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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05. 2021

나이테

흔히 나무의 나이는 나이테로 가늠한다. 그런데 아프리카같은 열대지방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는 추울 때만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이테는 고통의 나이인 셈이다.

- 제주 4.3 항쟁을 다룬 시를 썼다가 1년 남짓 옥고를 치룬 이산하 시인의 첫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에 나온 글이다. 시인은 1987년 ‘제주 4·3항쟁’의 학살과 그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가 석방 이후 10년간 절필하고 인권단체운동에만 전념해왔다.  

그래서 그의 산문집에는 홀로코스트, 세월호, 노동자를 비롯해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내가 가늠하기도 힘든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같이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시인의 깨달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추위의 고통을 겪지 않으면 나이테가 생기지 않듯이 우리 삶에는 일정 정도의 고통이 필수불가결하다.
고통은 우리를 성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연륜에 맞는 지혜와 통찰이 생겨난다. 지금 당장은 고통 속을 통과하는 것이 너무 힘들지만, 그 다음에 올 성장을 기대하며 고통의 순간을 잘 헤쳐나가야하는 이유이다. 그저 힘들다고만 여기고 한숨지으며 이 시기를 보낸다면, 아무 것도 얻는 것 없이 그저 고통의 시간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 또한 한없이 길어질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고통스럽다면
내 몸에 수평의 나이테 하나를 아로새기며
한뼘 더 성장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임을
기억하자. 지금은 바로 그런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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