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Nov 09. 2021

눈이 게으르다더니 다 깠네^^

마늘 까기

오징어게임에 알 까기가 있다면

우리집엔 마늘 까기가 있다.


보통은 친정에서 초여름 마늘수확이 끝난 뒤 갈무리해두신 마늘을 여름휴가 때 가서 받아와 추석 안팎으로 까는 게 그간의 연중 마늘 까기 행사였는데 올해는 늦었다.


5월에 어머님께서 급성뇌경색으로 쓰러지시고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첫 퇴원하셨을 때가 햇마늘이 한창 나올 때였다. 몸도 제대로 못 움직이시는데 햇마늘 사다가 마늘장아찌 담가야 한다고 하두 말씀을 하셔서 조금만 사다가 해볼까 하던 것을, 친정엄마께서 집에 마늘장아찌 담아둔 것 있으니 그거 먹으라며 택배로 보내주신 덕에 겨우 무마가 된 일이 있었다.


어머님 건강이 계속 안 좋으셔서, 올해는 해남에서 마늘을 보내주신다고 해도 마늘 까기가 힘들 것 같아 우리 주시려고 따로 놔둔 마늘도 택배로 보내주신다는 것을 마다했었다. 작년에 작업해서 냉동실에 얼려둔 마늘이 많이 있으니 우선 그거 먹으며 버텨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7~8월 지나며 어머님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고, 대학병원의 세 과(신경과, 신경외과, 신장내과)를 외래로 다니시며 약을 받아 드시던 게 9월부터는 한 과(신장내과)만 다니시며 서서히 약을 줄일 수 있게 되실 정도로 나아지셔서, 추석 지나고 해남 친정에 다녀오면서 마늘을 받아오게 되었다.


늘 넉넉히 주시는 마늘을 두 자루나(다섯 접쯤 되려나?) 얻어와서 베란다에 두고

'저걸 까긴 까야 하는데 언제 까려나~~~'

하고, 시간을 살피다가 11월 첫 금요일에 날을 잡았다.


그간 남편 코로나접종, 고구마캐기, 아들 코로나접종으로 날짜가 계속 밀렸는데, 더는 안 되겠다 하고 화요일부터 사전작업을 거쳐(동그랗게 모여있는 마늘을 가장 바깥의 겉껍질을 제거하고 쪽대로 다 갈라서 하룻밤 정도 물에 담가두어야 속껍질 까기가 쉽다) 금요일 아침에 어머님과 식탁에 마주 앉아서 까기 시작!


작년까진 휴일에 마늘 까는 날을 잡아서, 남편도 아이들도 참여해서 같이 하다보니 거실에 신문지 깔고 둥글에 모여 앉아 했지만 올해는 어머님과 둘이서만 하기로 해서 식탁에 판을 벌였다. 중간에 딸이 도와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손이 적다보니 까도 까도 안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이짝에 까놓은 마늘은 늘어나는디, 저짝에 마늘은 어째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냐?"


9시 전부터 까기 시작해 두 시간이 흘렀을 때쯤 어머님께서 한 마디 하신다.


"커피 한 잔 하면서 할까요?"


커피 끓여서 어머님 한 잔 나 한 잔 옆에 두고 비닐장갑 낀 손으로 홀짝 홀짝 마시면서 또 부지런히 까다가


"우리 12시까지만 까고, 점심 먹고 쪼까 쉬었다가 1시에 다시 까자! 허리도 허리지만 손아귀가 아파서 쉬어야 쓰겄다잉~"


어머님의 제안에 당근 콜!

점심은 고구마와 단호박죽으로 간단히 먹고

치우고 나서 이 닦고 허리 좀 펴느라 누웠다가

고새 낮잠이 들었다.

어머님께서 방에서 나오시는 소리에

깨보니 1시 5분.


"하릴없이 집에 있을 때는 그라고 시간이 안 가든만, 일 하다 쉴랑께 이라고 시간이 금방 가부냐?"


"그러게요. 잠깐 졸았는데 시간이 후딱 갔네요."


"인자 다시 마늘이랑 싸워보자.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지가 이기겄어? 우리가 이기재! ㅎㅎ"


그렇게 다시 마늘과의 전투에 돌입해, 까고 까고 또 까고 까고 하다보니 슬슬 바닥이 보이기 시작해 오후 3시 반 넘어서야 다 깠다.


"우리가 이겼다! 눈이 게으르다더니, 그 많아 보이던 것을 다 까부렀네."


"아휴~ 어머님 고생하셨어요. 우리가 해냈네요~^^"


마늘 껍질만 커다란 비닐봉지로 무려 세 봉지가 나왔다. 다 깐 마늘은 다시 박박 문질러서 속껍질 안에 비닐처럼 얆은 막처럼 된 껍질까지 다 벗겨내야 완성이다.

이 일은 꼼꼼하신 어머님 담당.


난 뒷설거지하면서 저녁 준비하고, 어머님은 마늘 마지막 손질까지 하고 나니 남편 퇴근할 시각인 6시.


손질 끝나고, 물에 잘 씻은 마늘은 소쿠리에 받쳐서 밤새 물을 뺀 뒤 다음 날 아침 먹고 믹서에 돌돌돌 천천히 갈아서 차곡차곡 비닐봉지에 담아 꽁꽁 묶어서 냉동실 보관. 백숙이나 요리용 마늘편으로 쓸 마늘은 갈지 않고 따로 다섯 봉지를 담아두고도, 총 13봉지가 나왔다. 아, 진짜 우리가 많이 까긴 깠네.


이렇게 냉동실에 넣어두면, 1년 동안은 마늘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 1박 2일에 걸쳐(준비과정까지 하면 3박 4일) 마늘 까기를 할 이유가 된다.   


어머님과 합가하기 전에는 해남에서 이렇게 많은 마늘을 주시지 않아도(반 자루 정도) 잘 갈무리해서 쓰지 않아 대부분이 썩어 나가기 마련이었는데, 어머님과 살면서는 어머님께서 서둘러주신 덕분에 몇 배나 되는 양도 버리는 것 거의 없이 알차게 다 먹고 있다.


"이걸 다 농사 지으려면 사돈어른들이 얼마나 힘드셨을 텐디, 허투루 안 버리게 잘 먹어야재. 니는 친정에서 주신께 마늘이 얼마나 비싼지도 모르지야? 사먹을라믄 이것도 큰 돈 들어야~"


"안 그래도 올 봄에 어머님께서 마늘장아찌 담으신다고 하셔서 햇마늘 가격 알아보다 깜짝 놀랐어요. 한 접이 3만 9천원인가? 하더라구요. 마늘이 그렇게 비쌌어요?"


"그람 비싸재~ 우리가 마늘을 따로 사다 먹을라믄 이라고 푼하게 못 먹어야. 시골에서 농사지어서 많이 주신께 손질해서 냉동실 넣어두고 1년 내~ 편하게 꺼내먹재. 감사한 줄 알아야 된다잉?"


"네~ 어머님. 해남에도 말씀 잘 전할게요~^^"


친정부모님께서 언제까지 마늘 농사를 지으셔서 우리집 몫을 챙겨주시게 될런지 모르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마늘 까기 행사는 우리집의 가을 연례행사로 쭉 자리잡을 것이다. 하루 종일 마늘 까느라 허리도 아프고, 손도 아프고, 마늘 냄새에 코가 맵기도 하지만 더 큰 감사함으로 그 행사를 치루려 한다.


친정부모님도, 어머님도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가슴 깊이 두 손 모아 빌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입맛 없으면 아흔아홉 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