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이야기를 들려주어 시청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게 했다. 또한 성공은 꼭 부자가 돼야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보람을 얻고 남에게 베풀 줄 안다면 바로 그것이 성공이라고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인생의 참맛은 남에게 베푸는 삶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에겐 이런 길거리 특강을 해주시는
파프리카 아저씨가 계시다.
우리 동네엔 금요일마다 장이 선다.
이른바 금요장인데 여기만 가면 동네 사람 다 만나는 그야말로 마을장이다.
장날마다 배울 네거리 한 켠에 작은 좌판을 벌이고
파프리카를 파는 아저씨가 계시다. 때로 고구마, 키위, 레몬도 팔지만 주종은 파프리카. 크고 싱싱한 파프리카를 마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싼 가격에 파시기 때문에 금요일이 되면 이 아저씨를 기다리는 단골들이 많다.
3천 원짜리와 5천 원짜리 두 봉지를 파시는데
난 늘 3천 원짜리를 산다. 한 번 5천 원짜리 샀다가
너무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물러져 버려야 했던 적이 있어서다. 단골이 되기 전 초반엔 물건 중에 좀 상태 안 좋은 게 보이면 다음 장에 가서 말씀드려서 새로 좋은 것을 받아오기도 했지만, 그 뒤론 그럴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색다르게 유럽풍의 도자기로 만들어진
시계, 식탁종, 국자 세트, 꽃병 등 예쁘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팔고 계셨다. 늘 식물 종류만 파시다, 갑작스레 고급 도자기를 팔고 계셔서 구경삼아 들렀다가 싼 가격에 또 깜짝 놀랐다.
바로 옆동네 전민동의 엑스포코아가
수입 물건 많이 구비해놓고 파는 곳으로 유명한데,
거기서 똑같은 제품을 2만 원씩에 파는데
여기선 단돈 5천 원!
어떻게 그게 가능하시냐 했더니
아저씨의 30년째 본업이 바로 이 거란다.
유럽에서 직수입한 도자기 판매.
파프리카도 이 물건들 더 많이 사기 위해 하는 장사라고!
도자기 제품은 사두면 나중에 다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노후 대비한다 생각하시고, 돈 생기면 바로바로 물건을 사서 창고에 쟁여두시는데 하두 많이 사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어서 싸게 팔 수 있다고.
맑은 종소리에 매료돼서 산 로열 알버트 식탁종도 원래 가격에 한참 못 미치는 3천 원! 와우~
그래서 누군가에게 선물할 양으로 하나 더 사 왔다.
기억에 의하면 파프리카 아저씨는 이곳에서
적어도 7년 이상 쭉 영업을 해오셨다.
어제는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이라 여유로운 가운데
양털구름이 점점이 박힌 저녁 하늘이 아름다웠고, 다른 손님들이 안 계셔서 이 얘기 저 얘기 한참을 더 나누게 되었다.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아저씨는
지금까지 30년간 장사를 해오며 한 번도 누구와 싸운 적이 없으시단다. 내가 좀 손해보고 말지, 그거 몇 푼 더 벌겠다고 아웅다웅 싸우면 속상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고, 그렇게 싸우는 시간에 물건을 팔면 더 많이 판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사는 모습 그대로 내 아이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에 좋은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간단명료하지만 확실한 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었다.
7년간 금요일이면 파프리카를 사러 오면서
단 한 번도 웃지 않고 있는 아저씨를 본 적이 없다.
그리고 3천 원짜리 물건을 사도 - 이미 충분히 그 가격에 넘치는 파프리카가 담겨있음에도 - 꼭 덤으로 한두 개씩 더 챙겨주시는 걸 잊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 아저씨가 바쁘셔서 다른 분이 대신 와있거나, 화장실 가느라 주변에 다른 상인들이 대신 자리를 지킬 때는 잘 안 사게 된다. 그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단골들도 그러시는 듯하다. 한 번은 어떤 아주머니랑 아저씨가 오시길 기다리며 한참을 함께 있기도 했다.
더운 날은 더운 날대로 추운 날은 추운 날대로
언제까지나 이런 날이 계속될 거 아니고
지금 이대로의 순간을 견디며 열심히 살다 보면
자연스레 가을 오고, 봄이 오니까 즐거운 거고,
장사가 잘 안 되는 때도 단골들이 꾸준히 와주시니까 고마운 마음에 덤으로 뭔가를 더 챙겨드리게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