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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그미 Oct 23. 2020

산속에 나 홀로 서서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지난번 소개했던 세 개의 정자가 있는 갈계숲은 이 불상을 보러 가던 길에 발견한 곳이었다.

사진으로 본 석조여래입상의 모습이 좀 독특해서 근처 수승대(거창의 유명 관광지. 깨끗한 계곡물과 멋들어진 바위가 끝내주게 아름답다)에 온 김에 가보기로 했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산 53번지에 있는 이 불상을 보기 위해 수승대에서 차로 5분가량 달리면 2차로인 도로 옆에 산으로 올라가라는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차에서 내려 100m쯤 논을 끼고 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산속에 넓게 트인 공간이 나오고 그 가운데 홀로 고요히 서있는 석불입상을 발견하게 된다.


입구 오른쪽에 제법 널찍하고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작은 석불이 앉아서 "어서 옵쇼~" 하고 먼저 반겨준다. 우리의 주인공 마애석불입상은 등을 돌리고 먼 산을 보고 계신 중이다. 바위 아래에는  얼마 전 누군가 공양을 드렸는지 양초와 음식이 보였고, 바위 옆으로는 빗자루를 비롯한 청소도구가 있어서 이곳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방객에게 등을 돌리고 남쪽을 향해 서 있는 석조여래입상을 보려면 앞으로 30m쯤 걸어가야 한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불상에 다가가는 순간이 참 좋다. 쑥쑥 자라서 자연담을 만든 키 큰 소나무들이 빙 둘러싼  숲 속 공터의 잘 다듬어진 잔디밭 위를 걸어서 부처님을 알현하러 가는 길은 뭔가 신성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보고픈 연인을 만나러 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居昌 農山里石造如來立像)은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보물 제1436호이다. 1972년 2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7월 7일 보물 제1436호로 승격되었다.

(보물로 승격 지 1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기재된 곳이 간혹 보인다)


이 불상은 광배(光背)와 받침대(=대좌臺座)를 모두 갖춘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석불입상으로 전체 높이는 270㎝이다. 암반형 바위를 원추형으로 쪼아 만든 불신과 광배는 동일석으로 조각하여  받침대 위에 얹었다.


신체에 비하여 다소 머리 부분이 큰데 얼굴이 부분적으로 손상되었지만 전체적으로 후덕한 느낌을 준다. 머리 부분의 상투 모양은 높고 뚜렷하다. 둥그스름한 사각형 얼굴에 부리부리한 큰 눈과 적당한 크기의 코, 살짝 다문 입술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양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곧게 펴 내린 특이한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다만 오른손은 많이 마멸되어 정확한 손가락의 모양은 알 수가 없다. 두 발은 불신과 별도로 받침대 위에 조각되어 있는데 이 또한 마멸과 손상이 심해 왼쪽 발가락 일부만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옛날에도 운동으로 관리를 잘하신 듯 甲자가 새겨져 있을 듯한 당당한 가슴은 상당히 남성적이지만 나머지는 무척이나 여성스럽다. 부드러운 경사를 이룬 유연한 어깨, 잘록한 허리와 날씬한 다리를 보자면 모델 뺨치는 몸매이다. 얇은 옷자락 속에 드러난 멋진 몸매는 불상의 뛰어난 입체감을 더해준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실적인 양식을 잘 나타내 주는 세련된 수법이라고 한다. 불교예술의 전성기를 구가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라서 한눈에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통견의 가사자락)은 가슴 위에 몇 갈래의 U자형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다가 허리 부분에서 Y 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 살짝 밀착되어 작은 U자를 그렸다가, 종아리 부분에서 큰 V자로 마무리된다. (불상이 입고 있는 법의에 대해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한 설명판을 본 적이 없어 감탄하며 읽었다)


이러한 옷자락의 표현법은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 계통을 잇는 것으로 인도의 우드야나 (Udyana)왕 여래상 형식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 유래는 석가모니가 성불한 후 한때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는데, 그때 밧사(Batsa) 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가 잠시라도 지상에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150cm크기의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불상이 최초의 부처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 여래상의 옷자락 조각 형식이 이 석조여래상과 같은 형태였다고 한다. 이 같은 옷자락의 표현은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른 거 다 몰라도, 이 옷자락의 표현방식 하나만 봐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몸 전체를 감싼 광배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졌다고 하는데 다소 깨진 데다 육안으로 화염문을 확인하기 힘들다.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원추형 대좌의 받침대는 심하게 마멸되었으나,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부분적인 파손은 있으나 이 불상은 야산의 구릉에서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귀중한 불상으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정제된 조각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예가 적은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한다.


이곳에 머문 동안 우리를 제외한 어떤 사람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렇게 한적한 곳인 줄 알았다면 돗자리와 간식을 챙겨 와 불상 근처에 자리를 잡고, 염화미소를 짓고 계신 부처님을 쳐다보면서 오래오래 머물다 가고 싶은 평온하고 고요한 공간이었다. 이번엔 다음에 갈 곳이 정해진 데다 준비한 게 커피뿐이라 커피 한 잔 마시며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해 아쉬움을 남겨두고 왔다. 

혹여 이 글을 보고 농산리에 가시게 된다면 돗자리는 꼭 챙겨가시고, 우리가 남겨둔 아쉬움은 챙겨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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