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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r 18. 2021

담장 틈의 개나리

평범한 산책길에서 놀랄만한 풍경들을 곧잘 접하는 요즘이다.

지난 주엔 동네 미용실 앞의 잘 가꿔진 꽃밭에서 즐거움과 행복함을 발견했다면, 이번 주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피어난 개나리꽃에 경이로움과 찬탄을 쏟아냈다.

이번에도 평소와 다른 길로 산책을 하던 중이었다. 큰 도로를 접한 곳의 아주 높다란 방음벽 담장 아래, 눈길을 확 잡아끄는 노란 물체가 있었다. 좁디 좁은 담장틈에 자리를 잡고 줄기를 늘어뜨린 채 다닥다닥 꽃송이들을 달고 있는 개나리였다. 누구도 돌보지 않고,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은 그 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발현하기 위해 그 개나리는 긴 시간동안 얼마나 분투했을까?

친구들과 무리지어 피고 싶었을 텐데, 어깨동무하고 깔깔대고 웃으며, 니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앞다퉈 자신의 살아있음을 뽐내고 싶었을 텐데...
그 개나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렇지 않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홀로 그 외진 곳에서 시끄러운 차소리를 응원가 삼아 한뼘한뼘 뻗어나가 꽃을 피웠을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환경, 적어도 남에게 뒤처지지 않는 환경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야 덜 수고하고도 더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이는 건 이런 환경의 중요함을 말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기를 선택할 수 없듯이, 어느 환경에서 태어날지 또한 선택할 수 없다. 복불복이고, 타고난 운일 따름이다. 이미 주어진 환경을 언제까지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내 몫의 삶을 위해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환경에 굴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나갈 때 이렇게 꽃 피는 봄날이 오는 것이다.


금수저 은수저가 아니어도 동수저 스테인레스수저 나무수저라도 있다면 밥 먹고 살아가는 데 크게 어렵지 않다. 어쨌든 그 수저로 밥은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어떤 밥을 먹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내게 어떤 수저가 주어졌는지를 탓하기 전에, 그 수저로 무엇을 먹고 살지, 어떻게 살지를 고민해야 할 일이다. 다만 금수저 은수저 앞으로만 불공평하게 놓여지는 밥상이 있다면 그 불공평을 바로잡기 위해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것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우는 애 떡 하나 더 준다고, 잘못된 것을 눈감지 않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늘어야 잘못은 고쳐지고 공평한 밥상을 받게 된다.


아는가? 세상의 모든 수저들을 담을 수 있는 품격있는 수저통은 흙으로 만들어진 도자기 수저통이다. 약간의 흙만 있다면 그곳에서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샛노란 개나리꽃을 피워내듯이 흙은 모든 것을 품는다.



흙이 지닌 그 무한의 긍정을 나 또한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고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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