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그미 May 07. 2022

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62주년 결혼기념일을 자녀들과 함께 하기 위해 미국에 다니러 오셨던 아버지가 차에서 내리시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치면서 의식을 잃으셨다.


다행히 의식은 바로 찾았지만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셔서 사고 다음 날 병원에 가보니 왼쪽 팔꿈치 골절. 즉시 수술을 권했지만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수술이 연기되었고, 낙상의 여파로 급격이 몸이 쇠약해지신 것인지 아니면 처방받은 약이 너무 독했던 것인지 아버지는 며칠 내내 의식을 잃은 듯이 주무시기만 하더니, 얼마 뒤부터 아예 걷지 못하시게 되었다. 수술도 힘든 상황이 되면서 딸은 병상에 계신 아버지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87세의 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3년간 돌보며 저자 강신주에게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글이다. 그렇다고 구구절절 간병의 기록은 아니고, 하루하루 사그러들어가는 아버지와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정기검진을 다니던 병원의 나이 지긋한(자녀 셋, 손자 셋을 둔) 의사가 진료를 받으러 온 저자에게 "어떻게 해야 아버지로서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하고 물을 정도로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싶어했고, 모시면서 행복해했다는 사실을 알 정도로 저자는 아버지의 돌봄을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마무리했다.  


구순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병간호를 3년간 하면서 자신을 지켜준 것은 죽음과 애도와 노년에 관한 글이었고, 특히 큰 도움을 준 것은 의외로 노인용 상품들의 사용후기였다고 말하는 강신주.


저자는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찾고 싶어 기저귀를 검색하면서 상품 사용 후기를 열심히 찾아읽다 보니, 그 순간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각자의 이유로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후기에는 은근히 개인사가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강신주는 서로 다른 상황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불특정 다수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갔고, 기저귀 사용 후기에서 '기쁨'과 '행복'이란 단어를 발견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 병간호를 하면서 작가는 외로웠다. 특히 기저귀에 대한 사회적 인식('사람답게 살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낙인)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간병하는 가족들은 기저귀에 대한 선입견에 의해 우울해지곤 하는데, 기저귀 후기를 담담하게 전하는 이들은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들의 경험을 전하는 짧은 후기일 뿐이었지만, 그 공간은 인종과 언어와 시간을 초월한 곳이었고 그 글들을 읽고 있으면 힘이 생겼다. 간병이 힘들지만 웃는 순간도 있고,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순수한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이 책에 쓰여진 글은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만난 적은 없지만 이미 이어져 있는 나의 이웃들에게 다가가고 싶고, 내가 치열한 여정을 지나오는 동안 글과 사람이 위로가 되었듯이, 나의 글이 묵묵히 돌봄의 삶을 이어가는 있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를, 우리 모두가 덜 외롭고 문득문득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년 이맘때 어머님께서 급성뇌경색으로 쓰러지시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뇌출혈까지 오시게 되어 한동안 병원에서 지내셨더랬다. 보호자가 되어 간병을 했던 나로선 이 책을 그전에 읽었다면 훨씬 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준비되지 않은 채로 겪다보니 한동안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신 분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강신주의 아버지 강대건님. 책속에서


"저의 아버지는 매사에 감사하는 분이셨어요, 긍정적이고."


누군가 저자에게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물었을 때 그녀가 한 대답이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물으면 아이들이 뭐라고 답할까? 나의 삶은 어떤 단어로 요약될까? 하며 50대 후반에 접어들며 생각했다는 저자는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삷 속에서 나와 함께하시며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을 이끄신다고 말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 하루사진방의 정자남님의 일몰사진입니다.

by 정자남
매거진의 이전글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