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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Sep 22. 2021

입맛 없으면 아흔아홉 가지

염소의 대단한 식성

어머님 모시고 다니는 여행길에서는

종종 엉뚱한 녀석들이 재미난 이야기 소재가 된다.


어느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데

까만 염소 하얀 염소들이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 뜯고 있는 장면이 보였다.

by 김천 월명리 염소

어릴 적 염소 키우던 생각이 나서,


"소는 따로 쇠죽을 끓여서 여물을 줘야 했지만 염소는 들판에 풀어놓고 풀만 먹이면 되니, 제일 기르기 쉬운 짐승 같아요~"


하고 내가 먼저 운을 떼니 어머님께서 그러신다.


"염소는 입맛 없으면 아흔아홉 가지를 먹는단다."


"엥? 진짜요? 그렇게 먹성이 좋아요?"


"암, 눈에 띄는 것 가운데 못 먹는 것이 없는 짐승이 염소랑께. 소는 지가 좋아하는 풀만 먹는디, 염소는 풀이라믄 안 가리고 아무 거나 먹어야. 세상 키우기 쉬운 짐승이재"


"그렇구나~ 둘째 어릴 때 서울 가면 할머니 전화번호부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먹고, 해남 가면 철 지난 두루마리 달력을 뜯어먹곤 해서 어른들이 너는 염소냐? 하시던 게 다 그런 이유였네요."


"가죽 구두도 던져주면 좋다고 씹어먹을 것이다. 이것이 뭔데 이라고 찔기냐? 하면서~ ㅎㅎㅎ. 염소는 못 먹는 게 없당께~"


"염소 식성 정말 대단하네요~!"


해남 땅끝 농촌이었던 우리 집에선 개는 물론이고 닭, 소, 돼지, 토끼 등을 가축으로 키웠는데, 그중에서 염소는 최대 17마리까지 키워봤다. 아마 염소 가격이 그때도 좀 나갔던 모양이다. 이뻐서 키운 게 아니라, 키우기 쉽고 번식도 잘해서 돈 만들려고 키운 것일 테니까. 그런데 팔아서 돈 번 기억은 없고, 겨울에 날 잡아서 친척들이 모두 모여(아빠가 9남매시라 다 모이면 서른 명은 거뜬히 넘었다) 염소탕을 끓여먹느라 염소 잡았던 기억만 난다. 흠... 기억의 한계겠지?^^;;


일이 많은 시골에선 아무리 어려도 집안일에 각자 자기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나는 청소와 부엌일 담당이었고, 염소 키우기 담당은 초딩이던 바로 아래 남동생이었다. (밭일은 사남매가 공평하게 다 했다. 여동생 말에 따르면, 언니는 공부하라고 엄마가 많이 빼줘서 자기가 제일 많이 했다고 그런다. 쏘리~)  


염소가 점점 늘어나서 17마리에 다다르자 이 녀석들을 아침에 염소우리에서 꺼내어 들판에 데려가는 건 남동생이 막내 남동생 데리고 어찌어찌한다 해도, 해거름녘에 풀밭에서 맘껏 자유를 누리며 헤쳐 모여있는 염소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일은 사남매가 모두 나서서 함께 해야 했다.


땅에 박아둔 염소 고삐를 빼서 한 사람당 서너 마리씩 양손에 고삐를 잡고 집으로 염소를 몰아오는데, 17마리 가운데 뿔도 크고 성깔도 무시무시한 수컷 대빵이 하나 있었다. 그 녀석은 남동생 아니면 도대체 제어가 안 돼서 그 염소를 모는 건 늘 남동생 몫이었다. (우리는 성질머리 나쁜 수컷 염소 뿔에 받힐까 봐 도망 다녔다. 남동생도 몇 번 받히면서 요령을 터득했다고)

집으로 마구 달리는 염소들에 이끌려, 때론 안 가겠다고 버티는 녀석들과 힘겨루기를 하면서 숨가쁘게 집으로 몰아오던 날들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때도 몰랐던 염소의 대단한 식성을 어머님 말씀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염소의 대단한 식성이 최근 읽은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에도 나온다. 엉뚱한 짓을 잘하는 조카 성구의 이야기를 쓴 '성구 파이팅!'에서다. 글 가운데 염소 나온 부분만 옮겨보려다가 앞뒤로 나온 내용들 가슴이 찡해서 함께 옮겨본다.


"너 커서 뭐 해 먹을래?"


"김치."

 

"그런 것 말고 "


"그럼 된장국, 감자, 파….


"아니, 그런 것 말고라니까……."


"그럼, 멸치. "


조카 성구에게 물어본 것은 반찬이 아니라 장래 희망이었다. 내가 못내 가슴 저렸던 것은 그의 엉뚱한 답이 아니라 그의 답에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가스, 햄버거 같은 육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고향 떠나 어렵게 살고 있는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대변하고 있어 맘이 아팠다.


세월이 흘러 성구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발길을 멈추었다. 오층 건물에서 성구 친구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성구는 길바닥에서 불규칙하게 방향을 바꾸며 떨어지는 비행기를 땅에 닿기 전에 받으려 하고 있었다.


"성구야. 너 차에 치이면 어쩌려고 큰길에서 위험한 장난을 하니. 집에 가서 놀아라."


"삼촌, 우리 지하실 방에서는 비행기를 높이 날릴 수 없잖아."


그날 숙제 안 하고 놀기만 한다는 트집을 잡아 성구를 혼내고 마음이 짠했다. 꿈속에서는 지하실 방에도 푸른 하늘이 펼쳐지는지, 비행기를 마음껏 날려 보는지, 얼굴에 웃음기 띠며 잠자던 성구.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어려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친척집 농장으로 이사를 했다. 다시 혼자서만 서울생활하던 내가 농장에 놀러 갔을 때다.


“삼촌, 염소가 고추밭에 들어갔어."


“염소가 고추도 먹냐?"


"염소는 하늘하고 바위만 못 먹고 다 먹어."

(바로 이 부분이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염소는 입맛 없으면 아흔아홉 가지를 먹는단다~ 와 일맥상통해서 깜짝 놀랐다. 난 나이 오십이 다 돼서야 알게 된 사실을, 성구는 초딩 때 터득했구나!)


"그래, 그럼 하늘처럼 푸른 목소리로 바위처럼 씩씩하게 염소를 쫓으러 가자꾸나."


성구와 염소 쫓던 일도 떠오른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되고 농장이 망했다. 성구는 다시 부천시에 있는 외삼촌네 지하실 방으로 이사를 갔다.


성구야, 네가 씨름 선수가 되었다니 기쁘다. 삼촌은 네가 어두운 가족사를 극복하고 꼭 훌륭한 김치가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구 파이팅!


나도 성구의 건투를 빈다.

씨름 잘하는 훌륭한 김치가 되기를~

성구, 파이팅!!!



* 염소 사진은 모두 펌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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