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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22. 2021

붉은 산수유에 담긴 사랑

지난 주 토요일에 산수유마을에 다녀온 뒤, 왜 난 산수유마을에 그토록 가고 싶었나 오래오래 생각해 보았다. 산수유마을을 찾은 건 세 번째쯤 되고, 제대로 산수유꽃을 즐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벽 3시 반부터 준비해 4시 반에 부랴부랴 길을 나섰는데, 짙은 안개가 바로 우리 앞을 막았지만 계속 달렸다. 아마 안개가 이리 짙은 줄 미리 알았다면 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앞도 안 보이게 안개가 짙던만 새벽부터 어딜 갔냐고 나중에 어머님께 꾸중 들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50km대까지 떨어지며 천천히 조심운전을 해야 할 정도였음에도 산수유마을에 가기를 포기 하지 않았다. 안개는 중간중간 옅어지다가 다시 짙어지길 왔다갔다 하는 중에 구례에 가까워질수록 시야는 좋아졌다. 구례에 도착했을 때 산 아래는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고, 서서히 안개가 산을 따라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안개를 피해 마을 위로 올라가며 산수유마을의 노오란 산수유꽃과 하얀 안개구름을 동시에 감상하는 멋진 행운을 누렸다.


산수유는 내게 꽃보다 열매로 먼저 다가온 나무이다.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 덕분이다.

​    어두운 방 안에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이 잦아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셨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셨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마지막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성탄제 / 김종길.[현대문학]((1955.4) -


크리스마스를 굳이 성탄제로 고쳐 부른 것은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의 의미를 우리의 전통적 부성애와 같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병든 자식을 살리기 위하여 아버지가 눈 덮인 산 속을 헤치고 산수유 열매를 따오던 그 밤을 시인은 성탄제의 밤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눈 내리는 성탄절날 밤 성탄의 의미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는 화자에게 ‘불현듯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이 느껴지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말없이 온몸으로 보여주는 아버지의 사랑. 마치 어린 시절 내가 느끼던 아버지와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난 이 시가 더욱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이 시덕분에 산수유가 약재로 쓰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산수유는 두통·이명(耳鳴)·해수병, 해열·월경과다 등에 약재로 쓰이며 식은땀· 야뇨증 등의 민간요법에도 사용된단다. 한약재뿐만 아니라 차나 술로도 담아 먹는데 장복하면 지한(止汗)· 보음(補陰)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15년 전 지금의 아파트에 입주해 첫 봄을 맞이하면서 보니 , 집 주변에 산수유꽃이 천지였다. 겨울 끝무렵 단지 안에서 가장 먼저 노랗게 피어 봄을 알렸고, 가을엔 붉디 붉은 열매로 또다시 시선을 끌었다.
층층나무과의 낙엽교목인 산수유나무의 열매는 타원형의 핵과로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8~10월에 붉게 익는다. 긴 타원형인데, 과육을 씹어보면 약간의 단맛과 함께 떫고 강한 신맛이 난다. 10월 중순 상강 이후에 수확하며, 육질과 씨앗을 분리하여 육질은 술과 차 및 한약의 재료로 사용한다.


아파트 안에 조경수로 심어놓은 산수유가 가을에 줄기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빨갛게 열매를 달고 있어도 누구 하나 따는 이 없고, 새의 먹이로 쓰이기에도 너무 많은 양이라 다음해 봄까지 고대로 매달려있는 걸 보고는 어느 해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 주변에 있던 산수유 나무 하나를 털었다. 매년 산수유풍년이라 그 날 아이들과 딴 산수유는 국대접으로 한 그릇 정도였기에 딴 티도 안 났다.

그 산수유 열매를 말려서 씨앗을 제거한 뒤 천연해열제로 써볼까 하고 땄는데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한 알도 까보지 못한 채 봄을 맞이했다. 까만 비닐봉지 안에 들어있던 그 산수유열매들은 노랗게 산수유꽃이 핀 어느날 고스란히 산수유나무 아래 묻혔다.


그 뒤부터는 산수유열매를 봐도 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끔 아파트 안을 다니던 사람들이 겨울이 되어 다른 나무들이 노랗고 붉은 잎을 다 떨궈낸 뒤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빨간 열매를 꽃처럼 달고 있는 나무를 신기해하면서 바라보며 나무 이름을 궁금해하면, "산수유 나무 열매예요~"하고 아는 척을 할 뿐.

가을에 산수유마을을 찾은 친구에 따르면 상위마을에서 지리산 만복대를 오르는 등산로를 오가다 보면 산수유 열매가 붉게 물들면서 아름다운 장관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겨울 눈 속에 도드라진 붉은 산수유가 특히 압권이라고 한단다. 봄에만 산수유마을을 찾을 생각을 했는데, 겨울에 눈 내린 뒤 찾아가 볼 마음이 생겼다. 그 겨울 하얀 눈을 이고 있는 빨간 산수유 열매를 보게 되면,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를 떠올리리라. 그리고 지금은 늙으신, 나의 친정 아버지를 떠올리겠지. 산수유는 그래서 나에겐 아버지의 사랑이다.


구례 산수유 마을을 찾았던 날, 오전에 친정 아빠께서 집앞에 피어난 매화와 목련꽃 사진을 보내셨길래 나도 구례 왔다면서 산수유꽃 핀 풍경사진들을 보내드렸다. 그러구선 집으로 올라와 빨래하고 이것저것하느라 정신없어서 따로 연락을 안 드렸더니, 어째 집에 들어갔단 말이 없다고 아빠가 걱정을 하신다며 엄마가 전화를 주셨더랬다. 직접 전화를 하셔도 됐을 것을 보다 못한 엄마가 전화를 하실 정도로 여전히 자식에 대한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시는 아빠. 하지만 매일 좋은 글 읽으라고, 멋진 풍경 보라고 열심히 가족카톡방에 글과 영상을 올려주시는 분이 아빠시다. 산수유마을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건 어쩌면 내 안에 있는 아빠의 사랑을 눈으로 확인하고픈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산수유꽃이 지기 전에 해남에 다녀올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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