 근본이다. 국민의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고 어영부영 넘어가면 ‘어영청’꼴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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