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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an 05. 2022

새해 첫날, 칠갑산 호랑이의 기운을 받다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

올해가 무슨 띠인가는 사실 음력으로 따지는 거라 양력으로는 새해가 되었어도 아직 음력으로는 섣달 12월이니 소띠해이지만, 해가 바뀌면 으례껏 다가오는 띠를 내세워 새해인사를 한다.

2022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이라 올해는 호랑이가 새해인사를 하고, 1970년부터 지금까지 53년째 장수프로그램인 KBS의 [동물의 왕국]에서도 호랑이를 주제로 한 방송을 새해 첫 방송으로 틀어주었다.

난 우연찮게 새해 첫날 호랑이 전설이 내려오는 칠갑산을 찾게 되어, 2022년 호랑이의 기운을 잔뜩 받았다.   


처음 목적지는 에산 '의좋은형제공원'이었다. 그런데 예산을 19km 앞두고 갑자기 천장호 출렁다리가 걷고 싶어져서 청양으로 급선회. 유턴해서 왔던 길 되짚어 돌아가서 청양 천장호로 향했다.


정오 조금 전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이들이 벌써부터 주차장 가득 차를 대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새로 생긴 주차장에 주차하고 출렁다리로 향했다. 아이들 어릴 때 알프스 마을에 눈썰매도 타러 가고, 어머님과 함께 출렁다리도 걷고 하느라 여러 번 왔던 곳인데 몇 년만에 오니 그새 많이 달라져있었다.

우선 주차장이 전엔 출렁다리 입구 오른쪽으로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 위의 산을 깎아서 다랭이논처럼 몇 개의 주차장을 더 늘렸고 천장호를 둘러서 둘레길을 예쁘게 조성해놓았다. 출렁다리 가는 길의 소금쟁이 고개와 황룡정 주변에도 한창 데크길을 만드느라 공사중. 다 완성하면 천장호를 빙 둘러서 수변데크길을 걸으며 구경할 수 있어 볼만 하겠다. 이렇게 만드느라 돈을 많이 들였을 텐데도 여전히 입장료, 주차료 무료에 야간개장까지 하니 은혜로운 천장호 출렁다리이다.(주간 : 9시~18시 / 야간개장 : 매주 금토일, 동절기는 밤 8시까지, 하절기는 밤 9시까지)

1977년에 만들었다가 2015년에 리모델링한 황룡정에는 황룡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았다. 화장실 가실 분은 이 황룡정 아래 화장실을 이용하셔야 한다. 주차장 입구 빼면 여기가 출렁다리 주변의 유일한 화장실이다.

황룡정에서 출렁다리로 내려가는 길은 꽤 가파른데 이곳은 소금쟁이 고개라 불리는 곳이다. 아주 먼 옛날 청양과 정산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용한 고갯길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아래 1에 자세한 내용 있어요~)

그냥 걷기에도 힘든 길인데 젊은 청년 둘이 배낭까지 메고 누가 먼저 올라가나 경쟁하면서 후다닥 뛰어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젊음이 좋긴 좋구나~' 하기도 했다. 저런 치기어린 행동은 젊을 때 아니면 하기 어려우니 젊을 때 마음껏 하시라.

천장호는 칠갑산 동쪽 대치(한티)에서 흐르는 개울을 막아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979년 관개용 저수지로 축조되었다. 칠갑산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깨끗한 수면과 빼어난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청양명승 10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청양의 명물 천장호 출렁다리는 2007년 11월 10일 착공, 2009년 7월 28일 개통하였다. 길이가 207m, 폭 1.5m, 높이 24m로 2009년 당시엔 국내 최장이며 동양에서 두번째로 긴 다리였다고 한다.(지금은 2021년 여름에 개장한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가 국내 최장과 동양 최대 기록을 신했다. 이 기록도 언젠가 또 새로운 다리의 출현으로 달라질까?) 다리의 중간 중간에는 수면이 내려다 보여 아슬아슬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최대 약 30∼40cm 정도 흔들리게 설계되어 있어 흔들림이 꽤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2021년 가을에 개장한 옥순봉 출렁다리에 비하면 양반이다. 거긴 진짜 많이 흔들려서 이러다 다리 끊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음)

다리 중간부분에 청양의 특산물 구기자와 고추를 형상화한 높이 16m의 빨간색 주탑이 인상적인데, 구기자가 청양의 대표 농산물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고추 아래 저 동그란 것은 파프리카인가?" 하면서 고개를 갸웃한다.(내 앞에 가던 한 남자도, 어떤 꼬마도, 연세 좀 있어 보이는 분들도~^^)

천장호 출렁다리는 2011년엔 김종민 이승기 은지원을 비롯한 1박 2일 멤버들이 찾아와 방송을 타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렸고, 2020년 채널A 드라마 '터치'에서 위로의 장소로도 나왔다고 한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수변데크길뿐만 아니라 칠갑산 위로 전망대도 세워놓았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해서 날이 추워지니 점점 꼬리뼈와 도가니의 고통을 호소하는 남편이(그래서 그런지 꼬리곰탕과 도가니탕을 좋아함) "절대 노노!"를 외치는 바람에 못 올라가봤지만 거기 올라가면 더 멋진 전망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


207m의 출렁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용과 호랑이의 조형물이 우리를 반긴다. 소금쟁이 고개 전설에도 나오다시피 칠갑산에도 호랑이가 살았다. 특히 천장호에는 호랑이와 함께 용의 전설도 내려온다.

1973년 3월 6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칠갑산은 해발 561m에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원시 상태의 산림 생태계를 자랑하는 산이다. 그 이름에는  만물생성의 7대 근원인 '칠(七)'과 육십갑자의 첫 번째이고 싹이 난다는 뜻의 '갑(甲)' 자를 써서 생명의 발원지란 뜻이 담겨있다. 금강 상류의 지천을 굽어보는 산세에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어 칠갑산이라 전해 오기도 한다. 칠갑산 아래 천장호에는 천년의 세월을 기다려 승천을 하려던 황룡이 자신의 몸을 바쳐 다리를 만들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하고, 이를 본 호랑이가 영물이 되어 칠갑산을 수호하고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래서 이곳을 건너 칠갑산을 오르면 악을 다스리고 복을 준다는 황룡의 기운과 영험한 기운을 지닌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 복을 받는다고 한다.

이 전설의 끝자락에는 칠갑산 소원바위 이야기도 곁들여진다. 일명 '잉태바위'로도 불리는 소원바위는 예로부터 정성을 다해 어루만지며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간직한 바위이다. (여기에 서린 전설과 실화는 아래 2에 자세히 소개해요~)   

출렁다리 왼쪽으로 가면 바로 계단으로 이어진 높은 전망대는 못 올라간 대신 알프스하늘다리 쪽으로 향한 데크길과 소원바위가 있는 쪽의 데크길은 양쪽 다 걸었다. (덕분에 새해 첫날 만보 걷기 달성!)

알프스하늘다리로 향하는 데크길은 호랑이와 용이 그려진 포토존도 있고, 중간중간 나무이름과 설명이 쓰여진 표지와 나무공예로 만든 귀여운 조형물이 나무에 매달려 있으며, 천장호 출렁다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다, 호수가 끝나갈 즈음엔  숲속에 얼음기둥을 만들어놓아서 볼거리들이 가득했다.

호수끝까지 가도 출렁다리에서 800m쯤 가야 나온다는 하늘다리는 안 보여서(혹시 이건가?) 돌아나왔다. 아래 데크길을 쭉 따라 더 내려가면 청양 알프스마을이 나온다.

다시  출렁다리로 돌아가서 360m 오른쪽으로 가면 있다는 소원바위쪽 길을 걸었다. 요기선 손바닥 위에 용을 올려놓는 재미난 인증사진도 찍어볼 수 있다. 산길 200여 미터를 걸으면 소원바위 가는 길과 천장호둘레길 수변데크 시작하는 길로 나뉘고, 소원바위는 왼쪽 칠갑산 위로 130m 올라가야 나온다.

1월 1일은 대전이 영하 9.9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였는데, 청양 들어서며 영하 4도 정도로 올라가더니 데크길을 걸을 땐 영상 1도에 햇볕이 따스해서 소금쟁이 고개 아래 쌓인 눈을 보면서도 춥지 않았다.(알프스 하늘다리 가는 방향은 둘레길에도 눈이 쌓여있는 응달이라 좀 추웠다) 이쪽 수변데크길엔 아기자기한 조형물 대신 커다란 황룡 조각상과 고추도령 구기낭자가 지켜주는 빨간 하트 뿅뿅 나있는 조형물 안에 나무의자가 마련되어있다. 이 의자에 앉아서 천장호를 바라보는 맛도 제법 좋다. 연인이라면 인증샷 필수^^  

한낮에 제법 포근해진 날씨 속에 천장호 주변을 둘러보며 칠갑산 호랑이 기운을 잘 받은 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보니, 2차선 국도엔 출렁다리 아래 알프스 마을로 가려는 차들이 나래비 서있었다. 눈썰매장과 얼음조각 등으로 다양한 겨울체험을 할 수 있는 청양 알프스마을 축제가 2022년 1월 1일부터 개장한 참이었다. 축제는 2월 13일까지라니 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꼭 한 번 가보셔도 좋겠다. 코로나 피해서 잘 다니시길~


1) 소금쟁이 고개 전설

어느 화창한 봄날, 한 소금장수가 이 고개에서 소금지게를 세워 놓고 쉬고 있을 때 호랑이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났다. 너무 놀란 소금장수는 엉겁결에 지게를 받치고 있던 작대기를 잡아채어 손에 쥐고 호랑이를 노려보았다. 그 순간 지게가 넘어지면서 시장에서 산 그릇과 볏짚 가마니에 남아 있던 소금이 와르르 쏟아지고 말았다. 호랑이는 그릇 깨지는 소리와 하얀 소금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놀랐는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다 달아났다. 호랑이가 사라지자 쏟아진 소금을 수습하던 소금장수는 본인의 바짓가랑이에 누런 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너무 놀란 소금장수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바지에 오줌을 싸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주막에 묵게 된 소금장수는 호랑이를 만났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 소문이 퍼져 고개 이름이 '소금쟁이 고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2) 소원 바위 전설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온 이야기에 따르면, 시집보낸 딸이 5년 동안 아기가 없자 친정어머니가 이 바위에서 7백일 동안 정성들여 기도를 한 결과 칠갑산 수호신이 감탄하여 딸이 결혼 후 7년 째 되던 해에 바위를 떼어내 아기를 잉태하도록 해주어 이 아기가 자라 훗날 거란족으로부터 고려를 구하고 용호장군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지역 목면에 거주하는 유某(모) 할머니가 아들이 44살이 넘도록 아기를 얻지 못하자 매일 같이 이 바위에 찾아와 지극정성으로 소원을 빌어 마침내 결혼 7년만에 아기를 잉태하여 2013년 10월 29일에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생하였다고 한다. 또한 소원바위 아래 천장호는 여성의 자궁형상으로 임신과 자손의 번창을 상징한다는 어느 풍수사의 이야기도 있어 소원을 성취하는 명소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있단다. 어쩐지 새해 첫 날 많은 이들이 천장호 출렁다리를 찾은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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