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글손 Jan 06. 2025

아빠는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미완의 원고

아빠는 초등학교에 다닙니다 

(시즌 1)


말글손 時人 장진석          

  공부가 어려운 이유는 하기 싫어서랍니다. 우리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해요. 그래서 저보고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데요. 싫으면 어렵고, 어려우면 또 하기 싫으니까 말이죠. 그래서 뭐든지 재미난 일이 있으면 해보래요. 아버진 늘 재미난 일만 한다면서 말이죠. 아버지가 부러운 이유는 바로 이거에요. 아버지는 늘 재미난 일만 하니까요. 저도 재미난 일만 하고 싶거든요. 야구하고, 공차고, 게임하고, 텔레비전 보고. 이런 일요. 그리고 맛있는 거 먹고. 이런 일만 하고 싶어요. 

  그래도 우리 집은 진짜 편해요. 공부하란 소린 안하거든요. 가끔 책이라도 좀 읽으면 어떻겠니? 오늘의 있었던 일이나, 느낌, 생각을 글로 쓰면 어떻겠니? 하는 약간의 협박을 빼면 말이죠. 오늘도 아버지는 일을 하러 나갑니다. 무슨 일을 하냐고요? 몰라요. 자신도 모른데요. 그런데 늘 바빠요. 그래도 늘 나갈 땐 이렇게 얘기해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버지는 선생님이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학교에 간데요. 참 쓸데없는 말 같아요. 집에 돌아오면 또 이렇게 인사해요. 

“학교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뭘 배웠어요?”

“오늘은 국어를 배웠다. 사람들과 어떻게 이야길 나누면 좋은 지 직접 경험했지.”

“무슨 얘길 했는데요?”

“음, 조금 어려운 이야기인데, 가족과 소통하는 방법이라든가? 직장에서 서로 존중하며 일하는 방법 같은 걸 이야기 했지.”

“그럼 수학은 안 배웠어요?” 

장난기가 발동해서 살짝 비꼬아 물어 봤지요. 

“왜 안 배워? 오늘도 배웠지. 오늘 수학시간은 조금 일찍 끝나긴 했는데, 지난 번에 거래한 학교에서 대금을 결제해준다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달라는 거야. 그래서 홈택스에 들어가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거래 정산을 마무리 했지. 오늘 수학시간은 조금 빨리 끝나서 아쉬웠다. 수학 시간이 많으면, 계산 할 게 많아서 이익도 되고, 때론 지출도 많아서 손해가 되기도 하지.”

“아, 머리 아파. 그럼 과학은?”

“보자, 과학은 좀 살짝 했나보다. 오늘 점심은 짜장면을 먹었지. 그런데 잘 관찰해보면, 똑같은 짜장면인데 어떤 사람은 짜장이 국물처럼 변하고, 어떤 사람은 짜장이 처음 그대로야. 왜 그럴까?”

“그야, 그 사람이 짜장면 먹으면서 침을 많이 흘려서 그렇겠지.”

“오, 대박, 맞아, 맞아. 그런데 그냥 침이 많아서 그럴까? 아니면 침 속에 뭔가가 있어서 그럴까?”

“그냥 침을 많이 들어가서 그런 거 아냐?”

아버지는 그날 과학시간에 배운 것을 얘기했어요. 침 속에는 아밀라아제라는 소화효소가 있는데, 이 아밀라아제가 짜장면을 만들 때 들어가는 전분을 분해해서 물이 된다고 했어요. 

“아, 오늘 과학선생님은 중국집에 일하시는 분인데, 너무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까먹질 않았지. 하하하. 아버지 이러다 중학교도 갈 수 있겠다.”

이러면서 꼭 한마디 던져요. 초등학교 공부는 인생 공부의 전부니까, 재미있게 해 보면 어떠냐고 말이죠. 점수는 상관없으니, 재미있게 하래요. 피, 그래도 어려운 건 사실인데 말이죠.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오늘 영어시간엔 뭘 배웠냐면…….”

“뭔데? 뭔데? 오늘 외국인도 만났어?”

시간 날 때, 영어 강의를 하고, 번역도 하는 아버지가 외국인 친구를 만난 줄 알았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갑자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이 말이 영어로 궁금해진 거야. 그래서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아무도 몰라. 하하하하하.”

“아버진 알아?”

“모르지. 생각 안 해봤지. 쓸 일이 없으니.”

“그럼 어떻게 알았어?”

“번역기를 돌렸지. 요새 누가 번역하고 앉아있냐?”

“그래서?”

“I'll be back from school.  이래. 하하하. 우습지 않냐? 이런 말이 어디 있어?”

“그럼 뭔데?”

“없어. 우리가 말하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와 잘 맞는 말이 영어에 없어. 신기하지?”

그리고 아버지의 잔소리가 터졌어요. 出必告 反必面(출필고 반필면)이란 말을 꺼냈어요.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반드시 얼굴을 뵌다'라는 뜻이래요. 외출할 때와 집에 왔을 때, 부모님께 알리는 자식의 도리를 비유하는 고사성어에요. 예기(禮記)에서 유래되었데요. 

“서양인들은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그래. 으하하하.”

평소에 이 세 말만 알면 외국에서 죽을 일 없을 거라며 늘 잔소리하는 아버지도 서양인들을 까는 게 즐거운가 봐요.

'Excuse me. Please. Thank you.'

이 말은 꼭 기억해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 말은 영어로 할 줄 알지요.

'Excuse me. Please. Thank you.'

“아유, 배고파. 밥 먹어요. 아버지.”

오늘도 아버지는 학교에 다녀온 걸 자랑이라면서 막 떠들어 댔어요. 배운 것도 많고, 너무너무 재미있는 하루였다면서. 내일도 학교에 간데요. 꼭 초등학교에 간데요. 초등학교에서 인생을 다 배운다면서. 나는 초등학교를 빨리 졸업하고 싶은데 말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