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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06. 2021

군위가 삼국유사랑 뭔 상관?

경북 군위 여행 4

경북 군위를 다니다보면 '삼국유사의 고장'이란 표지판을 자주 보게 된다. 중고등 시절 역사시간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삼국유사, 대학에 가선 고전시가와 설화의 출처로서 자주 접했던 삼국유사가 군위와 어떤 상관이길래 군위는 이런 표어를 내건 것일까?

알고 보니, 역사적으로 문학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 삼국유사가 쓰여진 곳이 바로 군위 인각사이다. 그래서 군위에서는 그간 '고로면'이었던 지역을 2021년 1월부터 '삼국유사면'으로 행정명을 바꾸며 군위가 삼국유사의 고장임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촬영지인 우보면 미성리와 가까운 의흥면 일연테마로에는 '삼국유사 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 보각국사 일연(1206∼89)스님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유사(遺事)를 모아서 지은 역사책이다.(활자본, 5권 2책) 국보 제306호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중이다.(두산백과 자료에서는 부산 금정구 청룡동 범어사에 보관중이며, 1999년 11월 19일 부산유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좀더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역사서의 쌍벽을 이룬다. 《삼국사기》가 여러 사관에 의하여 이루어진 정사(正史)이므로 그 체재나 문장이 정제된 데 비하여, 《삼국유사》는 일연 혼자의 손으로 씌어진 이른바 야사(野史)이므로 체재나 문사가 《삼국사기》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나, 삼국사기에 없는 많은 고대 사료들을 수록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헌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에 관한 서술은 한국의 반만년 역사를 내세울 수 있게 하고, 단군신화는 단군을 국조로 받드는 근거를 제시하여 주는 기록이다. 그 밖에도 많은 전설 ·신화가 수록된 설화문학서라고도 일컬을 만하며, 특히 향찰로 표기된 《혜성가》 등 14수의 신라 향가가 실려 있어 《균여전》에 수록된 11수와 함께 현재까지 전하는 향가의 전부를 이루고 있어 한국 고대 문학사의 실증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두산 백과 참고)

그럼 인각사는 어떤 곳인가?
인각사는 경상북도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250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신라 643년(선덕여왕 12)에 원효가 창건하였고, 고려 시대에 크게 고쳐 지어졌다.

지금은 도로변에 인접한 평지 사찰이지만 원래는 깊은 산골에 있었다. 사찰의 남쪽에는 화산, 북서쪽으로는 옥녀봉의 가파른 지택이 드리워져 있으며, 사찰 앞으로 위천이 흐르고 그 북쪽에는 학소대가 병풍처럼 들려져 있다. 절 입구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 화산의 화려하면서 기품 있는 모습은 상상의 동물인 기린을 닮았으며 절이 앉은 자리가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지점이라 하여 인각사 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흥현」조에 “인각사는 화산에 있으며, 동구에 바위 벼랑이 우뚝한데, 옛 말에 기린이 이 벼랑에 뿔을 걸었으므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으로 전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고도 한다)


인각사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보각국사 일연의 하안소로 만년에 어머님 가까운 곳에 1284년부터 5년간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완성한 곳이기도 하다. 이때 일연이 총림법회 등 대규모의 불교행사를 개최하였고,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당시 이 절은 크고 높은 본당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앞에 탑, 좌측에는 회랑, 우측에는 이선당이 있었고, 본당 뒤에 무무당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까지 총림법회를 자주 열고, 승과 속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나, 그 뒤의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현재 이곳에는 일연의 보각국사비와 부도가 남아있으며, 경내의 당우로는 최근 해체·보수된 극락전과 요사 2동 , 명부전, 산령각, 국사전이 있다. 절 동쪽 미륵당에는 훼손은 되었지만 정교한 불상이 모셔져 있다. 1991년부터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려 시대뿐만 아니라 통일 신라 시대의 유구가 확인되었고, 금동병향로를 비롯한 소중한 유물이 다수 출토되었다.

인각사 정문에서 쭉 들어간 맞은편에 '일연선사생애관'이 건립되었고, 지금 그곳에선 '삼국유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일연스님의 생애와 삼국유사 집필에 관한 자료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28호로 지정된 인각사보각국사탑 및 비가 있다. 이 탑비는 1153년(의종 7)에서 1155년 사이에 사승(寺僧) 죽허가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서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병화로 글자의 훼손이 심하여 알아보기 어렵다. 그 밖에도 법당 앞에는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 있고, 탑 앞에는 높이 1.5m의 석불이 있으며, 절 앞 길가에는 만월당과 청진당의 석종형 부도가 있다.


인각사 주변에는 효심이 깊었던 일연스님과 어머님의 일화를 주제로 한 '일연테마로드'를 조성해 길 곳곳에 스민 일연스님의 행적을 좇으며 역사와 문화가 깃든 군위의 명소를 구경할 수 있다. 인각사를 지나쳐 군위댐으로 가다보면 일연테마공원이 넓게 조성되어 있는데 지금은 코로나 시기라 제한구역이 있기는 하지만 벚꽃 필 무렵 가면 멋진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 군위.
몽골의 침입에 속수무책 당해야 했던 고려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고자 일흔이 넘은 나이에 군위 산골 깊은 곳에서 글을 집필했을 일연스님을 떠올려본다.

한국사의 ‘아라비안나이트'라 불리며, 때론 진위논쟁에 휘말리기도 하지만 글에 담긴 백성에 대한 사랑,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은 진실하여 800년 넘는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고 이어진 것이 아닐까.


2021년, 행정명을 '삼국유사면'으로 바꾸기까지 하며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군위를 통해 어려운 시절 국난극복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던 일연스님의 큰 뜻을 되새겨보면 좋겠다.

#군위 #삼국유사 #일연 #인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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