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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Jan 04. 2022

2022년 첫 텃밭산책

텃밭 종료를 고지받고

작년 말, 올해부터는 텃밭 땅 임대가 안 되어 더이상 구청에서 운영하는 텃밭을 이용할 수가 없다는 문자를 받았다. 해가 바뀌고, 봄이 되면 으례껏 해오던 텃밭인데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식인가? 텃밭주인이 올해부터는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기로 했다는 것이다.

2016년 봄부터 텃밭을 해왔으니 작년까지 딱 6년차. 이제 텃밭초등학교 졸업하고 텃밭중학교로 올라가 좀더 심도있게 텃밭을 가꾸려던 참이었는데, 쭉 땅을 빌려줄 거라 여겼던 밭주인이 마음을 바꾸다니...

그런데 다른 분 통해 알고 보니, 텃밭주인이 마음을 바꾼 게 아니라 텃밭주인이 바뀐 것이었다. 원래 구청에서 임대했던 땅은 묵마을에서 원조 묵집으로 유명한 한 식당 주인의 종중 땅이었다. 함부로 팔지 못하게 자손들이 연대로 땅문서에 이름을 올리기까지 해서 주변의 개발광풍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땅이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무슨 사정인지 땅이 팔렸고 새 땅주인은 자신이 직접 이 땅에 농사를 짓기로 한 모양이다.  


유성구에서 운영하는 5개의 텃밭 가운데 우리 동네 텃밭은 약 40여개의 공동체가 참여를 해서, 한 공동체당 다섯 가구 이상 모여서 하도록 했으니 얼추 잡아도 200가구가 텃밭을 해왔는데 갑자기 땅이 사라지니 텃밭단톡방에서는 난리가 났다.


내년에도 텃밭하실 분들은 그럼 이제 어디서 해야 하냐고, 주변에 임대할 땅이 없냐고 물어오기도 해서 구청 담당계장님께 혹시 근처에 텃밭임대 계획 있으신지 여쭈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근처가 다 개발지역이라 양도소득세 관련하여 선뜻 임대지주가 없고, 아무데나 텃밭농장을 할수 없어서 더이상 텃밭이용이 어렵다고 하신다. 게다가 처음 문자를 받은 날이 12월 6일 월요일이었는데, 12월 7일 화요일엔 쉼터쪽 농작물은 금주중에 수확을 부탁드린다는 문자가 왔다. 다음 주부터 토지주가 하우스 설치하려 평탄작업을 하려한다며, 키우시던 작물 피해없게 꼭 수확해달라고.


그래서 농한기라 한가하게 손 놓고 있던 텃밭이웃들이 부리나케 텃밭 가서 마지막 수확을 하고, 쉼터에 놓아둔 농기구들도 챙겨가고 바쁘셨다.


난 밭정리는 다 끝내서 더 이상 수확할 게 없어 쉼터에 놓아둔 장화랑 지주대, 수돗가에 쓰려고 놔둔 비누, 수세미, 위생봉투가 든 가방을 챙기는 거 외엔 급할 게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 해가 바뀌고 사흘째 된 1월 3일에서야 밭을 들렀다.


새해부터는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하고, 주 5회 이상 만 보를 걷자는 계획을 세웠기에 늦은 오후에 운동삼아 길을 나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텃밭 가기 위해 6년을 다니던 길을 이제 오늘부로 더이상 발길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에 주변 풍경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10월 23일 상강에 고구마 수확한 이후 한 번도 가지 않았던 텃밭을 두 달여만에 갔더니 가는 길에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나고, 짓던 건물들은 높이 올라가거나 얼추 외관을 갖추는 등 변화가 많았다.

주변의 다른 텃밭들도 다들 밭정리가 끝나서 황량하게 비어있는 가운데, 밭에 깔아둔 지푸라기에 서리가 내려 있기도 하고, 알맹이만 수확한 뒤 시래기만 남은 푸성귀들의 흔적이 보이기도 했다.  관음정사 앞 동화천 앞에는 여름철새인 중대백로가 텃새화되어 먹이감을 찾느라 두리번대다가 나의 발소리에 놀라 푸드덕 날아가고, 겨울철새인 청동오리도 그 소리에 놀라서 함께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관음정사 블루베리를 지키는 사자는 여전하고, 사자 옆에 보라색 꽃을 피우던 부레옥잠이 담긴 돌수반은 동해를 피하기 위해 비닐로 꽁꽁 싸매져있었다. 겨울엔 이쪽으로 와볼 일이 없어 못봤던 풍경이다.

한때 자주 가던 체리카페는 여전히 문을 닫은 채 집기들이 남아있고, 저 멀리 식당을 리모델링한 카페가 새로 문을 열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면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벼가 자라던 논도 추수가 끝난 뒤로 텅 빈 채 봄을 기다리고 있는 중.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텃밭에 도착하니, 주차장엔 1년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캠핑카가 그대로 있다. 이제 텃밭은 그만 하게 되었는데, 이 캠핑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려나? 그동안 텃밭하는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캠핑카. 주말에 사람들이 텃밭을 많이 찾을 때는 무려 주차공간 네 칸을 점령하고 끝이 뾰족 튀어나와 위험하기까지 한 이 캠핑카가 많은 민원의 대상이 되었더랬다. 그래서 구청에서도 여러 번 연락하고 치워달라고 했음에도 배째라~ 정신으로 버티던 캠핑카였다. 화물차와 달리 캠핑카는 법적 처벌 근거가 없어 공용주차장에 장시간 주차를 해도 강력하게 조치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운정 가득 든 캠핑카도 이젠 안녕~  

12월 중순에 텃밭 평탄화 작업을 한다던 쉼터 주변은 아직까지 밭주인이 손을 댄 흔적이 없었다. 그래서 밭에는 공동텃밭 이름과 대표자명이 쓰여진 표지판들이 아직 남아있었고, 갈무리가 덜 끝난 듯한 갓도 좀 남아있었다. 6년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오랜 시간 머물렀던 이 밭을 이제는 멀찌기서만 볼 수 있겠구나...

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꼭 닫혀있던 쉼터 문을 여니 뭔가가 후다닥 달려나간다. 쥐인가? 하고 봤더니 고양이다. 들고양이 쉼터로도 활용된 모양이다.

 

사람들과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감자도 쪄먹고, 고기도 궈먹으며 즐겁게 이야기 나누던 쉼터와 수돗가, 쉼터 주변들도 이젠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 되버린다 생각하니 아쉬움 가득한 마음이 되었다. 쉼터 안에는 버릴 물건들이 한쪽에 쌓여있고, 얼마 안 남은 농기구들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쉼터 한구석에 세워둔 지주대는 올해도 계속 텃밭을 할 이웃에게 넘기고, 남아있는 비료도 함께 드려야겠다.  

내 물건을 몇 가지 챙겨나오면서, 쉼터 문을 다시 꼭 닫고 쉼터 주변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해가 진 뒤 더욱 쓸쓸한 텃밭 풍경이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을 것 같았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었으니 텃밭이 생각나면 종종 꺼내서 들춰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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