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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ul 08. 2021

어미소

2021년 5월19일 에 쓴 글

"엄마, 엄마, 나 좀 안 아프게 해줘~"

어머님이 병상에 누워계시면서

돌아가신 외할머님에게 하신 말씀이다.

어지럼증과 두통이 오래도록 지속되니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시면서

간절히 엄마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사람은 아프면 더 엄마 생각이 나는 법이란다.

지가 잘 살고 있을 때는 생각도 안 하다가,

아프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지야.

그래서 사람은 엄마가 있어야 써~"

오래전 칠순을 넘기신 어머님이

10년 전 돌아가신 구순 넘은 외할머님을

떠올리며 나 좀 안 아프게 좀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는 말씀에 나는 불현듯

박경리선생님의 시 '어미소'가 생각났다.

새끼를 떼어놓고 밭 갈러 나온 어미소는

집에 두고 온 새끼 생각에

농부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실랑이를 벌이다 주인을 다치게 한다.

이걸 보며 새끼 걱정하는 마음이 소도 이럴진대

금수만큼도 제 자식을 생각지 않는 인간세상의

부모를 경계하는 내용으로 시는 마무리된다.

아동학대 소식으로 얼룩진 이즈음의 세태를

비판하기에 적절한 시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난 이 시를 떠올리며 내가 어미소가 된 심정이었다.

어머님의 머리맡을 지키고, 이마를 짚어드리고,

등을 쓰다듬고, 팔 다리 허리를 주물러드리고,

한 숟갈이라도 식사를 더 하실 수 있게 떠먹여드리고,

조금이라도 개운하시게 세수와 양치를 돕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것뿐이지만

마치 새끼를 바라보는 어미소가 된 심정으로

매일 어머님을 만나뵈러 간다.

"간호사들이 너가 내 딸인 줄 알더라~"

두어 번쯤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어머님의

한 마디가 나에게 은근히 큰 힘이 된다.

딸처럼, 어미소처럼

어머님을 돌봐드리는 며느리고 싶다.

그리하여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시길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나물도 손질하고,

누룽지도 먹으면서, 지나간 이야기들 나누며

하하호호 즐겁게 웃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 어미 소 >

몇 해 전 일이다.

암소는 새끼랑 함께

밭갈이하러 왔다

나는 소의 등을 뚜드려 주며

고맙다고 했다

암소는 기분이 좋은 것 같았고

새끼가 울면

음모오-하고

화답을 하며 일을 했다

열심히 밭갈이를 했다

이듬해였던가, 그 다음다음 해였던가

밭갈이하러 온 암소는 혼자였다

어딘지 분위기가 날카로워

전과 같이 등 뚜드려 주며

인사할 수 없었다

암소는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농부와 실랭이를 하다가

다리뼈까지 삐고 말았다

농부는

새끼를 집에 두고 와서 지랄이라

하며 소를 때리고 화를 내었다

옛적부터 금수만 못하다는 말이

왜 있었겠는가

자식 버리고 떠나는 이

인간 세상에 더러 있어서

그랬을 것이다

자식을 팔아먹고

자식을 먹잇감으로 생각하는

인간 세상에 부모가 더러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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