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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Apr 01. 2022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시인 김남주를 그리며

이름난 분들 가운데

해남이 고향인 분들이 꽤 있다.

법정스님, 황지우, 고정희 시인

그리고 오늘 소개할 김남주 시인.


오래 전 땅끝마을 가는 길에

우연히 표지판이 눈에 띄어서

그의 생가를 찾은 적도 있다.


잘 모르는 시인인

생가가 단정하니 잘 꾸며져있어서

어떤 분인가? 하고 찾아보았다.


김남주는 신경림·김지하·박노해, 백무산 등과 더불어 1980년대 민족문학의 기수로 평가된다. 그의 시는 80년대 정치적인 탄압 때문에 잡지나 시집으로 나오기 전에 지하 출판물을 통해 독자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던 특이한 시인이다.


1946년에 태어나셨으니 우리 시어머님과 동갑이시다. 살아계셨으면 올해 77세를 맞으실 터인데, 그는 안다깝게도 1994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문익환 목사님, 김일성 북한 주석과 같은 해에  소천하셨다.


이번에 읽은 책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사연이 많은 번역시집이다.


김남주는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형 선고를 받고 옥중에서 교도관 두 명에게 몰래 펜과 종이를 얻어 자신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저항시인들의 시를 번역한다. 이후 이 교도관들의 도움으로 번역 원고를 밀반출해 책으로 출간한 것이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88년 초판 출간)이다.


이 책은 그가 옥중에 있을 때 출간되었으며, 1995년 김남주 시인 추모 1주기를 맞아 <은박지에 새긴 사랑>(번역 시집 1),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번역 시집 2)가 출간되었고, 그 중에서 1995년도에 출간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2018년에 재구성하여 새롭게 나온 것이 내가 이번에 읽게 된 책이다.


생전에 김남주는 "자신이 좋아서 번역한 시나 쓴 시가 세상을 거꾸로 살고 있고 그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조금은 쓸모가 있는 약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인의 부인인 박광숙 작가의 말처럼 "뒤엉키고 헝클어진 사회에서 진실과 순결을 노래한 시인들의 시들이 어느 날엔가 천상의 약이 되어 이지러진 세상을 치유하게 될 날이 오리라는" 믿음으로 이 책이 다시 태어났다.


이 책의 머리말에는 다음의 내용이 나온다.


1994년 그는 떠났다. 통일 운동의 최전선에 서 계시던 문익환 목사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달 상간으로 그 겨울, 하늘 길을 동반했다. 북의 지도자도 무더운 여름 세상을 떠났다. 1997년 11월에는 외환위기마저 터졌다.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휩쓸리지 않기 위해 다시 몸부림쳐야 했다. 세기말다운 혼돈과 아수라가 쉼없이 휘몰아왔다. 누구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위안이던 시대였다.


"이 어지러운 세상에 잘 가셨지 뭐" "이 더러운 세상에, 희망이 코딱지만큼도 없는 세상에 참 잘 가셨어요", "…………… 시인답게 정말 잘 가신 거예요" 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정말 잘 간 건가. 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던데 ・・・・・・. 여전히 똥밭에 구르며 늙어가고 있는 나이고 그들이지만, 삶의 행간을 건너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다.


- 김남주 번역시집 머리말 / 1994년, 그리고 세기말 中


그리고 이 책 첫 장에 소개된 시가 책의 제목이 된 독일의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그 유명한 시이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브레히트나 그의 시를 처음으로 번역해 우리나라에 소개한 김남주의 이름은 몰라도 이 시는 한 번쯤 들어봤을 테다. 이 시는 캘리그라피로도 인기가 많고, 시가 쓰여진 유리컵이나 굿즈가 나오기도 했다.


그의 번역시집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시는 아래의 시다.


< 도둑과 그 종 >


헤센 지방에 두 도둑이 살고 있었는데

많은 백성들이 그들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한 녀석은 배가 홀쪽한 것이 이리처럼 야위었고

한 녀석은 대주교처럼 뚱뚱하게 살이 쪄 있었다


두 녀석의 몸뚱이가 보여주는 이 차이는

주인과 종이었기 때문인데

주인은 우유에서 크림을 섭취하고

종이 먹는 것은 그 찌꺼기뿐이었다


백성들이 도둑놈을 붙잡아

새끼로 두 녀석을 매달아보았더니

한 녀석은 배가 홀쪽한 이리처럼 비실비실했고

한 녀석은 대주교처럼 뒤뚱뒤뚱했다


백성들은 십자가를 긋고 서서

두 녀석을 유심히 관찰했다 피둥피둥 살찐 놈이 도둑놈이라는 것은 알 수 있겠는데

비쩍 마른 놈이 도둑이라 하기에는 아무래도……… ?


- 시를 읽고나니

도대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인지 모르겠어서다.

문맥상으론 이리처럼 홀쭉한 녀석이 주인이고,

대주교처럼 뒤뚱뒤뚱한 녀석이 종인 듯한데

우유의 크림만 먹었다면 살이 피둥피둥 쪘을 거라

종은 마르고 주인이 살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리까리했다.

물론 시가 전하는 바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단정할 수 다는 것이리라.



* 김남주, 그의 삶이 궁금하다면~

그는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잿더미」 외 7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고, 1977년 황석영(黃晳暎)·정광훈·홍영표·윤기현 등과 농민운동을 전개하였다.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형 선고를 받고 9년째 복역 중 1988년 12월 가석방으로 출옥하였다. 민주운동가로서 상당히 스펙타클한 삶을 살아오신 셈이다.


김남주는 그의 시 「시인이여」에서 암흑의 시대 시인의 일은 ‘침묵, 관망, 도피나 밑이 없는 한의 바다의 넋두리가 아니라 박해의 시대 가위눌린 악몽으로부터 잠든 마음을 깨우고 참을 일으켜 세워 둥둥둥 북소리와 함게 나가게 하는 것, 전투의 나팔소리, 압제자의 가슴에 꽂는 창’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그의 시는 이 땅의 독재와 싸우는 무기였고 한편으로 자기 자신과 일상에 안주하여 부정과 불의를 눈감으려는 소시민적 태도에 가해진 날카로운 채찍이었다. 그의 시는 외세에 의한 분단과 외세 의존적인 정치 권력에 의한 민중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을 주제로 한다. 이 점에서 1960년대 신동엽, 1980년대 민중시인들과 현실인식을 같이한다.


그러나 1980년대 대부분의 민중시들이 형식면에서 하나의 구호에 가깝다면 김남주의 시는 그러한 민중시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름의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반복, 패러디(parody), 풍자 등은 그 증거이다. 특히 식민지 시대 유행가 가사에서 김수영, 김소월의 시구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인들의 시구를 인용하여 텍스트 사이의 상호관련을 맺고 패러디하는 수법은 다른 한국 시인들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든 예라 할 수 있다.(한국민족대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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