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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ug 25. 2021

어머님의 첫 나들이

예산여행

어머님께서 쓰러지신 뒤 일상으로 돌아오시기까지 얼추 3개월이 걸렸다. 방에서 하시던 식사를 식탁에서 하시게 되고, 식사가 끝나면 베란다 화분을 둘러보시고, 혼자서 새벽운동을 나가시고, 텃밭에서 따온 고구마줄기 껍질을 벗겨주시고, 어머님의 속옷빨래는 직접 하시고...

조금씩 회복이 되시면서

우리 부부의 주말여행도 2시간 안팎의 짧은 거리에서 점차 길어져 강원도 동해시까지 다녀올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그동안 아들이 할머니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상태를 살펴드릴 수 있어서 가능했다.


그러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토요일에 어머님 모시고 아들도 데리고 예산 백종원국밥거리에 소국밥을 먹으러 가게 됐다. 드디어 어머님의 첫 나들이!


예산까지는 집에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

중간중간 뒷자리에 앉으신 어머님의 상태를 살피며 예산의 단골 국밥집인 '할머니소국밥'에 도착했다.

국밥과 국수로 식사를 맛있게 한 뒤, 집으로 그냥 가기 섭섭해서 예산 온김에 근처를 돌아보기로~


예당호 출렁다리는 전에도 몇 번 갔으니

이번엔 차 타고 슝~ 지나치고

의좋은형제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남편은 작년 봄에 아들과 처음 갔고

겨울에 나랑 두 번째로 갔는데 잘 꾸며진 곳이라

여름풍경이 궁금하기도 했고, 국밥거리에서 가까웠다.

 

예당호 출렁다리부터 시작된 데크길을 따라

차로 10분쯤 가다보니, 의좋은형제상이 반겨준다.

(의좋은 형제에 관한 이야기는 전에 올렸던 글 참고)


공원주차장에 차를 대고 슬슬 돌아보기 시작.

전에는 못 보았던 짚으로 만든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제일 먼저 가보았다. 예산의 상징물인 황새와 물고기상이 짚으로 만들어져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진짜 짚이 아니라 짚처럼 생긴 비닐이었다.


"사람들이 참 솜씨도 좋다! 어찌께 이라고 잘 만들었으꺼나~ 진짜 같다잉~"


어머님께서 연신 감탄하시며 조형물을 만져보시고, 돌아보시고 하며 구경하다가 물레방아가 있는 공원 아래로 내려갔다. 가면서 보니 여기는 최근에 새로 생긴 '우애화원'이란 곳이었다. 해바라기밭도 한쪽에 조성해놨는데, 얼마 전에 심었는지 키가 그닥 크지 않고, 꽃도 작았다.


물레방아엔 아쉽게도 물이 나오지 않아서, 물레방아가 시원스레 도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대신 공원안에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재현한 가정집의 모습들이 볼만 했다.


부엌살림을 돌아보시던 어머님께서 설강 위에 놓인 커다란 놋밥그릇을 보시더니,

"옛날엔 저렇게 커다란 밥그릇에다 밥을 소복하게 담아서 먹었는디, 요즘은 밥을 많이 안 먹응께 밥그릇이 조막만해졌재. 저 밥그릇 오랫만에 본다야."

하시면서 웃으셨다.


다른 집 부엌 옆에는 바로 송아지가 있는 외양간이 보여서

"아니, 부엌 옆에 바로 외양간이 있어요? 냄새 날 텐데..."

했더니,


"부엌 옆에 있어야 쇠죽도 바로 끓여서 갖다주고, 수시로 돌보면서 누가 훔쳐가지 않게 잘 보재~ 옛날엔 다 그랬어야." 하신다.


나 어릴 적을 떠올려보니

우리집은 외양간이 부엌에서 뚝 떨어져 있었지만

큰집이나 다른 집들은 부엌 바로 옆이었던 게 생각났다.

쇠죽 끓여서 갖다줄 때마다 외양간이 멀어서 고생했던 일도.


의좋은형제공원을 돌아보다보니, 하늘의 구름이 걷히면서 햇빛이 쨍쨍 나서 꽤 더웠다. 그래서 위쪽에 있는 옛 대흥동헌은 차 타고 올라가서 한 번 둘러보고는 다음 목적지인 '황새공원'으로 출발.


황새공원까지는 차로 20분쯤 걸리는데, 가는 길에 길가에 소들이 막 보여서 뭐지? 하고 봤더니 광시한우거리 근처라 소조각상들을 배치해서 공원을 만들어놓았다. 광시한우가 예천의 유명한 먹거리라더니, 한우거리가 정말 길었다. 오늘은 국밥을 먹었으니, 다음엔 여기로 한우 먹으러 오자고 하다가, 마침 하나로마트가 보여서 음료수도 사고, 다음날이 생일인 딸의 미역국에 들어갈 소고기를 사러 들렀다. 확실히 소고기값이 싸고 좋아보였다.


광시한우거리에서 조금만 더 가면 황새공원이 나온다.

황새공원의 자세한 포스팅은 따로 여행에세이에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선 어머님 위주로 쓰려 한다.


코로나 터진 뒤부터 실내인 전시관은 문을 안 여는 곳들이 많아서 여기도 그러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문을 열었다. 발열체크와 방문자등록을 한 뒤 들어가니 에어컨 바람이 나와서 세상 시원~ 말복 지난 뒤로 아침엔 제법 시원하지만 한낮은 여전히 더웠다.


어머님께서도 원래는 황새공원 야외만 보고 가시려다가,  전시관이 열려있고 시원하다고 하니 들어오셨다. 생각보다 내부를 잘 꾸며놓았고 2층까지 올라가며 구경할 것들이 많았다.


"옛날엔 황새가 논에 가면 많았는디, 지금은 보기가 힘들더라~"


전시기록을 살피니, 우리나라 토종황새는 이미 멸종되었고 이곳 예산황새복원센터에서 일본 황새를 들여와 유전자복원을 통해 황새를 부활시켰다고 한다.


몸은 하얗고, 눈은 빨갛고, 부리랑 다리는 까만 새가 왜 황새일까? 아들이 궁금해해서 찾아보니, 커다란 새를 순우리말로 한새라 불렀고 한새가 발음하기 좋게 황새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2층엔 카페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서,

어머님께서 사주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황새의 한살이를 영상으로 구경한 뒤

포토존 가서 사진 찍고, 통로에 있는 소원나무에 소원도 적어서 꽂아두고 왔다.


2층 옥상에서는 아래에 황새사육장이 바로 보이는데, 살아있는 황새들을 볼 수 있어 황새 구경도 했다.

전시관 나오는 길에 공원 한켠에 솟대처럼 만들어놓은 황새조각품을 보신 어머님께서


"황새들이 비가 올라고 하믄, 저렇게 어깨를 옹숭거리고 나무 위에서 꼿꼿이 서있단다."

하시며 어깨를 바짝 움츠린 채 황새 모습 재현^^

그 모습이 너무 재밌어서 한바탕 웃고는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어머님 모시고 예산여행을 마쳤다.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가 안된 시각이었다. 12시 조금 전에 나가서 5시간동안 나들이하고 온 거다. 평소에도 멀미가 있던 어머님이시라 멀미하실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멀미도 안 하시고 잘 다녀오셨다.


주말에 남편과 나만 나가서 죄송했는데, 이렇게 어머님 모시고 다녀오니 마음도 편하고 좋네. 아들도 간만에 코에 바람 쐬고. 앞으론 종종 어머님과 함께 가까운 곳 나들이를 다녀오도록 해야지.


어머님께서 종종 하시는 말씀이,

"가족여행이라고 파파 할머니랑 같이 다니는 집들 보면 난 영~  보기 싫더라. 저렇게 늙었으면 집구석에 가만 있어야지 뭐하러 돌아댕기나 몰러~."


부모자식만 다니면 되지, 늙은 엄마가 뭐하러 낑기냐며  보기 싫다는 말씀인데 난 생각이 달랐다.


"저는 가족끼리 부모님 모시고 여행다니는 거 보면 좋던데요? 어머님도 흰머리 나고 더 늙으시기 전에 저희랑 많이 다니셔요~ 여행은 체력이에요." 하곤 말씀드린다.


몇 년 전 청송 주산지 보러 갔다가 멀미를 심하게 하신 뒤론 가족여행을 따라가지 않으시던 어머님께서 이번 여행을 계기로 다시 가족여행을 함께 하시면 좋겠다.

차 타면 여전히 머리가 어지럽고 울렁증이 도지신다니 몸상태 좋으실 때 가까운 곳으로 모시고 가서 바람 쐬드려야지. 이제 곧 여행하기 좋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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