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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글손 Aug 27. 2024

할매의 도돌이표

할매의 도돌이표

1. 배고픈 귀신


  할매의 배꼽시계는 귀신보다 정확하다. 제사를 지낼 때마다 어른들은 돌아가신 조상님 귀신이 온다면서 시간에 맞춰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어릴 때는 12시는 되어야 제사를 지냈다. 귀신이 그 시간에 온다고 했다. 졸려죽겠는데, 늘 그 시간이었다. 6학년인 지금은 9시에 제사를 지낸다.


“아빠, 예전엔 12시에 제사를 지내다 요즘은 왜 일찍 지내?”


“일찍 지내는 게 어때?”


“주말에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는데, 평일에는 학교 가려면 힘들지.”


아버지는 요즘 귀신도 신식이라고 했다.


“요즘 귀신들도 바쁘고 피곤하겠지. 우리도 요즘 바쁘잖아. 예전에 농사를 지으며 시골에 다 같이 살 때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다들 도시에서 바쁘게 살면서 시간 내서 고향에 오니 더 피곤하겠지.”


아버지께 귀신이 언제 오냐고 물으니, 배고플 때가 되면 온다고 하셨다. 그러니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서 2시간 단위로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옛날부터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자시라고 했다. 12지신의 처음인 쥐가 하루의 시간을 닫고 하루의 시간을 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하루의 마침과 시작이 동시에 이뤄지는 새벽 12시에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그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귀신은 사람하고 달리 12시가 되면 배가 고픈가 보다. 영어의 ‘breakfast’가 ‘금식을 깨다’라는 ‘break+fast’라고 하니 귀신은 우리하고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저승도 갈수록 바빠져서 일찍 오는지도 모른다.


 


 2. 힘겨루기


 귀신보다 시간을 잘 맞추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린 지 5년이 다 되었다. 어릴 때는 자주 할머니를 뵈러 갔는데, 요즘은 이래저래 나도 바빠져 조금씩 농땡이를 부린다. 그래도 한 달에 두어 번은 할머니께 간다. 갈 때마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언제나 같은 말을, 언제나 최소 30번 이상은 들어야 겨우 주제를 넘길 수 있다. 바로 밥이다.


“밥 먹어야 될 거 아이가? 밥은 있나? 밥을 해야 할 건데. 반찬이 있는가? 내가 요새 장에 못 가서 찬도 없다. 아이코, 없으면 그냥 있는 걸로 묵자.”


“엄마, 배 고픕니까? 밥 차릴까예?”


“내는 배 안 고푸다. 일도 안 하는데, 배 고푸도 안하다. 너거가 밥 먹어야 할 거 아이가? 밥을 해야제. 반찬이 있는가? 요새 내가 장에 못 가서 찬도 없다. 아이코, 없으면 그냥 있는 걸로 묵자.”


“배 안 고푸면 조금 있다 묵읍시다. 애들도 일어나야지예.”


“자고 있는 사람들은 누고?”


“엄마 손자들이지예.”


“아~들이가? 깨배라.”


“밥 먹어야 될 거 아이가? 때가 되모 밥을 묵어야지. 밥은 있나? 밥을 해야 할 건데. 반찬이 있는가? 내가 요새 장에 못 가서 찬도 없다. 아이코, 없으면 그냥 있는 걸로 묵자.”


할머니의 말이 도돌이표를 따라 돌기 시작했다. 잠시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조금 있다 먹자는 아버지와 당장 밥을 차려서 먹어라는 할머니의 힘겨루기. 같은 말만 되풀이하면서 힘겨루기는 끝이 날 듯하면서도 제법 오랜 시간을 끈다.


 


3. 예쁜 치매


  할머니는 자식들을 키우느라 평생을 쉬지 않고 일만 하셔서 거의 걷지 못하셨다. 유인원처럼 겨우 네발로 걸으시더니, 이제는 아예 엉덩이로 기는 것도 힘들어하신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잘 걷지 못하면서 집에 오래 계시더니 치매가 왔다고 하셨다. 마을회관에서 공부도 하시더니, 오가는 길이 힘드시다며 집에 계시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자신을 ‘아가’하고 부르셨을 때 느낌이 이상하다고 하셨다. 요즘 할머니는 방과 청마루만 오가시고, 겨우 화장실만 다녀오실 수 있다. 그런데도 가끔 어느 시절을 떠올렸는지는 모를 때가 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가 텃밭에서 일을 하시면, 네발로 엉덩이를 끌며 밭에 가신다. 가끔은 멍하니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가끔은 호미를 들고 풀을 맨다. 마늘 쫑대를 뽑을 때는 힘이 없다며 방법을 알려주시기도 한다. 겨울에 시금치는 직접 캐고 개리기도 하신다. 시금치를 개리는 손은 번개만큼 빠르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마을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소문이 났다던 할머니시다.


  그런데 치매가 심해질수록 할머니의 지혜는 다 배꼽으로 간 것 같다. 시계는 엉터리로 보면서도 밥때를 맞추는 건 정확하다. 아침 7시가 되면 어김없이 할머니의 ‘밥 먹어라’가 시작된다. 그리고 정오가 되면 다시 밥과의 전쟁, 저녁 6시가 되면 또 한 번의 전쟁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할머니의 밥때를 자꾸 늦추신다. 진지를 거의 드시지 않는 문제도 있지만, 주무시고 일어나서 바로 드시면 숟가락도 잘 안 드셔서 적당한 시간이 되길 기다린다. 오전 11시경이 되면 첫 끼를 드시는 게 일상이 되었다. 평일에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는 시간이 11시다. 그래서 진지를 드시는 때는 언제나 11시 30분경이 된다. 그렇게 평일을 잘 버티신 할머니.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할머니를 뵙는 주말이 되면 할머니의 배꼽시계는 정확하게 작동한다. 치매에 걸리면 고집도 세지고, 험한 말도 많이 하신다는데 할머니는 조금 다르다. 배꼽시계만 돌아간다.


 


4. 어린 할머니


  할머니는 그렇게 자상하거나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 편은 아니었다. 늘 하시는 말씀은 같았다.


“밥 잘 챙겨 먹어라. 열심히 해라. 건강이 최고다. 고생이라도 지나면 금방이다.”


치매 초기에는 젊은 시절 삼베를 짜던 이야기를 재미나게 해주셨다. 손짓, 발짓, 몸짓까지 다 하면서 동네에서 삼베를 제일 잘 짰다며 자랑도 하셨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이 밥 치러 오던 이야기, 한국전쟁 때 전투기가 날아다니던 이야기도 해주셨다. 제철이 되면 농사는 무엇을 지어야 하는지, 할아버지 제사가 다가오면 장을 뭘 봐야 하는지 하나도 잊지 않는 분이셨다. 할머니는 그러셨다. 최근의 기억부터 잃어가는 게 치매라고 아버지가 그랬다. 아마 지금은 할머니는 30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끔 아버지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가 누고?”


“석입니다.”


“니가 석이가? 인자 모리것네. 너거들은 누고?”


“엄마 손자들 아입니까. 훈서하고 정훈이.”


“훈서하고 정훈이가? 오이라. 앉아라. 밥 묵어야 할낀데. 밥이 있나? 반찬이 없을낀데.”


“엄마, 배 고픕니까? 밥 차릴까예?”


“아니다. 내는 안 묵을끼다. 일도 안 하는데 입맛도 없다.”


“아이고, 밥때가 되었는데 너거들 밥을 묵어야 할낀데. 밥이 있나? 반찬이 있나? 냉장고 한번 바라.”


한참을 되풀이하던 밥 이야기는 밥상이 드나든 이후에도 이어진다.


“너거들 밥 묵어야 할낀데. 반찬이 있나?”


“방금 먹었다 아입니까? 엄마가 거의 안 드셔서 배 고픈가베예? 밥 드릴까예?”


“밥 묵었다꼬? 그래.”


그렇게 실랑이는 대충 마무리된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기 전에는 마을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소문이 났다고 하셨다. 언젠가 동네 어른들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코, 니가 새몰띠 손주가? 너거 할매가 그리 똑똑하더마는 요새는 회관에도 안 오시고.”할머니는 똑똑하셨던 게 틀림없는 것 같았다. 지금도 가끔 그런 순간이 있긴 하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의 말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할머니의 배꼽시계는 여전히 정확하게 돌아간다.


 


 


5. 도돌이표


할머니 댁에서 보내는 주말은 왜 그리 시간이 더디게 가는지 모르겠다. 아빠는 주말이 다가오면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이번 주말에 할 일이 있나? 특별한 일 없으면 시골에 갈래?”


“이번 주도 가야 해?”


“당연한 거 아니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당연히 할매한테 가야지. 우리를 있게 해주신 분 아니가?”


“이번 주에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는 학교 가모 만난다 아이가. 할매는 언제까지 볼 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가야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아버지는 시골 할머니 댁에 종종 다녀오신다.


“오늘은 할매가 영 힘이 없더라. 자주 전화드려.”


“아빠가 하면 되잖아.”


“아버지는 맨날 하지.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이니 자주 전화하고, 너거들은 손자니까 가끔이라도 전화 드리는 게 도리 아이것나?”


몇 년 전만 해도 할머니께 전화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다. 늘 환하게 맞아주시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밝았다.


“그래, 니가 정훈이가? 밥은 묵었나? 아푼 데는 없제?”


“예, 할머니. 우리는 잘 지내요. 할머니는 식사 하셨어요?”


“은냐. 내는 밥 먹었다. 아부지는 일하고 왔나?”


할머니와 이런저런 수다를 오 분 정도 떨고 나면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버지, 할머니 저녁 드시고 쉬고 계신데요. 주말에 바쁘면 안 와도 된 데요.”


“그래, 그래도 가 봐야지.”


아버지도 갈수록 할머니를 닮아간다. 했던 말을 또 한다. 주말이 다가오면 언제나 같은 말이다.


“이번 주말에 할 일이 있나? 특별한 일 없으면 시골에 갈래?”


“이번 주도 가야 해?”


“당연한 거 아니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당연히 할매한테 가야지.”


“이번 주에 친구들 만나기로 했는데…….”


‘어라? 그러고 보니 나도 늘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나 역시 언제나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도돌이표가 우리 가족에게 붙어 있다. 세월을 거꾸로 가는 할머니는 도돌이표다.


 


약력

2013 서정문학 등단

E-book : 시시콜콜 잡다한 이야기, 감도둑 잡아라


출판 : 꿈보다 해몽, 하루 48시간, 아쉽다?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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