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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06. 2021

정읍에서 가을을 느끼다

칠보수력발전소

올 여름장마보다 길었던 가을장마가 지나고

이젠 밤에는 추워서 창문을 꼭꼭 닫아야 하는 구월,

문득 팔월 처서 하루 전에 찾았던 정읍에서 마주친 가을 풍경이 떠오른다.


아직 8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인데도

그곳에서 일찌감치 찾아든 가을을 느꼈다.

칠보면의 무성서원에서 산외면의 김명관 고택으로 가는 길이었다. 산 중턱에 쭉 뻗어내린 두 줄의 긴 관로가 보여서 '저게 무얼까?' 하는 호기심에 찾아가본 곳이 정읍 칠보면 시산리의 칠보수력발전소였다.

그리고 그 수력발전소 맞은 편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여서 가봤더니, 느티나무 뒤에 있는 오래된 창고 지붕과 너른 마당에 붉은 느티나무잎이 수북하게 떨어져 있었다.

마치 가을이 이곳에만 슬쩍 먼저 발을 들이민 것만 같았다. 드라마 '가을동화'같은 촬영장소로 딱이겠다 싶은 그곳에서 나무 아래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듣다가 남편의 성화에 자리를 떴드랬다. 완연한 가을이 오면 이곳은 또 어떤 모습으로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까?


정읍 내장산의 가을단풍을 단풍놀이 가운데 최고로 치지만 난, 내장산보다 칠보면의 가을이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그곳으로 발길을 이끈 칠보수력발전소가 어떤 곳인지 알아보니 한국현대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역사적인 장소였다.

원래이름도 칠보발전소였다가, 1985년부터 섬진강 수력발전소였는데, 2018년 4월 칠보수력발전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칠보수력발전소는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세워진 유역변경식 발전소이다. 섬진강 상류 임실군 옥정리의 옥정호 물을 6.2km 물길굴을 이용해서 정읍시 칠보면으로 끌어와 유역변경을 한 것이다. (유역변경이란 댐을 막아 물길을 돌리는 일로 흔히 댐 쪽 경사가 느려서 경사가 급한 쪽으로 물을 떨어뜨려 발전하고 있다)

발전과 미곡 증산을 목적으로 섬진강댐 하류 약 2㎞ 지점에 섬진강 본류를 횡단하는 중력식 콘크리트댐을 축조하여 6.2㎞의 수로를 이용, 발전한 뒤 동진강에 방류하고 있다.

섬진강댐

칠보수력발전소의 역사는 1931년 10월 남조선수력전기(주)가 운암발전소(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소재)를 준공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운암발전소는 섬진강 상류 운암저수지의 물을 약 3km 지하 터널로 유역변경하여 그 낙차를 이용하는 소규모 발전소이다.


칠보발전소 건설공사는 1940년 9월 남선전기주식회사에서 착공하였으나, 1943년 조선전업주식회사에 통합되어 계속 공사 중, 전시 물자난으로 공사가 지연되었다. 이후 전체공사의 약 60%, 댐공사의 23%를 완성하고 불완전하나마 1945년 4월 칠보발전소(용량 1만 4400 kW 1기)를 준공하였는데 이것이 섬진강 수력발전소 제1호기이다. 이렇게 첫 발전을 시작하였으나, 광복과 함께 완전히 중단되었다.


그 뒤 정부보조로 다시 착공하였으나 공사시행계획의 변경, 자재구입의 어려움, 시공업자의 선정 잘못 등으로 공사의 추진이 지연되다가 6·25전쟁으로 다시 중단하게 되었다. 전쟁중에는 1950년 7월 북한군에게 점령당하여 이른바 산업성 전기국 산하에 섬진강 발전부를 두어 칠보·운암·보성강 발전소를 통합관리하였다.


유엔군의 폭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발전기를 비롯하여 부속기기를 해체, 소개하기 시작하던 중 유엔군의 폭격으로 다수의 시설이 파손되기도 하였다. 9·28수복 때에는 공비들이 산으로 도주할 때 방화와 총격을 가하여 건물 5동이 전소되고 변전설비가 파괴되는 등 심한 피해를 입었다. 6.25전쟁의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칠보수력발전소 뒷산에 칠보 충혼탑이 있는 까닭이다.

by 늘푸른

한국전쟁시 국가산업 부흥의 원동요소인 전력을 생산하는 섬진강 발전소와 송전시설은 공비들의 파괴 대상이라 1950년 11월 향토방위대를 조직하여 군경, 발전소 직원, 애국청년단들이 발전소를 사수하다 경찰 25명 향토방위대 26명 학도호국단 1명 발전소 직원 10명, 민간인 7명 총 69명이 산화하였고 이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국가보훈처 현충시설 정보서비스 홈페이지 설명과 늘푸른님 사진 참고. 충혼탑은 먼 발치에서만 보고 가까이 가보지 못했다)


그 뒤 파손된 기기와 분산된 설비를 정비하여 1950년 12월 복구공사를 착수하였다. 1951년 1월에는 차일혁 18전투경찰 대대장이 휘하 75명의 경찰 병력으로 공비 2천여 명을 막아내 칠보발전소를 지켜냈다. 같은 해 4월 시설용량 1만 4400㎾의 제1호기 복구를 완료하였다.


종전 후 국토건설사업의 일환으로 1961년 8월 건설부 주관하에 건설을 다시 추진하였으며, 이는 당초 계획지점에 높이 64.0m, 길이 335m의 댐을 축조하고 기존 제1호기 옆에 설비용량 1만 4400㎾의 제2호기를 증설, 1965년 12월 준공함으로써 설비용량은 2만 8800㎾로 증가되었다.


제2호기(용량 1만 4400 kW)의 증설은 한국전력공사가 추진하고 건설부가 주관한 것으로서 섬진강 상류에 중력식 콘크리트 댐을 쌓아 용수확보 및 발전을 도모하는 다목적댐 사업이었다. 1961년 8월 착공, 1965년 12월 완성된 이 사업은 발전에 사용한 물을 동진강에 방류함으로써 동진강 하류지역과 계화도(界火島) 간척지역의 관개용수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제3호기에 대한 증설을 1983년 9월 착공, 1985년 3월 준공하여 설비용량은 다시 3만 4800㎾가 되었으며, 저수용량 4억 3832만㎥, 유효낙차 151.7m를 이용하여 프란시스수차 3대를 설치, 연간 1억 8000만㎾h의 전력을 생산, 호남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현재 저수지는 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하고, 한국전력공사에서는 발전설비만을 관리하고 있으며, 동진농조와의 계약하에 영농기(매년 4.11.∼9.11.)에는 일정 수위 이상을 유지하면서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 칠보수력발전소에 대한 내용은 한민족문화대백과와 두산백과를 참고해서 편집한 내용입니다.


골목길 어귀의 어린왕자 벽화
발전소 맞은 편의 교회
교회 지나 보이는 커다란 느티나무
느티나무 아래 정자의 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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