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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02. 2021

괜찮아

토닥토닥

< 괜찮아 >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채식주의자'로 잘 알려진 소설가 한강의 시이다.

시인이 두 달 된 아기를 달래며 서른 넘어 안 사실을 난 마흔이 넘어서야 알았다.

내 안의 내가 흐느낄 때,

누군가 고통으로 울부짖을 때,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

'왜 그래'가 아닌 '괜찮아'

이 말을 해줘야 한다는 걸.

2018년 11월 유튜브에 나와 많은 지지와 공감을 받았던 지하철 당산역 '포옹청년'처럼

억울하고 답답하고 쏟아낼 데가 없어

미친 듯 길길이 뛰는 사람을 진정시킨 것은

"왜 그래요? 그만 해요!"가 아니라

"괜찮아요" 토닥토닥.

앞이 보이지 않아 절망적일 때,

세상이 다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만 같을 때,

지나온 시간들에 겹겹이 후회만 쌓였다고 느낄 때,

해도 해도 끝이 없다고 느낄 때,

더 이상 흘릴 눈물마저 메말라 버렸을 때,

나에게 해주는 말,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우리모두에게 필요한 말.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https://youtu.be/Hp5T39c2q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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