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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19. 2021

자장매도 보고 무풍한송로도 걷고

양산 통도사

'통도사 가는 길'이라는 조성기의 소설이 있다, 1992년 민음사에서 나온. 당시 발표된 단편소설 중 가장 빼어난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 소설은 상실과 거부, 억압의 현실을 상징하는 서울을 떠나 아무것도 금하지 않는 세계(물금)을 거쳐 통도사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접하고, 20대 초반부터 가보고 싶어했던 양산 통도사를 벼르고 별러서 2월 11일 설연휴 첫날이자 섣달 그믐날 찾았다. 이로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7곳 모두를 가본 셈이 됐다.

통도사는 자장매로 불리는 홍매로도 유명하지만 삼성반월교라는 돌다리와 통도사 입구에서 절까지 걸어 들어가는 소나무길을 직접 걸어보고, 해질 녁에 춤추듯이 두들기는 큰북 치는 것을 꼭 봐야 한다고들 한다. 돌다리는 폭이 좁고 난간이 없어서 정신 바짝 차리고 건너야 하고, 통도사 입구 소나무길은 첫데이트 하는 남녀가 같이 걸으면서 소나무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통해서 저절로 손을 잡게 된다고 하는데 지금은 '무풍한송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통도사 무풍한송 길을 걷다"라는 책도 나왔다) 마지막으로 해질녁 저녁예불에 앞서  춤추듯이 유려하게 큰북을 두들기는 법고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이때 북을 치는 승려의 뒷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학을 보는 듯 멋지다고 한다.

나는 이 가운데 무풍한송로만 직접 걸었다. 삼성반월교는 사진 찍느라 그 주변을 맴돌았으면서도 정작 걸어보지 못했다. 통도사 입구 돌다리라는 사실만 알고 미리 검색해 보지 않아서 무풍한송로 입구에 있는 돌다리로 착각했던 것이다.ㅜㅜ 문제는 무풍한송로를 통도사 구경 다 하고 마지막으로 걸어내려왔다는 거다. 같이 걷던 남편이 내가 중요한 내용의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반만 걷고는 부리나케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를 끌고 내려와버린 것이다. 무풍한송로 입구의 다리가 그 유명한 통도사 돌다리가 아니란 사실을 깨달은 뒤엔 남편이 차를 타고 이미 매표소 입구로 내려오는 중이었다. 우리 차는 그날 삼성반월교 근처 주차장에 오후 내내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에서 그렇게도 많은 사진을 찍었으면서도 몰랐다. 업은 애기 삼년 찾는단 말이 딱 맞다.

무풍교 입구에서 통도사 부도원(浮屠園) 입구 선자(扇子: 부채)바위까지 1.5㎞의 오솔길, 차량 통행의 방해를 받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이 바로 통도 팔경 중의 하나인 ‘무풍한송(舞風寒松)’ 길이다. 무풍한송, 춤출 무(舞), 바람 풍(風), 찰 한(寒), 소나무 송(松). 언제나 바람이 춤추듯이 불어오니 주변의 소나무는 늘 차가운 기운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날씨에 이 길을 걸으면 알지 못하지만, 겨울에 이 솔숲길을 걸어본 사람은 이 말뜻을 알 수 있다. 통도천인 청류동천을 따라 부는 바람은 춤추듯 안겨오고, 솔숲길의 소나무는 늘 푸르러 따뜻함보다는 차가움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여름날에는 그 차가움이 시원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소나무 향기가 온몸을 간질이며 감싸고, 소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은 몸을 한 바퀴 휘돌며 지나간다. 소나무가 전해주는 바람에 향기에 색깔에 취해 걸어간다. 마치 다른 세계를 걷는 것 같다. 느리게 사는 삶을 즐길 수 있다. 무풍한송의 길을 걷는 것은 축복이다. ㅡ 통도사 무풍한송 길을 걷다. 「바람은 춤추고 솔은 푸르다」 中에서

이렇게 무풍한송로를 따라 20분쯤 걸어올라가면 드디어 영축총림이라 쓰여진 총림문이 보인다. 바로 앞에는 부도원이 있다.

총림문에서 왼쪽으로 너른 통도천을 끼고 5분쯤 더 걸어올라가면 오른쪽에 독특한 나무 장승 두 기와 돌장승 두 기가 방문객을 반기고, 바로 옆으로 거대한 규모의 성보박물관이 보인다. 성보박물관은 문화재 3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국대 최대 규모의 명성을 자랑하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를 이유로 휴관중이다. 언제쯤 코로나걱정없이 맘놓고 이런 박물관의 문화재를 볼 수 있을런지 한숨이 포옥 나왔다.

성보박물관에서 앞으로 50m쯤 더 걸어가면 드디어 '영축총림 통도사'라고 쓰여진 일주문이 나온다.
(앞에서 얘기한 삼성반월교는 바로 이 일주문 앞에 있는 돌다리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들어서면 드디어 통도사의 본격적인 가람들을 볼 수 있다.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통도사의 상징인 대웅전 옆의 금강계단을 정점으로 동쪽으로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면서 길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영역을 구분한다.
통도사의 가람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 통도사 소개서를 참고하시길 바란다. (일일이 쓰다보면 안 그래도 긴 글이 너무 길어길 것 같아서^^;;)


통도사는 낙동강과 동해를 끼고 있는 해발 1,061m의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선덕여왕 15년(646)에 창건된 천년고찰로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법을 공부하던 중에 모셔 온 부시 님의 사리와 가사 및 경책을, 금강계단을 쌓은 뒤 봉안하고 절이름을 통도사라 했다. 이는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와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계도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통도사는 삼보사 중 불보사찰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대웅전에 따로 불상을 모시고 있지 않다. 불상을 모시는 자리에는 통유리문이 있고, 그 유리문 뒤에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보인다. 사리탑을 직접 볼 수 있는 개방시기가 음력으로 초하루~초삼일, 보름, 지장재일(음력 18일), 관음재일(음력 24일)로 정해진 데다 시간도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까지인데 내가 간 날은 섣달 그믐날이라 개방시간이 아니어서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었다. 다만 대웅전 뒤의 삼성각 옆으로 난 담장 너머로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왼쪽엔 범종루, 오른쪽엔 극락보전이 있는데 아주 오래된 느낌의 당우가 첫눈에 들어오니 통도사가 천년고찰이란 소개가 무색하지 않았다. 통도사의 당우들은 고색창연하단 말 그대로 1300여년의 고스란히 느껴진다. 임진왜란 때 불타서 조선후기에 중건한 건물들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오대산 상원사나 월정사에서 느껴지던 '천년고찰이라는데 너무 새롭다'는 당혹스러움이 없어 좋았다.

무엇보다 절의 전체적 느낌이 아주 정갈했다. 지금껏 봐온 어느 사찰보다 잘 정돈되어있고, 깨끗했다. 법당에 모셔진 불상 뒤편을 보면 이 절이 얼마나 잘 관리되고 있는지 한눈에 보이곤 하는데, 통도사는 아래 사진처럼 불상 뒤편까지도 깔끔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나무바닥이 반질반질 닦여서 윤나는 것과 천정의 오래된 장식들이 내뿜는 고색창연함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사찰은 처음이었다. 돌아보는 내내 감탄하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찰이란 사실에 동의했다.


통도사 하면 무엇보다 전국 어느곳보다 빠르게 피는 홍매가 유명하다. 통도사 홍매를 보려고 계획했던 여행은 아니었는데, 운좋게도 마침 영각 앞에 자리한 홍매가 활짝 피었을 때 맞춰서 볼 수 있었다. 영산전과 약사전 뒤에 자리한 영각 앞의 홍매는 370년 수령으로 '자장매'란 이름으로 불린다. 자장매는 1650년을 전후한 시기에 통도사의 스님들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하여 심은 매화나무인데, 율사의 호를 따서 ‘자장매’라고 하였다고 한다. 내가 갔던 섣달 그믐에도 이 자장매를 찍기 위해 많은 분들이 커다란 사진기를 들고 출사를 나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래의 이쁜 사진도 이때 찍은 사진으로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극락보전 뒤 응향각 앞에도 매화가 피기 시작해 그곳에도 많은 이들이 매화나무 아래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자장매 맞은 편에는 지리산 자생의 백매화인 수령 300년의 오향매가 있는데, 이 나무엔 아직 꽃봉오리도 열려있지 않았다.

통도사에서 만난 보물 가운데 금목서를 빼놓을 수 없다. 작년 가을 찾았던 선암사에서 은목서의 강렬한 향에 깊이 매료되었기에 은목서보다 더 향이 강하다는 금목서는 어디 가야 볼 수 있나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통도사 황화각 앞에서 뜻하지 않게 금목서를 만날 수 있었다. 양옆으로 은목서를 끼고서 나란히 심겨져 멋진 수형을 뽐내고 있었다. 가을에 꽃이 필 때 통도사를 찾을 이유가 생겼다. 다시 가게 되면 이번에 못 걸은 삼성반월교를 꼭 걸어보고, 저녁예불에 앞서 울려퍼지는 통도사 법고소리도 가능하면 들어보고 싶다. 이번엔 아쉽지만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으로 만족한다. 좀 길지만 꽤 들을 만하다. 아래 법고 영상을 올린다.

* 통도사 저녁 예불 법고 소리
https://youtu.be/gd0pH26vgW4

송광사 법고 영상이 더 멋지다
https://youtu.be/IutfHkjwOyo


* 아래는 통도사 방문하던 날 저의 동선대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좀 많으니 쉬엄쉬엄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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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월교
가운데가 금목서. 좌우엔 은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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