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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ug 31. 2021

손녀랑 할머니랑 짝짜꿍

피는 못 속여~

밖에 다녀오니

재활용품 넣는 통에 멀쩡한 채반이 버려져있었다.

'아니 이게 왜 여기에?'


어머님께서 버리셨나보다 하고

냉큼 주워다 다른 곳에 고이 모셔두었다.

이럴 땐 스피드가 생명이다^^


좀 있다가 딸이 나를 찾는다.


"엄마, 어제 새로 산 달걀말이용 네모후라이팬 보셨어요?

분명 여기다 뒀는데 안 보여요. 엄마가 어디 치우신 거예요?"


"아니~ 난 치운 적 없는데...싱크대 아래 어디 있겠지."


하고서 같이 찾다보니,

아까 버려졌던 채반이 있던

식기 세척기 안에서 발견됐다.


"할머니께서 요기다 저 팬 들여놓으시며

채반 놓을 자리가 없어지니 버리셨나부네~"


했더니 딸이 바로 하는 말이,


"그거 참 잘 버리셨네. 식기세척기 문 열 때마다

미끄러져 떨어져서 골치였는데~"


"그래? 할머니 안 보실만한 곳에 잘 놔뒀지롱~

그나저나 너랑 할머니랑 짝짜꿍이네. 똑 닮은 점 찾았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후딱 버리기.

딸은 특히나 유통기한에 예민해서, 유통기한 임박하거나 어디 짱박혀있다가 유통기한 지난 식재료, 캔, 약을 귀신같이 찾아내서 나에게 들이밀며 말한다.(이건 아빠랑 닮은 점이다. 부전녀전)


"후유~~~ 엄마...(미리 한숨을 쉬고 자신이 이제부터 엄마에게 잔소리할 것이 있음을 알린다) 이거 좀 보세요. 유통기한이 xx년 xx월 xx일까지예요. 하루 남았네요. 엄마, 이건 유통기한 일주일 넘었어요. 그리고 이건 육개월 됐고..., 하아~~~ 이거는 제약계의 조상이에요? 왜 이렇게 모셔놨어요? 무려 14년 전 약이에요. ㅜㅜ"


그럼 난 이렇게 응수한다.


"하루 남은 건 내일까지 먹으면 되네~. 일주일 넘은 건 잘 익혀서 먹으면 괜찮고, 육개월 된 건... 그거 뚜껑 안 딴 거면 먹어도 안 죽을 걸? 걱정되면 나 혼자 먹을게. 그리고  14년 된 약은 버려야겠다. 그게 왜 아직까지 있지? 줘봐~ 오래된 약 모아두는 통에다 갖다 버리게."


"아, 진짜 엄마 제발 그냥 다 버려요~ 아빠 아시면 난리 나요!"


"누가 아빠 알게 한대니? 슬쩍 먹고 치울 건데~^^"


"몰라요. 암튼 저는 그거 안 먹어요."


이런 대화를 하고 있자니 어머님 등장.


"내가 눈만 밝으믄 유통기한도 찬찬히 봐서 지난 거는 다 버릴 꺼신디 당췌 눈이 보여야 말이재. 자~알 했다. 나민이 니가 알아서 그런 거는 바로바로 솎아내거라. 여기도 뭔 약봉지가 아주 천지삐까리여~ 다 묵도 못할 약을 뭐하러 모셔놓냐. 약은 오래 된 거 묵으면 큰일 난께 싸게싸게 버려부러라, 잉?"


이렇게 할머니와 손녀가 짝짜꿍이 맞을 수가!

나만 깨갱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채반이 바로 요거다.

아래는 딸이 찾던 사각팬으로 만든 달걀말이.

요래 이쁘게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골고루 배부.

잔소리는 해도 음식은 잘 만든다.

생각해보니,

요리 모양내서 맛있게 잘 하는 것도 할머니 닮았네?

난 발만 네 개인 곰손이라 이렇게 이쁘게 못 만든다.

다행히도 할머니 유전자 가운데 좋은 것들이 딸에게 발현되었나보다. 딸의 많은 부분들이 작은고모 닮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작은아가씨가 나이들수록 어머님을 닮아가니 이렇게 유전자가 그 힘을 발휘하네. 역시나 피는 못 속이는 것이여~


* 지난 주에 딸이 만든 요리들 눈요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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