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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Jul 26. 2024

꿈단지를 깬 아이

경남신문 금요 에세이

꿈단지를 깬 아이

엄마는 늘 나에게 꿈꾸라고 한다. 꿈을 잘 저축해 두면 언젠가는 꿈이 나에게 다가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일곱 살 때부터 들었으니 벌써 2년이 넘게 들어온 잔소리다. 나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다.

“꿈을 담아두는 건 좋은 거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잘 담아두는 거야.”


  1년 전부터 나는 꿈단지를 하나 만들었다. 꿈단지에는 그동안 내가 저축해 둔 꿈이 꽤 많이 모였다. 건강을 키우고, 웃음을 전하는 농부, 사람들에게 건강을 전하는 운동선수, 시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 아이들에게 행복한 배움을 전하는 선생님,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관 등 몇 개가 들었는지도 모를 정도다. 엄마는 내가 좋은 꿈을 의미 있게 꾼다고 칭찬했다. 기분이 참 좋았다. 오늘도 하나의 꿈을 저축했다. 감성으로 감동을 전하는 소설가. 꿈단지가 꽉 찼다. 행복했다.


  그렇게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열아홉. 꿈단지에 꿈을 쟁여 둔 지 10년이 넘었다. 어떤 꿈이 들어있는지도 다 잊어버렸다. 꿈단지를 열어볼 기회도 없었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엄마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어른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가려면 성적을 올려야 했다.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다녔다. 집에 오면 지쳐 잠들기 바빴다.

“의사가 되면 돈도 많이 벌고, 명예도 생기니까 의대가 좋겠어.”


  엄마는 꼭 의대에 들어가라고 했다. 세상이 의대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의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착한 아들이다. 죽도록 공부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물론 의대는 아니라도 내 마음에 드는 대학에는 합격했다. 하지만 가족의 반응은 싸늘했다. 엄마는 재수를 권했다.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전날 어린 시절 꿈단지를 떠올렸다. 단지를 열어보니 꿈이 차곡차곡 쌓여 서로 딱 붙어 있었다. 어떤 꿈을 담아뒀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확 짜증이 났다. 꿈단지를 발로 차버렸다. 꿈단지는 와장창 깨졌다.

‘저따위 꿈단지는 아무 소용 없어’


  박살 난 꿈단지에서 꿈이 하나둘씩 날개를 달고 날기 시작했다. ‘건강을 키우고 웃음을 전하는 농부’가 창문 너머 날아갔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엄마가 말하는, 세상이 말하는 그런 꿈은 나의 꿈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 꿈을 잡으려 쫓아갔다. 손에 잡힐 듯했지만, 쉽게 잡히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그 꿈을 쫓아다녔다. 하지만 세상과 동떨어져 살 수도 없었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꿈을 쫓아다녔다. 가끔은 멀리 도망가 눈에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기도 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꿈이 손끝에 닿기 시작했다.


  그때야 깨달았다. 꿈은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려고 행동해야 하는 사실을 말이다. 말로 하는 꿈은 그저 헛된 망상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손끝에서 간당거리는 그 꿈을 손에 잡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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