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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Feb 28. 2022

언택트 관광지 완주 위봉사

BTS 힐링성지 안의 고요한 절

BTS 힐링성지 위봉산성을 둘러보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찾았던 위봉사는, 안 들렀으면 진짜 후회했을 사찰이랍니다.

정갈한 해우소에 반해 기왕 온 거 한 번 둘러보자고 남편이랑 올라가 본 위봉사는 최근 들어 가봤던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손으로 꼽을 정도로 느낌이 좋은 곳이었어요.

작년 이맘때 자장매를 보기 위해 찾았던 경남 양산의 통도사가 규모만 줄인 채 완주에 들어선 느낌이랄까요?

BTS 힐링성지로 유명한 위봉산성에서

고작 차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이토록 고요한 사찰이 있다니!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그냥 지나쳐 간다니!!(하긴 나도 처음엔 지나쳤다가 화장실 찾느라 들렀으니...) 좀 안타깝기도 하여 다른 분들은 [위봉폭포+위봉산성]과 묶어서 소개를 하는 편이지만 는 위봉사만 따로 떼어서 소개해 봅니다.


위봉사 : 입장료, 주차료 모두 무료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산 21


위봉사(威鳳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김제시 금산사의 말사로 소속되어 있으며,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추줄산 남쪽 기슭 위봉산성 내에 위치하고 있어요. 위봉마을을 지나 위봉산 자락에 남동향으로 배치되어 있지요.

항공샷

위봉산성의 형상은 산세가 높이 솟아 굽이굽이 꿈틀거리고 험준한 것이 용이 또아리를 틀고 봉황이 날아오르는 형세를 갖추어 위봉(威鳳)이라 하였대요. 위봉사 중수기에 보면 고려 말 최용각이 말을 타고 산천을 누비다, 고산에 이르러 남쪽을 바라보니 세 마리의 봉황이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어서 가람을 조성하고 위봉사라고 이름을 붙였답니다. 한편으론 고려말 보조국사 지눌이 송광사 옆을 지나다 나무오리 세 마리를 날려 보내 그중 한 마리가 내려앉은 곳에 위봉사를 창건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와요.


1360년 고려 공민왕의 스승인 보세존자 나옹화상이 중창하였고, 1456년(세조12) 경 선석대사·석잠대사가 중수를 논의한 끝에 여러 해 돈을 모아 60여년만에 극락전을 중수했어요.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위봉(圍鳳)사였던 것이 조선시대에 위봉(威鳳)사로 바뀌었다고 해요.

일주문
해우소

위봉사 입구 높다란 일주문을 지나고, 우람한 사천왕상들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지키는 사천왕문을 지나면 2층 누각으로 된 봉서루가 나와요.(이 봉서루는 지장전을 겸하고 있어요)

위봉사가 뜻깊게 다가온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누각 아래 손님을 반겨주는 글귀들이 참 뜻깊어서랍니다. 절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불경 구절이 아니라 '오늘의 좋은 글'이나 '감성편지'에 나오는 것 같은 글귀들이 눈길을 끌었어요.

이 글귀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긴 뒤 봉서루 아래의 돌계단을 올라가면 평지로 정비된 넓은 마당이 나옵니다. 그리고 마당 뒤 저 안쪽에 보물 제608호인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이 있어요. 보광명전은 위봉사의 주불전으로서 위봉사의 중심부랍니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하자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 어진과 위패를 위봉산성의 행궁으로 옮기기로 하였는데, 행궁이 퇴락하여 그곳에 둘 수 없어서 부득이 위봉사의 보광명전에 임시로 모셨다고 해요. 그 후 위봉사를 전주 경기전의 속사로 삼았고, 위봉산성 밖에 산내 암자인 태조암이 있어요. 왜 '태조암'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이해가 되더라구요.


보광명전 앞의 커다란 소나무가 참 보기 좋았어요. 경내의 중심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위봉사의 중심 전각인 보광명전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유재란 때 피해를 입어 17세기 초에 다시 지었고, 조선 후기에도 여러 차례 정비한 것으로 보여요. 현판은 헌종 4년(1838)에 보수할 당시 제작한 것이고(일주문 앞의 설명판엔 헌종 1년 1835로 되어 있어 뭐가 맞는지 좀 갸우뚱한데요, 보광명전 앞의 설명판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해요), 현재 모습의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다시 지은 것이랍니다. 위봉사의 보광명전은 조선시대 목조불전 건축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1977년 보물 608호로 지정받았어요.

보광명전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인데요, 중요 부분마다 굵은 목재를 써서 조각했고, 화사한 단청과 벽화로 치장하여 중후하고 웅장한 느낌을 줘요. 현종 14년에 조성된 내부 단청은 도료 배합 등 이 분야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보광명전 안으로 들어가면,  

불단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상이 모셔져 있고, 용과 여의주 등으로 장식한 닫집(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이 설치되어 있어요. 불단의 뒷벽과 좌우 벽체에는 흰 옷을 입은 관음보살을 그린 '백의관음도=백의관음보살입상(白衣觀音菩薩立像)' 1점과 부처님께 음악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 같은 모습을 그린 '주악비천도' 6점이 있답니다. 힘이 넘치게 선을 그은 것과 인물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에서 조선 후기 벽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어 문화재 가치가 높은 벽화로 평가하고 있다네요.

닫집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예요. 법당인 보광명전의 오른쪽에 있는데요, 요사라고 하지만 앞면 중앙은 대청마루를 둔 법당으로 '관음전'이라고 이름을 붙였더라구요. 좌우에 스님들의 실제 거처인 요사체를 두어 건물 평면이 I자형을 이루고 있답니다.

조선 고종 5년(1868)에 절 확장을 위한 큰 공사가 있었는데, 건물의 짜임새로 보아 이 요사도 그때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조선 시대의 주택 구조를 취하면서도 일부는 법당 형식으로 장식한 점이 특이하지요. 관음전과 승방 부엌 등은 지붕의 높낮이가 서로 다른데 그 기능에 따라 차이를 두었다고 해요. 요사라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어 이 부분은 요사 앞에 세워진 설명판을 보고 알았답니다.


위봉사는 사찰이 자리한 면적에 비해 전각이 몇 개 안 돼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겸한 요사채, 지장전을 겸한 봉서루 외에 목어, 운판, 범종, 법고가 놓인 종각이 전부예요. 그래서 여백의 미를 더욱 느낄 수 있었던 단출한 곳이기도 하지요.

지장전 문이 열려있길래 들어가 보았어요.

위봉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도량이라 더욱 조용했던 위봉사는 따스한 햇살이 마당 한가득 내려앉아 고요함을 더해서, 저 일주문 밖 300m쯤 거리에 있는 위봉폭포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저기 400m 옆의 위봉산성에 몰려든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어요.

처마의 풍경소리는 뎅그렁뎅그렁 아득하고, 봄을 당겨오는 하늘빛은 한없이 푸르렀던 위봉사. 위봉사 주변엔 꽃밭이 잘 가꿔져 있어 봄에 특히 아름답다고 해요. 보광명전 앞의 배롱나무에 꽃이 환해지는 여름,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들이 곱게 물든 가을은 또 얼마나 멋질까 상상하게 되는 사찰이었답니다.

봄이 오면 꽃으로 뒤덮인다는 위봉사 입구 주차장 주변

언택트 관광지로 김제 망해사에 이어 이만한 곳도 없으리라 생각해요. 언택트 관광지로 소개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더 이상 한적한 곳이 되지 않는 게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전라북도 내 유적지가 많아요. 완주군에는 위봉산성과 태조암, 전주에는 경기전, 오목대, 조경단, 만경대 암각서, 남원시에는 황산대첩비지, 피바위, 여원치마애불, 정산봉, 진안군에는 은수사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답니다. 또한 설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대표적인 곳으로 완주군에 태조암, 남원시에는 고남산 제단, 장수군에는 뜬봉샘, 임실군에는 상이암, 순창군에는 만일사 등 열여섯 곳이 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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