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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04. 2021

바다 위를 걸어 다다르다

태안 안면암과 안면송 숲길

우연히 태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티비에서 보게 되었다. 태안은 여러 번 갔는데도 안 가본 곳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바다를 건너서 들어가는 안면암.

서산의 간월암은 썰물 때를 기다려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가야 하지만, 안면암은 물이 차있어도 부교를 이용해 갈 수 있으며 그것이 묘미란다.
마침 옆에 있던 남편에게

"저기 멋지다~ 우리가 왜 저기를 안 갔지?"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 주말에 우리는 안면암을 향하고 있었다. (아이구~ 이쁜 우리 남편, 궁디 통통)

안면암은 충남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 178-1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금산사의 말사다. 법주사 주지와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등을 지낸 지명스님을 따르던 신도들이 1998년 안면도 해변가에 지은 절이라고 한다. 부지면적 2727㎡, 건축면적 1652㎡이며, 천수만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3층짜리 현대식 건물로 지어졌다. 내부는 대웅전, 선원, 불경독서실, 삼성각, 용왕각, 공양처와 불자수련장, 소법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도 지장대원전을 불사중이다. 2월 초에 찾았던 양산 통도사의 고졸한 느낌과는 180도 반대되는 현대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에 살짝 당황했지만, 절 자체를 보러가기보단 절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과 절 앞에서 여우섬으로 난 부교를 걷기 위해 간 곳이라 이 부분은 잠시 접기로 했다.


아름다운 경관으로 널리 알려진 안면암은 태안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거의 들렀다 가는 필수 탐방 코스라고 한다. 그 이유는 사찰 앞쪽으로 펼쳐진 바다 풍광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특히 2층 법당에서 바라보는 천수만 풍경이 압권이라는데 우리가 간 날은 하늘은 맑건만 대기는 뿌연해서 시원하게 뚫린 풍경을 보진 못했다.


앞바다에 여우섬(여우가 살던 섬? 지금 그곳엔 정체불명의 컨테이너박스만 있다)과 조구널섬('조기를 널던 섬'이란 뜻)이라고 부르는 두 개의 작은 섬이 있는데, 첫 번째 섬까지 약 100여 m 길이의 부교(浮橋)가 놓여 있다. 밀물 때를 맞추면 30분도 지나지 않아 물 위로 들린 부교 위를 걸어서 섬까지 다녀오는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으며, 썰물 때는 갯벌 체험을 할 수도 있단다. 절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이 빼어나 출사를 위해 새벽 일찍 찾는 사람들도 많단다. 티비에서 본 바다 위의 절은 정확히 말해 안면암의 부속 건물인 '안면암 부상탑'이다.


썰물때는 갯벌 위에 서고, 밀물 때는 물 위에 뜨는 부상탑은 불자들이 부상교를 손수 만든 경험을 바탕으로 부상탑의 뗏목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하였다고 한다. 탑의 골격과 지붕을 만들거나 용접하는 데만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부상탑의 재질은 스텐골격과 동판으로 되어 있으며, 뗏목 위에 세워져 쇠줄로 고정을 했는데 세계적으로 이처럼 밀물에 뜨는 탑의 사례는 많지 않다고 한다. 부상탑 앞의 설명문에 따르면 태안군이 기름유출사고로 그 후유증에 시달려 왔는데, 이 지역이 '태안'이란 이름 그대로 '아주 편안한 곳'으로 회복되고, 태안군민뿐만 아니라 나라가 태평하고 전국민이 안락하고자 하는 호국의 발원으로 2009년 늦봄에 이 탑이 건립되었다.


뗏목은 가로 1 6m, 세로 13m, 높이 1.1m이고, 7층탑 본체의 높이는 11m이다. 1층 탑신의 동판에 48점의 12지신상, 21점의 신장상, 15점의 보살상, 9점의 불상을 새겼는데, 바다환경에 의한 산화로 그 조각들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자 그 위에 금분 페인트를 칠하고 이번 에는 각종 불화를 그려 넣었다. 1층 탑신 내외부의 그림들이 다른데, 모두 안면암 불자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린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혹시나 만조라 물이 너무 많으면 부교를 못 걸어갈까 싶어 물 좀 빠지면 가야겠다고 생각해 시간을 조절해서 만조에서 두 시간쯤 지난 시간에 도착했는데, 물이 너무 빠져버려서 물 위로 들린 부교 위를 걷는 맛은 아쉽게도 놓치고 말았다. 대신 드러난 갯벌 위로 여우섬을 한 바퀴 둘러보며 안면암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바닷바람을 느끼며 갯벌을 걸으면서 아직 덜 빠진 바닷물에 반짝이는 윤슬을 볼 수 있었던 건 더 좋았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안면암의 풍광은 또 다르다. 여우섬을 천천히 돌아본 뒤 뭍으로 돌아오며 만나는 안면암은 마치 중국이나 일본의 사찰을 보는 듯 이국적인 모습이다. 어떤 이는 이 풍경이 외국에 온 듯한 느낌이라 좋다고도 하는데, 나는 솔직히 별로였다. 한국 절은 한국 절다워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함양의 석굴암인 서암정사는 대만의 절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대만 자본이 들어가다보니 법당이 중국풍으로 지어진 게 이해가 되지만, 오로지 한국자본으로 한국스님들이 한국 신도들의 돈을 후원받아 지은 절이 왜 중국이나 일본스러운지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겉으로는 금칠까지 해서 화려하고 내부도 불상을 모신 곳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그 외에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들은 곰팡이가 피어 있거나, 집기들이 어지럽게 방치된 모습들이 너무 자주 보여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이토록 관리가 허술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마지막에 들른 해우소의 천정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초록바탕에 하얀 매화와 붉은 동백꽃이 마주보며 핀 모습에 절을 둘러보며 잠시 언짢았던 마음이 사라졌다.


대웅보전 앞의 동백나무와 삼성각으로 내려가는 길의 벚나무에 꽃이 피면 더욱 예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안면암 입구에는 '꽃 피는 절'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현대식 사찰이 하나 더 있는데, '이곳은 안면암이 아닙니다'란 표지판이 없으면 안면암의 부속건물로 여길 정도로 똑같이 생긴 사찰이다. 꽃 피는 봄에 밀물 때 맞춰서 다시 온다면 훨씬 더 볼거리가 풍성하리라 여겨지는 안면암이었다.


한 가지 더 추천하자면 안면암을 가려면 안면도자연휴양림 입구의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들어가서 구불구불한 좁은 시골길을 5분쯤 달려야 도착하는데, 입구의 안면송이 우거진 숲이 참 멋지다. 안면암에서 나오며 이 숲에 이르자 차에서 내려 천천히 중간까지 걸었다. 그날은 해무가 미세먼지랑 섞여서 시계가 개운하지 않은 날이었는데,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안면송으로 둘러싸인 길을 걷는 동안 맑은 솔바람을 느끼며 가슴이 툭 트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안면암을 가시게 된다면 이 숲길도 꼭 한 번 걸어보시길. 다만 차량 통행이 빈번하니 차조심하시고, 가끔 지나치는 경운기도 조심하시고^^


* 안면암 부상탑의 일출 풍경은 검은돌님 사진입니다.


귀여운 동자상들이 가득한 산잭로
안면암 들머가는 길의 안면송 숲길
매거진의 이전글 군위에도 석굴암이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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