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May 04. 2022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학교 가는 둘째를 먼저 먹여 보내교

어머님과 아침 식사를 할 무렵 시작하는

KBS 1TV <인간극장>에서 이번 주에

'무여 길을 떠나다’ 가 방송 중이다.


월요일에 티비를 딱 틀었는데

정말 고우신 비구니 스님이 활짝 웃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 저 스님 정말 고우시네요. 보세요~ 어머님!"


"오메~ 스무살 머리 긴 처자보다 더 이쁘다야."


화장끼 하나 없는 맨얼굴에, 빡빡 민 머리에 쓴 모자만으로도 패션이 되는 무여스님의 고운 얼굴에 반하고, 조리있는 말솜씨에 반해 어머님과 함께 무여스님에 쏘옥 빠져들었다.

 

열 아홉살의 어린 나이에 출가해 부처님의 제자로 23

년을 지내오신 무여스님은 쉽고 재미 있는 불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사찰기행 방송을 제작하는 피디 겸 작가 그리고 리포터이다. 영상 편집까지 독학으로 배워서 직접 편집도 하시는 무여스님은 딱히 정해진 절이 없어 머무는 모든 곳이 집이라고 한다. 촬영여행을 마치면 서울의 한 선원에서 공부하랴, 강의하랴, 틈틈이 편집하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모습들이 한 편 한 편 소개되는데 고부가 당장 무여스님의 팬이 되고 말았다.


텃밭에도 한 달쯤 전부터 가까운 암자에서 준비한 연등이 걸리고, 부처님 오신 날을 일주일 앞두고 있으니 아마도 그 시기에 맞춰 무여스님의 인생 이야기를 인간극장에 담아낸 모양이다.


오늘은 순천의 송광사와 법정 스님이 마지막까지 머무셨던 불일암을 촬영하러 간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침마다 150명분의 밥을 한다는 송광사 부엌에서 한 처사님이 가마솥에 한 밥을 퍼내고 남은 누룽지를 칼로 슥슥 떼어내서 무여스님에게 드리는 장면이 나왔다.


"어머, 누룽지 정말 맛있어요~ 이거 저 주신 거니까 나머지는 싸서 이따 차에서 먹어야겠어요."


하시며 남은 누룽지를 종이에 싸서 챙기는 무여스님을 보시며 어머님께서 한 마디 하신다.


"아따, 맛나겄다! 가마솥에 불 때서 나온 누룽지가 최고재. 얼마나 꼬숩그나~"


"그러게요, 진짜 가마솥 누룽지네요. 저 처사님은 아주 가마솥밥에 도통하셔서 누룽지 떼어내시는 것도 예술이네요. 어릴 때 가마솥에 밥해서 누룽지 뗄라믄 힘들었는데"


"부처님 오신 날이 언제냐? 금방 되가지?"


"네~ 이번 주 일요일이요. 5월엔 쉬는 날이 많아 좋았는데 올해는 부처님 오신 날도 일요일이랑 겹치고, 쉬는 날이 줄었어요."


"시골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 아주 큰 명절이었어야. 그 날 지나면 농사일 하느라 바빠져서 초파일에 마지막으로 놀았재. 우리집은 마당에 큰 함지박을 놔두고 거기에다 물을 가득 채워서 바가지 하나랑 같이 놔뒀니라."


"원래 초파일에는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아녀~ 다른 집은 안 그랬는디 우리집만 그랬재. 무위사 올라가는 집에 외따로 있는 길갓집이라 사람들이 가다가 우리집 들러서 물 한 모금씩 하고들 가는디, 다 큰 처녀들한테 물심부름하게 한께 할머니가 처녀들 얼굴 못 내밀게 할라고 마당에다 물이랑 떠마실 바가지를 놔뒀재. 알아서들 떠먹고 가라고~"


"무위사가 큰 절이라 사람들 많이 다녔을 텐데 매번 물 준비해 놓기도 쉽지 않았겠네요."


"어짜겄냐. 1년에 한 번 하는 큰 행산디. 그라고 옛날 사람들은 길 가다가 목 마르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물  얻어먹는 건 암껏도 아니었응께."


"하긴 저희집도 길갓집이라 지나가던 사람들이 들러서 물도 마시고, 끼니 때면 밥도 드시고, 여름엔 우리집에서 아예 머리도 감고 가셨다니깐요. 심지어 어떤 분은 이 집은 샴푸 없냐고, 샴푸 내놓으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샴푸가 귀하던 시절인데."


"워매~ 남의 집에서 머리 감으면서 샴푸? 빨랫비누로만 감아도 감지덕지재. 옛날엔 샴푸가 뭐여. 세수비누도 귀해서 시꺼먼 빨래비누로 머리 감고 그랬는디. 그래도 내가 처녀라고 울 엄니가 따로 벌꿀비누를 사서 주셨는디, 세수할 때만 써도 아까워서 벌벌 떨었구만."


"맞아요~ 저도 어릴 때 머리는 빨래비누로 감을 때가 많고 어쩌다 세수비누로 감고 그랬던 거 같아요. 샴푸는 있어도 아빠만 따로 쓰시고."


"비누가 귀할 때라 세수비누로 머리 감으면 아주 최고였재. 그란디 요새 나온 빨래비누는 닭기름으로 만든다더라? 내가 유성장에 가서 사오는 빨래비누가 그걸로 만든다는디 거품도 잘 나고 때도 잘 빠져. 생선기름으로 만든 빨래비누는 비린내가 난다고 하든만."


"재활용비누 말씀하시는 거죠? 그게 친환경이라서 좋다고 하더라구요. 설거지할 때도 퐁퐁이 말고 설거지비누로 하면 환경에 좋다는데, 사둔 주방세제가 남아서 그거부터 다 쓰고 설거지비누로 바꿔야겠어요."


무여스님 이야기에서 비롯된 수다가 부처님 오신 날로 이어지고, 그날 지나가던 길손을 위해 떠다둔 물 이야기가 빨래비누로 이어져서 재활용비누까지 나왔다. 어머님과의 밥상 수다는 이렇게 종횡무진으로 이어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부간의 수다 중에 생활폐수를 줄이기 위해 퐁퐁이 대신 설거지비누를 이용하는 일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아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랑이 말고 늑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