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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May 07. 2021

누룽지는 맛있어~

누룽지의 변신은 무죄!

아직 아이를 낳기 전 신혼 시절에 신혼일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큰애가 생기기까지 햇수로 3년, 만으로 2년의 시간이 걸렸기에 신혼기간도 그만큼 길었고, 신혼일기도 100편까지 썼더랬다. 그때 쓴 일기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누룽지는 누가 먹지?' 였다.

친정에선 누룽지는 당연히 엄마와 우리들의 몫이었다. 그건 누룽지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남자어른들에게 드릴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집을 와서 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밥을 한 다음 누룽지가 생기면 며느리에게 먹으라고 밀어놓는 게 아니라, 온 식구가 맛있는 누룽지가 생겼다며 냠냠 나눠먹는 것이었다.

누룽지에 대한 색다른 문화에 놀라서 구구절절 신혼일기를 쓴 적이 있는데, 어느덧 내가 시집와서 산 세월이 친정에서 태어나 자란 세월만큼이나 긴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우리집은 누룽지가 생기면 맛있게 먹는다.

1년 반쯤 전에 마을사람들과 뜻을 모아 한 다문화가정지원단체에 책을 천 권 가량 기증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감사선물로 받은 게 누룽지였다.
그 단체가 상주한 사무실의 1층 유기농매장에서 파는 누룽지로 무척 맛이 좋았다. 아껴가며 한동안 잘 먹다가, 어디로 들어간 통에 잊어버리고 안 먹고 둔 것을 얼마 전 어머님께서 발견하셨다.

상태를 보아하니, 그냥 먹기에도 끓여 먹기에도 여의치 않은데 튀겨먹으면 괜찮을 것 같아 반 정도만 튀기셨는데 맛이 제법 좋았다. 그래서 오늘 나머지 반을 튀겨서 늦은 점심 겸 간식으로 먹게 됐다.

"옛날엔 누룽지 생기면 그렇게 좋아라들 하며 잘 먹었는디 어째 요새는 이렇게 맛난 누룽지가 있어도 잘 안 먹는가 모르겄다. 하도 먹을 게 푼해서 그라재~"

"누룽지는 가마솥 누룽지가 최곤데, 지금은 그 맛이 기억도 안 나네요."

"성남 살 때 문간방에 세들어 살던 집이 함바집에서 일을 했단마다. 그래서 일 끝나고 집에 올 때믄 누룽지를 한아름 가져와서 우리한테도 듬뿍 줘가꼬 잘 얻어먹었지야. 그날 나온 것이라 아직 누룽지가 덜 말랑응께 채반에 쫙 펼쳐서 옥상 위에 놓고 말렸다가, 꼬들꼬들해지믄 한 주먹씩 떼어서는 '옛다 먹어라'하고 애들 나눠줬니라. 그람 그걸 손에 들고 야금야금 떼어먹으면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디~ 아범도 아주 잘 먹었어야. 그란디 지난 번 튀긴 거는 안 먹드라."

"지난 번엔 어머님께서 너무 바짝 튀기셔서 좀 탔나봐요. 쓴 맛이 난다고 잘 안 먹드라구요. 오늘 껀 안 타서 잘 먹을 것 같은데요?"

"잉~ 니가 나보다 잘 튀긴다야. 딱 좋게 잘 튀겼다. 맛나다."

그렇게 오순도순 튀긴 누룽지와 튀긴 김에 황태껍데기 벗겨놓은 것도 튀겨서 단짠단짠을 즐기며 잘 먹었다.
추억의 먹거리 누룽지가 요새는 누룽지만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공장들이 생겨서 어디 누룽지가 제일 맛있다는 둥 평이 올라오고, 전화나 인터넷 주문이 되니 집에서도 편하게 주문해서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거기다 누룽지백숙 해물누룽지탕 누룽지치킨 누룽지크림소스리조또 등 누룽지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들이 선보이며 누룽지가 건강한 요리재료로 얼마나 효용성이 높은지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요리들이 간편하고, 맛있다.^^

한때 구박뎅이 찬밥신세였던 누룽지의 변신을 보며,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세상 어떤 것이라도 저마다의 가치를 발휘하며 대접받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 누룽지 노래도 있다.
1998년 국악동요제에 나온 <서당놀이>

얘들아 우리 서당놀이 해보자 그래그래
훈장님은 네가 하고 나는야 학동이 될테야
하늘천 따지 천자문도 재미나고
가마솥에 누룽지도 먹어보자
이놈들 숙제는 해가지고 왔느냐
천자문은 모두 다 외었느냐
훈장님 호령소리에 개구장이 종아리가 바글바글
회초리는 겁이 나도 댕기머리 학동이 나는 좋아
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너 한입 나 한입
즐거운 서당놀이 내일 또 하는거야
이놈들 숙제는 해가지고 왔느냐
천자문은 모두 다 외었느냐
훈장님 호령소리에 개구장이 종아리가 바글바글
회초리는 겁이 나도 댕기머리 학동이 나는 좋아
하늘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너 한입 나 한입
즐거운 서당놀이 내일 또 하는거야


#누룽지 #누룽지요리 #서당놀이동요

* 누룽지 사진은 찍어둔 게 사라져서  펌이미지로^^;;

누룽지밥 by 테크노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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