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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15. 2021

담배꽃을 보신 적이?

분홍화관의 슬픔

문경 아자개장터 구경을 마친 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아직은 초록이 많지만 점점 노릇노릇해지는 9월 중순의 들판 멀리로 눈에 익은 꽃이 높다란 줄기 위에서 넘실대는 게 보였다. 직감적으로 담배꽃이구나 싶었다.

가던 길을 돌려 마을로 들어가려는데

마을사람들이 모여 공동작업을 하는지 15톤 트럭을 한쪽에 대놓고, 차일을 친 채로 웅성웅성 모여 길을 막고 계셔서 할 수 없이 차는 도로가에 세워두고 걸어서 담배밭까지 가서 찍었다.

귀한 담배꽃을 이렇게 직접 보는구나!

담배향이 알싸한 가운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솟아있는

담배줄기 끝에 연분홍 담배꽃이 화관처럼 매달려 있었다.

작은 메꽃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느낌.

남편이 차에서 기다려준 덕분에

속리산 아래 활짝 피어난  담배꽃을 실컷 보고 폰카에도 담아왔다. 원없이 담배꽃 본 날이었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다양한 밭일을 하며 자랐다.

한겨울 보리밟기부터 시작해 봄에는 마늘쫑뽑기, 마늘캐기, 감자 고구마 콩 고추 가지 옥수수 심기, 풀매기, 보리 베기, 참외 토마토 수박 모종 심기, 순치기, 애콩따기, 고추 녹두 메주콩 따기 등등 그래서 난 여름이 싫었다. 땡볕에 주구장창 해야할 밭일들이 줄지어 있었고, 여름방학은 쉬는 때가 아니라 더더욱 집안일에 매진해야 할 때였기 때문이다.

방학이 끝나면 학교에서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과 시꺼매진 얼굴로 누가 더 집안일을 많이 했나 성토대회를 열곤 했는데, 그 누가 아무리 고생을 했네 해도 담배농사를 짓는 친구앞에선 깨갱이었다. 그만큼 담배농사는 힘든 일이었다.

한여름 자기 키보다 크게 자라 숲처럼 담배잎이 넘실거리는 담배밭에서 땀을 비오듯 하며 풀을 매고, 내 몸통보다 큰 담배잎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따서, 산처럼 쌓인 담배잎을 집까지 날라다가, 일일이 명주실로 보기좋게 한줄로 꿰어서,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비닐하우스 건조장에 담배잎을 말리는 과정을 듣다보면 우리집이 담배농사를 짓지 않는 게 참으로 감사할 뿐이었다.

그래서 학교 오가는 길에 있던 담배밭에서 나의 선배나 후배 혹은 동기일 누군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돕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쯔쯔쯔... 고생이 많네. 날도 더운데~"

전국민적인 차원에서 금연운동이 벌어지며, 공공장소는 당연하고 식당 카페 영화관 버스 지하철 화장실 어디든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어길시엔 벌금을 물리다보니 담배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많이 줄었다.

전엔 시골 가면 어김없이 보이던 담배밭이 점점 줄어들더니 최근 몇 년 동안은 담배밭을 아예 보질 못하다가 작년 봄,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옆동네에 마실 갔다가 동네 한쪽 밭에 담배 모종이 줄줄이 심어져있는 걸 보게 되었다.

"요새도 누가 담배농사를 하네~ 누구네 밭이까 저거"

운전하는 내 옆에 앉아계시던 아빠께서 밭주인이 궁금하다는 듯이 한 마디 하셨다. 여전히 담배농사를 짓고 있긴 하구나~ 하면서 알아보니 이렇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담배는 담배인삼공사(KT&G)가 종자를 생산해 담배를 계약재배할 농가에 주어야 이듬해 다시 담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생산되는 담배 잎의 품질과 생산량 등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러다 보니 개인이 사적인 용도로 담배 종자를 구해서 소규모 재배를 시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

담배농사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해 사전허가를 받은 뒤 담배인삼공사와 전량 계약재배를 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신 사줄 곳이 확실하기 때문에 판매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귀농을 고려하시는 분들 가운데 담배농사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제법 계시고, 담배농사로 맨땅에서 100억원을 일군 농사꾼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 세간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장화 신은 CEO/박목·박미숙 지음 / 한국경제신문i)

그러나 담배농사는 한여름철인 7∼8월에 수확이 집중되며, 기계화가 어렵고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일들이 기계화되어 사람의 일손을 덜어주는 요즘 농촌에서도 노동 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담배는 1.5~2m까지 어른키를 넘길만큼 크게 자라는데 어느 정도 키가 자라고 나면 맨 꼭대기에 메꽃 비슷한 분홍빛 꽃이 맺힌다. 담배 농사는 큰 잎을 수확하는 농사이기 때문에 담배꽃이 맺히면 농부는 사정없이 꽃을 꺾어 버린다고 한다. 꽃을 제거하고 나면 잎은 굉장히 크게 자라서 잎 한 장의 길이가 60cm를 넘기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나 역시 자라면서 무성한 담배잎은 자주 봤지만 한 번도 담배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읽은 나희덕 시인의 시에서 담배꽃을 만나게 되었다.

시 속에서 담배도 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한 나는 담배꽃이 궁금해져 검색을 통해 드디어 보게 되었다. 폐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의 주범으로 백안시되는 담배, 그런데 그 꽃은 어쩜 그리 예쁜지~!!!

시인이 왜 이런 시를 쓰면서 담배꽃을 기렸는지 알 것 같았다. 밭고랑에 버려지고나서야 뒤늦게 피어난 분홍 화관같은 담배꽃 또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그렇게 꺾여서 아무도 모르게 시들어갔음을 나 또한 뒤늦게 알았다.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는 꽃이 진 다음에 생긴 씨방에서 나온 진액을 말려 마약으로 쓰기때문에 꽃이 질 때까지 애지중지 보살펴지는데, 담배는 꽃이 아닌 잎을 쓰기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봐야 마약이고 담배는 몸에 안 좋은 것인데 뭘 그리 마음을 쓰냐고 한다면, 마약은 중대한 질병에 안정제로 쓰이는 경우가 많고 담배 또한 두통과 배앓이에 좋다고 하여, 조선시대에는 어린 아이부터 호호백발 노인들까지 전 세대가 애용하는 기호품이었다.(놀라지 마시라~ 조선을 유럽에 최초로 알린 기록물, '하멜표류기'에 소개된 내용이다!) 심지어 20~30년 전 내가 학생시절에는 다이어트에 좋다고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도 있었다.

이 세상에 생겨날 때는 모두 다 각자의 쓸모를 지니고 있는 귀한 생명들인데, 인간이 사용하기 여하에 따라서, 판단하기에 따라서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몹쓸 물건으로 전락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시인의 담배꽃은 담배꽃 그 자체로 봐야겠다. 아름다움을 채 피우지 못한 채 꺾여져 버려진 안쓰러운 생명으로. 어쩌면 우리도 살아가면서 내 필요에 의해 귀한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꺾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면서.


나희덕 시인이 본 담배꽃은

잎그늘 아래 잘려진 꽃대에서였지만

내가 본 담배꽃은

싱싱하게 자란 줄기 위 맨 꼭대기에서

무르익어가는 가을 햇빛을 받고 있었다.

시에서처럼 슬프지 않아 다행이다.

꽃대가 꺾인 채 버려진 담배꽃

< 담배꽃을 본 것은 / 나희덕 >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을 보았다

분홍 화관처럼 핀 그 꽃을

잎을 위해서

꽃 피우기도 전에 잘려진 꽃대들,

잎그늘 아래 시들어가던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

툭, 툭, 목을 칠 때마다 흰 피가 흘러

담뱃잎은 그리도 쓰고 매운가

담배꽃 한줌 비벼서 말아 피우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족두리도 풀지 않은 꽃을 바라만 보았다

주인이 버리고 간 어느 밭고랑에서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夏至도 지난 여름날

뙤약볕 아래 드문드문 피어 있는,

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을

* 담배의 역사를 아시나요?

담배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 광해군 때로 추정된다. 15세기 신대륙에서 발견되어 유럽을 통해 인도양을 건너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남령초(南靈草), 망우초(忘憂草), 심심초 등으로 불렸다. 한번 빠지면 잊을 수 없다하여 상사초(相思草)라고도 하였다. 처음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다섯 살부터 칠십 세 노인까지 모두 피웠다. 소화도 잘 되고 두통에도 좋다고 하여, 마음을 조이고 사는 안방마님들이 즐겨 피웠다. 심지어는 배가 아픈 아이에게 담배를 물리기도 했다. '통죽(通竹)이라 하여 아이와 어른이 같이 피웠다. 서당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같이 피웠다.

서열이 강화되고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윗사람이나 지체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했다. 상놈들은 양반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담뱃대의 길이도 양반들은 천민과 구분하기 위하여 길이를 달리하여 사용하였다. 양반들은 보통 2-3m의 장죽을 사용하였다. 기생들도 1m가 넘는 담뱃대를 사용하였다. 양반이나 마님들이 담배를 피울 때마다 종들이 담배통에 담뱃잎을 넣고 불을 붙이곤 하였다. 담뱃대를 쇠 화로에 '탕탕'치면서 큰기침을 함으로써 양반의 권위를 지키고자 하였다. 반면 상민들은 설대가 짧은 곰방대를 사용하였다.

현재 담배의 유통은 고도의 독과점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초기 '전매청'이라는 국가기관에서 관장하다가 '한국담배인삼공사'로 넘어왔다. 계약 재배를 통하여 다량의 원료를 구매하고 전국적인 유통망과 대규모 소비가 이루어지는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최근에는 외국에서 많은 담배원료를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외국산 담배가 직접 수입되어 소비자에게 판매되기도 한다. 소비자는 어느 담배든 마음대로 구입하여 피울 수 있는 구조다.

- 충북일보 오피니언. 담배의 유혹. 최준식님 글에서 인용

https://www.inews365.com/mobile/article.html?no=526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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