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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an 28. 2021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고?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

싫은 건 확실하네? 잘하고 있어.
좋은 걸 못 찾겠으면 그럼 아무거나 해.
뭐 그러다 보면 하나 걸리지 않겠어? - 봉현철부장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 보람

그럼 재미가 없잖아  - 봉부장


ㅡ 영화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을 보다가 이 대화를 듣는 순간 내 손은 재빨리 메모를 하고 있었다.

'삼진그룹영어토익반'은 2020년 10월 개봉한 영화로 상고를 졸업한 8년 차 동기 여직원 셋이 주인공이다. 아무리 업무능력이 뛰어나도 고졸이라는 학력 때문에 커피나 타는 말단직원에 머무는 것에 한숨 쉬던 그들에게 희소식이 들린다. 3개월 안에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 승진의 기회를 준다는 공지가 뜬 것이다. 이에 고졸 여직원들이 대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모인다.

업무능력 탁월한 생산관리부 오지랖 ‘이자영’,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샘솟는 마케팅부 ‘정유나’,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의 수학영재 회계부 ‘심보람’은 대리가 되면 진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열심히 영어공부를 한다. 그러다 자영이 옥주에 있는 공장에 본사에 상무로 발령 난 회장 아들의 짐을 챙기러 갔다가 공장에서 검은 폐수가 유출되고 이로 인해 하천의 물고기들이 떼죽음한 것을 목격한다.

자영은 유나, 보람과 함께 회사가 감추고자 하는 진실을 파헤쳐, 결정적 증거를 찾아 폭로하려 고군분투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싸움이었고, 배신과 패배의 쓴잔을 마시기도 했지만 결국 이들은 해낸다. 무엇보다 공장의 페놀 유출로 피해를 입은 지역주민들이 제대로 보상이라도 받도록 하겠다고 시작한 이 일이 피해보상은 물론이거니와 국제적인 기업사냥꾼에 의해 일본에 팔릴 위기에 놓인 삼진전자를 지켜내기까지 한다.

자영에게 왜 이 회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누군가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회사에서 하는 일이 뭔가 의미 있는 일이었으면 했어요. 그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 좋구요. 그런데 그 일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니 가만있을 수 없었어요."

대사 그대로는 아니지만 의미는 이러했다. 고졸이라는 이유만으로 말단 직원에 머물러야만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구에게 피해 주는 일이 아니라 의미 있고 나아가 도움이 되는 것이길 바라는 자영의 고백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회인으로서 머릿속에 꼭 담아야 할 철학이 아닌가 싶다. 돈만 벌면 된다고, 그로 인해 누가 피해를 입든 말든 그런 거는 신경 안 쓰는 후안무치한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이 살기 폭폭해지는 걸 볼 때마다 이런 직업윤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저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곤 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맨 위에 쓴 봉현철부장과 보람의 대화로 돌아가 보자. 이 장면의 대사는 좋아하는 일이 뭔지 모른 채 그저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싫은 건 확실한데 좋은 건 뭔지 모르겠다면 일단 싫어하는 일만 빼고 닥치는 대로 해보는 거다. 그렇게 열심히 뭔가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하나쯤 걸려들 거라는 말이, 죽음을 앞둔 인생선배 봉부장에게서 나온 잔잔하면서 유쾌한 대사가 참 좋았다.

어릴 땐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재미나게 사는 것 같던 아이들이 자라면서 점차 꿈도 사라지고, 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세상 재미없다는 듯 사는 걸 볼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어쨌든 그걸 하기 위해 사는 게 더 재밌어질 텐데, 문제는 그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모를 때이다. 이럴 땐 노답이라고들 하며 체념하지만, 답은 있다.

무작정 그냥 해보는 것이다. 이것저것 재지 말고, 뭐든 닥치는 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면 그중에서 하나쯤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발견하게 되지 않겠나?
그 일이 의미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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