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앞마당 건너편엔 작은 대나무숲이 있다.
아빠가 어느 집에서 얻어오신 대나무 몇 주를
그곳에 심으시자, 우리 사남매에게
매일 요강의 오줌을 대나무에 비우게 하시며
알뜰살뜰 대나무를 키우신 건 나의 할머니다.
남도라 해도 대나무가 귀하던 어린 시절엔
주변에 대밭이 거의 없어서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라는 표현이 나오는 문학작품을 볼 때마다
그게 어떤 소리일까 몹시 궁금했더랬다.
할머니께서 뇌일혈로 쓰러지셔서
반신불수로 지내시길10년이 되던 해,
여동생이 결혼한 그 봄에 돌아가신 뒤로
20년이 흘렀다. 그사이 몇 주의 대나무는
꽤나 번성을 해서 오늘처럼 바람이 부는 날이면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들려준다.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차르르~ 차르르~ 우우웅~ 우우웅~
댓잎이 저들끼리 맞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때론 스산하여 문득 쓸쓸해지고
때론 시원하여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때론 한없이 고요하여 산란한 머릿속이 적요해진다.
어린 시절 늘 내곁에 계시던 할머니는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살아오시며 겪은 꿈같은 이야기들을,
돌이켜보기도 끔찍한 기억들을
집안의 맏손녀인 나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셨다.
"니가 아들손주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이야기 끝에 가끔씩 이 말씀을 덧붙이시곤 했는데
밑으로 남동생이 둘이나 있었음에도
할머니의 나에 대한 아쉬움은 좀 크셨나보다.
그래도 내가 여자라서 차별하거나
눈치를 준다거나 구박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으셨다.
할머니는 오래 전에 내 곁을 떠나셔서
시골집 뒷밭 한가운데에
무성하게 자란 푸르른 율마가 빙 둘러선
묘소 아래 묻혀계시지만
시골집 앞마당을 가득 채운
대숲 바람소리와 함께 남아
오늘도 나를 일깨우신다.
"남이사 뭐라고 하든
세상은 니 힘으로 살아보고
결론 내리는 것이여~.
같은 길도 니가 가면
다르게 느끼는 것이랑께.
그런께 걱정일랑 말고,
씩씩하게 니 길을 가렴~♡"
고향집 옥상에서 보이는 대나무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